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재(267)현명함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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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재(267)현명함에 관하여
  • 박재근 고문
  • 승인 2022.04.27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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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근 고문(전북흑염소협회)

현명(賢明). 현의 원래 글자는 ()+()+()이다. ()은 민주적 해석을 하면 세상에서 존경받아 따르는 사람이 있음을 뜻하며 충()은 마음속에 사가 없고 패()는 남에게 폐를 끼치며 살지 않을 만큼의 재산을 의미하고 명()은 눈과 귀가 밝음을 뜻한다. 사물을 보는 눈이 밝아 눈에 넣어두어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을 알고, 귀에 담아야 두어야할 말과 버려야 할 말을 아는 사람을 총명한 사람이라 한다.

사물(, 사람, 물질)을 보는 눈이 밝다는 것은 인생의 가치를 높여주는 것의 경중을 판별하여 취사선택할 줄 아는 것이며 귀에 담아두어야 할 말이란 인생에 빛이 되는 말들이다. 현명한 사람은 영혼의 눈으로 보고 영혼의 귀로 듣기 때문에 몸의 눈이 볼 수 없는 것을 보며 몸의 귀로서는 들을 수 없는 도리를 듣는다. 현명한 사람은 영혼에 속한 이성으로 자기 안에서 인생의 흥미를 찾고 어리석은 사람은 몸에 속한 감정으로 자기 밖에서 인생의 흥미를 찾는다.

현명한 사람은 몸에 속한 마음인 감정을 영혼에 속한 마음인 이성에 종속시켜 사물을 보기 때문에 감정이 내키지 않아도 도리에 따름으로서 불행을 피하고, 어리석은 사람은 영혼에 속한 마음인 이성을 몸에 속한 마음인 감정에 종속시켜 언행을 하며 보고 싶은 것만을 보며 듣고 싶은 말만을 들으며 도리를 배반하면서 자신의 인생에 불행의 덫을 만든다.

인생의 길을 찾는 기능을 지혜라 하고 생명을 살리는 기능을 라 하고 기르는 기능을 이라 한다. 인생전체를 총합해서 보는 최상의 지혜와 덕을 가진 사람을 성인이라 하고 다음의 지혜와 덕을 가진 사람을 현명한 사람이라 한다. 성자와 현자는 인류와 자기를 한 몸으로 보기 때문에 사적 이득보다 인류 모두의 이득을 우선시하고 세속적 이득보다 덕행을 중요시한다.

자신을 드러내려는 사람은 현명하지 않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은 현명하기 때문이다. (노자) 현명한 사람이 자신을 드러내려 하지 않는 것은 그가 세속적 가치와 평판으로부터 자유무애 한 경지의 정신세계에 살고 있음을 의미한다. 사람은 홀로 자연과 마주할 때는 진실하지만 남과 마주하게 되면 자신과 상대를 비교하게 되면서 마음속에 거짓이라는 지혜가 발생한다. 능력을 비교하고 가진 것을 비교하며 부귀와 빈천으로 차별하는 병이 발생한다. 자기를 드러내려는 마음에는 남과 나를 비교하며 차별하는 반사회적 이기심이 작용하고 있다. 어찌 나와 남을 하나로 보는 것만 하겠는가? 자신을 드러내려는 마음에는 객기가 작용한다. 객기란 자기 것이 아닌 것, 자기 밖의 것을 자기 것으로 알고 허세를 부리는 것을 말한다.

성자와 현자는 자기 자신의 잘못에는 엄격한 잣대로 성찰하면서도 남의 사소한 결함과 실수와 잘못에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납하고 포용하길 즐긴다. 인간은 이기적이어서 남에 대한 배려에 인색하고 인간의 이성은 욕망이라는 감정에 무력하며, 지혜는 결함이 많은 것이기에 옳고 그름과 선악을 판단하는 능력 또한 불완전하다. 그러므로 불완전한 지혜가 겸손함을 겸비하지 않는다면 인간들은 끊임없는 불화로 서로의 삶을 훼손하게 된다. 인류를 불행하게 하는 모든 악은 세속적 이득에 대한 탐욕에서 비롯된다. 몸 눈에 보이는 이득에 대한 탐욕은 타고난 본성을 더럽히고 영혼을 병들고 손상시키며 정신적 손실을 초래한다. 현명한 사람은 세속적 이득에 대한 욕망에 얽매임이 인생을 고해로 만든다는 사실을 알고 물욕으로부터 영혼을 자유롭게 함으로써 인생에 평화로운 기쁨을 준다.

모든 것은 변한다. 나도 변하고 나 밖의 사물도 끊임없이 변한다. 현명한 사람은, 인생의 길이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시시때때로 변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자기 생각에 빠지지 않는다. 현명한 사람도 자기감정과 욕망에 구속되고 생각에 갇히게 되면 우자가 되고 우자도 자기를 벗어나게 도면 현명해진다.

현자 다음을 지자(智者)라 한다. 참으로 지혜로운 자는 어떤 일이 발생하기 전에 알아본다. 보통 사람들은 눈앞에 나타난 사실을 보고 옳고 그름과 선과 악을 판단하지만 지자는 사물의 원인을 보고 결과를 예견함으로 불행의 원인을 만들지 않는다. 그것은 농부가 씨앗을 보고 곡식과 잡초를 구분하기에 잡초의 씨앗을 심지 않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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