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미님이 이번 6월 1일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진보당의 이름으로 전북도의원에 당선되었다. 오은미님의 당선은 당보다는 본인의 자질과 품성의 공덕이 크다 할 것이다. 아직까지 진보당에 대한 유권자의 이해와 애정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의 패망으로 나라는 되찾았지만 미국이 친일세력에게 나라를 넘겨주고 친일세력들은 자신들의 과오를 덮기 위해 반공을 명분으로 진보적 양심세력을 위험한 빨갱이로 색칠해온 결과이다.
현재의 우리나라는 거대한 양당에 의해 지역 민심이 동쪽과 서쪽으로 갈라져 무의미한 편 가르기로 민족의 역량을 낭비하고 있다. 정치인들은 세계와의 경쟁에는 무관심하며 국민의 자존심을 죽이면서 미국에 아첨하고 민족의 통일보다는 국민내부의 갈등을 부추기며 권력다툼에만 혈안이 되어있다. 유권자들은 누가 능력 있고 진실하며 국가의 미래와 대중의 이익을 생각하느냐 보다는, 지역 정서에 편승한 정당에 맹목적 지지를 한다.
정당의 묻지 마 지지 현상의 폐단은 부도덕 하고 무능한 사람이 당의 공천만 받으면 당선됨으로써 저질 정치인을 양산하고 그들은 부패한 언론과 야합하여 탁한 여론으로 국민의 총명을 흐리게 하고 있다. 공천이 당선을 보장하게 되면서 그들은 유권자보다는 중앙당의 실력 있는 자에게 줄을 대는 데 물심양면으로 공을 기울인다.
이로 인해 유권자들은 정치인들에 대한 선택권을 당의 실력자들에게 빼앗긴 것이다. 공천자에 대한 맹목적 지지가 만든 결과이다. 부패한 중앙당의 실력자들은 공천이란 무기로 자기세력을 키운다. 국민이 퇴출을 바랄지라도 그를 따르는 세력은 그의 무능과 부패를 옹호해준다. 원칙을 중시하며 도덕적이고 능력 있는 양심적인 사람이 정치판에 생존할 수 없는 구조이다 보니 이는 곧 세계에서 국가경쟁력의 하락으로 이어진다.
나라가 발전하고 국민이 잘 살기 위해서는 정치인들이 국내 싸움이 아닌 나라 밖으로 눈을 돌려야 함에도 국민의 삶과 국가의 미래지향적인 담론이 아닌 당리당략에 매몰되어 상대 당 죽이기와 험담에만 몰두하면서 비생산적인 폐쇄적 소모적 논쟁으로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고 있다.
자연은 흑백이 아닌 다양한 색상으로 구성되어 어름다울 수 있음에도 거대 양당에 소속되어 있는 사람들은 당의 이해득실이라는 흑백의 시각으로만 사물을 본다. 그 결과 자기 집단의 과오는 궤변(詭辯)으로 포장하고 상대 당 정권에 대해선 과오만이 아니라 잘한 것마저 부정한다. 인간(人間)이란 말의 뜻은 남이 도움이 필요할 때, 내가 도움을 주고 내가 도움을 필요로 할 때 남으로부터 도움을 받는 사이로 사는 관계적 존재라는 뜻이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일 수 있는 것은 인생이란 예측 불가하다는 것을 알고 이에 대비하는 것이다. 부귀한 자는 빈천하게 되고 빈천한 자가 부귀하게 되며 건강한 자는 병들고 병든 자가 건강하게 되며 행복한 자는 불행하게 되며 불행한 자는 행복하게 된다. 때문에 현명한 사람은 부귀할 때 빈천한 자를 도움으로서 자신이 빈천할 때를 예비하고 자신이 건강할 때 병든 자를 도움으로서 병들 때를 대비하며 자신이 행복할 때 불행한 사람들을 도움으로서 불행을 맞을 예비를 한다. 정치가 해야 할 일은 불행한 사람, 병든 사람, 가난한 사람이 살기 좋은 구조의 세상을 만드는 것이고, 이를 위해선 힘을 가진 소수가 욕심 때문에 절대 다수를 불행하게 하는 잘못된 세상의 구조를 바꾸어야 한다. 하지만 쉽지 않은 싸움이다. 힘을 가진 소수가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 언론과 법으로 여론을 조작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투표는 세상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국민들이 자신들을 위한 세상을 만드는 가장 합리적 수단이다. 진보를 지향하는 사람들은 진실과 양심을 삶의 토대로 삼기 때문에 일하는 자와 일의 대가를 향락하는 모순투성이의 부도덕한 현실을 개탄하며 합리가 지배하는 이상사회를 추구한다. 인류가 함께 행복한 국경이 없고 전쟁이 없는 세상, 남북이 통일되는 세상, 강자들이 약자에게 갑 질을 하지 않는 세상이 진보의 길이다.
인간이 신령한 존재일 수 있는 것은 도리를 안다는 것이고 도리를 안다는 것은 강한 자가 약 한 자를, 행복한 자가 불행한 자를, 능력 있는 자가 능력 없는 자를 돕고, 여유 있는 자가 부족한 자와 나누는 정치적 구조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