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담농사일기(25)오이가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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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담농사일기(25)오이가 또
  • 차은숙 작가
  • 승인 2022.07.13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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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은숙 작가(글짓는농부)

뙤약볕이다. 이 더위 속에서 더 잘 먹고, 잘 자며 건강을 챙겨야 하는데 텃밭이 길러준 것들이 있어 참 든든하다. 양파와 마늘은 진작 캤고, 감자도 캤다. 하지가 지나 캔 감자는 수확량도 적고 알도 작지만 그래도 가을까지 든든한 부식이다.

요즘 텃밭의 주인은 가지, 오이, 고추, 상추다. 정말이지 하루가 다르게 자라나 처치 곤란이 되기도 한다. 서너 포기 심은 오이가 제일 무성하다. 처음 몇 개 열린 오이는 아삭아삭 오이무침으로 먹고, 제법 그럴듯한 첫 수확으로 한소쿠리나 딴 오이는 오이소박이를 담았다. 며칠 지나 김치를 다 먹기도 전에 또 한소쿠리를 따냈다. 이번에는 피클을 담았다.

그리고 며칠 지나니 팔뚝만큼 커다란 오이가 또, 한소쿠리다. 오이는 뭘 먹고, 이렇게 잘 크는지. 궁리 끝에 오이장아찌를 담았다. 크면 큰 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굵고 가는 것도 앞부분이 뾰족하고 잔뜩 꼬부라진 것도. 세 번이나 장아찌를 만들고 나니 냉장고에 각종 오이가 들어찼다.

오늘 아침, 텃밭으로 나간 남편이 팔뚝만큼 큰 오이 몇 개를 또 따왔다. 이번에는 늙어가는 오이다. 노각은 들깨볶음을 하면 되는데, 늙지도 젊지도 않은 오이로 또 뭘 만들지? 고민하다 검색의 길로 나선다.

이리저리 찾다 보니 반건조 오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방법이 보인다. 오징어도 아니고 명태도 아니건만 오이를 말려 반건조로 만든다고 한다. 굵은 소금에 절였다가 물기를 빼고 가지나 호박을 말리듯이 척척 걸쳐 말리는 모양이다. 하루나 이틀 소금에 절인 오이가 꾸덕꾸덕 말라가면 저장통에 넣어 간장물을 붓는다니, 꽤 신선한 방법이다.

오이가 얼마나 남았나 텃밭에 나가보니 오이넝쿨이 예전만 못하다. 뙤약볕에 지친 듯 시들하니 잎이 누렇다. 그래도 아직 남아서 제 몸을 키우고 있는 오이들은 늙은 오이가 될 것이다. 아침부터 더위다. 여덟시가 넘어서자 가만있어도 땀이 나서 얼른 들어와 선풍기를 튼다.

대파를 찾아서

요즘은 그야말로 불볕이다. 어머니는 아침부터 시작된 땡볕에도 아랑곳없이 텃밭에서 풀을 매고 계신다. 어린 모종으로 밭에 심었던 대파가 풀 속에 묻혀있어서다. 그 파를 찾겠다는 어머니의 일념이 뙤약볕보다 더 뜨겁다.

대파는 모종을 사다가 비닐멀칭을 하지 않고 비스듬히 심은 것이다. 대파는 가늘고 어려서 김장 때 보는 큰 파가 될까 싶었다. 그래도 해마다 진짜 대파가 되었다. 비닐멀칭을 하지 않고 심었으니 문제는 풀이다. 후두둑 몇 방울 떨어지는 비에도 풀은 파보다 빨리 무성하게 자랐다.

우리가 농장의 토마토를 베어내고, 파쇄하고, 유인줄과 점적을 정리하는 사이 어머니가 며칠 다른 곳에 계시다가 집에 오고 보니 파밭은 풀밭이 된 것이다. 그 꼴을 보고 가만히 계실 분이 아니니 대파를 찾겠다고 나선 것이다.

 

어머니가 풀 속에서 파를 찾을 때 나는 오이 무침, 피클, 장아찌, 오이말랭이…… 아삭아삭, 오독오독, 시원한 여름 반찬수분 가득 오이 요리 검색하다 말고 텃밭을 향해 덥다고 빨리 들어오시라고 소리를 질러댔다.

그 사이 어머니의 고군분투로 파밭이 나타났다. 풀과의 악전고투 뒤끝이라 몹시 쇠약해 보인다. 콩도 마찬가지다. 풀은 이길 수가 없어! 라고 늘 생각하는데, 풀을 이기는 어머니가 계신다. 텃밭 가장자리에 있는 옥수수는 그 아래 바쳐진 트럭을 타고 여행이라도 떠날 기세로 당당하다. 어머니는 그보다 더 당당하시다!

-71.2기념탑

폭염 속에서 오이가 늙어갈 때 오이먀콘을 찾아본다. 오이먀콘은 러시아 사하 공하국에 있는 마을로 인간이 거주하는 곳 중 가장 추운 곳이다. 이곳은 시베리아에 위치한 분지인데 1926년에는 -71.2까지 떨어졌다고 한다. 이를 기념하며 세운 탑에는 71.2동판까지 있단다. 이곳은 남극을 제외하면 가장 춥다. 1월 평균기온은 -46.4라고 한다. 이곳은 바이러스도 얼어 죽는다.

오이먀콘은 세계에서 가장 추운 마을인데 이름의 뜻은 얼지 않는 물이라고 한다. 아무리 추워도 얼지 않는 자연 온천이 있기 때문이란다. 1월에는 세계에서 가장 추운 국제 마라톤이 열리기도 했다. 이 마을의 사진을 보는 순간은 오싹해진다. 그러나 사진으로 내 몸에 닿는 더위를 물리칠 수는 없다. 그러니까 오이먀콘 보다는 오이냉국을 먹는 게 낫다는 말씀. 나도 오이에 대한 검색보다는 풀밭을 매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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