햇담농사일기(22)‘인생 순지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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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담농사일기(22)‘인생 순지르기’
  • 차은숙 글짓는농부
  • 승인 2022.04.20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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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은숙 글짓는농부

호시절

어머니 머위 나올 때 안 됐어요?”

쌉싸래한 봄나물이 나올 때면 어머니께 묻는다. 머위는 한해 봄을 시작하는 나물이다. ‘나 봄이야하고 불쑥 커다란 손바닥을 내미는 것 같은데, 겨울잠에서 깨어난 곰이 가장 먼저 먹는 식물이라는 말도 있다, 요즘은 항암작용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어쨌든 귀농한 뒤 봄나물은 머위로 시작한다. 그 다음은 두릅과 고사리다. 도시에서는 누리지 못했던 나름 귀족적인 식생활이다.

어머니께 머위를 부탁하며 머위 맛있어요! 머위 먹으면 암에도 안 걸린대요하고 덧붙이고 나서 농장에 다녀오면 그새 어머니는 산에서 머위 한소쿠리를 뜯어오셨다. 그리고 손톱 밑이 새카맣게 머위 줄기를 벗기고 계신다.

점심을 먹기 전에 적당하게라는 말로는 부족한 최적’ ‘최고로 삶는 기술이 펼쳐진다. 줄기는 아삭하고 잎은 부드러운 머위를 적당히 물기를 짜낸다. 그 다음에야 머우 무쳐라잉하고 건네주시면 !” 한 톤 높게 대답을 하고 머우 된장 무침을 한다. 봄나물로 입맛을 한껏 돋우고, 오가는 길 꽃구경에 눈이 호강하는 호시절이다.

하우스 옆 긴 밭에 트랙터로 밭을 갈아 고추밭 만들기
하우스 옆 긴 밭에 트랙터로 밭을 갈아 고추밭 만들기
하우스 옆 긴 밭에 트랙터로 밭을 갈아 고추밭 만들기

 

고추밭 만들기

호시절이다 싶으면 그 다음에는 삽질이다. 집 뒤에 있는 텃밭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여름까지 집에서 먹을 호박, 가지, 오이, 고구마, , 꽈리고추, 재배에 실패할 가능성이 높지만 양상추나 브로콜리, 피망 같은 걸 심어야 한다. 넓지 않은 밭이다보니 밭이랑 만드는 일은 삽질이다. 삽질은 언제나 힘들다! 그래서 삽질하지 마라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되었다. 그래도 삽질 끝에 만들어진 밭이랑을 보면 꽃구경과는 또 다른 기꺼움이 올라온다.

그 다음에는 하우스 옆 긴밭에 고추밭을 만들어야 한다. 트랙터며 관리기 같은 기계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한다. 밭갈기 전에 고추밭 정리에 들어갔다. 제초매트를 걷어내고 멀칭 비닐 조각들을 주었다. 그리고 경운기에 거름을 실어 나르고, 밭에 펼쳤다. 내친김에 비료까지 뿌려두기로 했다. 일기예보를 주의 깊게 살펴보고 비 오는 날을 기다린다. 메마른 밭이 기다리는 비다.

기다리던 비가 내렸다. 쟁기날을 단 트랙터가 우르륵 밭을 갈았다. 고추밭에 한 무더기씩 여러 군데 핀 민들레가 속절없이 넘어갔다. “아이쿠 어쩌지! 옮겨줄까?” 물었더니, 남편이 끌끌 혀를 찼다. 지난번에 강건하다고 칭찬해줬던 소리쟁이도 마찬가지다. 고추밭에는 소리쟁이, 민들레, 고춧대 뿌리 온갖 풀들이 비빔밥처럼 섞였다.

 

인생 순지르기

밭은 비를 기다렸지만 하우스 안은 건조한 날씨 덕에 병충해 발생이 적다. 토마토는 한 알 두알 익기 시작했다. 수확이 멀지 않으니, “올해 토마토는 어떤 맛이 날까?” 기대하며 한 알 먹어본다. “작년에는 어땠지?” 기억을 더듬는다. 그리고 또 한 알씩 자꾸 먹어본다.

농장은 토마토가 자라는 속도만큼 바빠지기 시작했다. 수확이 끝날 때까지 계속해야 하는 곁순따기는 일상이다. 그리고 순지르기를 해야 할 때가 왔다. 순지르기는 원줄기의 생장점이 있는 끝순 생장점을 잘라 더 이상 자라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적심이라고도 하는데 이 생장점을 자르면 더 이상 자랄 수가 없으니 열매를 자라게 하고 익히는데 집중하게 된단다.

그리고 적과도 해야 한다. 적과는 열매를 키우는 화방을 알맞게 잘라내는 것이다. 이 순지르기와 적과를 잘해야 튼실하고 맛있는 열매와 수확량을 얻을 수 있다.

순지르기 할 때는 무조건 자르는 게 아니라 지금까지 자란 나무를 살펴야 한다. ‘수세라고 하는 나무의 굵기나 잎을 보면서 웃자라거나 연약한 나무들은 화방 수를 한 둘 적게 하기도 한다. 또 윗잎을 잘 남겨 두어야 광합성을 활발하게 할 수 있다.

순지르기한 토마토  한 알 두 알 익어가다.
순지르기한 토마토 한 알 두 알 익어가다.

 

오십 대, 농사 욕심 버리기 필요

적과는 그야말로 나무의 형편에 맞게 해야 한다. 한 화방에 너무 많은 열매를 매달고 있으면 당연히 크기가 작고, 맛도 덜하다.

그런데 적과는 할 때마다 아깝다’. 조금이라도 따내려니 그렇다. 농사 초기에는 뭘 몰라서 그랬고, 한 삼년 지나기까지는 욕심때문에 과감한(?) 적과를 하지 못했다. 게다가 어느 정도를 잘라내는 게 제대로인지 가늠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선배님들께 여쭤보면 말씀을 해 주시는데도 알아듣기가 쉽지 않다. 자신의 경험 속에서 시간과 몸으로 체득되어야만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농사를 짓다보니 토마토뿐 아니라, 가지며 고추, 호박이나 오이, 수박, 콩 등도 곁순을 따고 순을 질러야 한다. 좋은 열매를 얻기 위해서다.

한 번 더 생각해보니, 자식 농사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내가 삶의 농사도 욕심을 버리고 오십대의 인생 순지르기적과가 필요하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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