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바닥교육(16)땀 흘리고 일하는 사람들의 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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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바닥교육(16)땀 흘리고 일하는 사람들의 우정
  • 최순삼 교장
  • 승인 2022.07.13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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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삼 교장(순창여중)

6월 둘째 주 45일간 고립되어 지냈다. 다른 지역 교육청의 교육전문직(장학사) 선발 관련 토의·토론과 심층 면접 출제를 위한 출장이었다. 핸드폰도 금지되었다. 학교 상황이 궁금했다.

월요일 평상시보다 30분 일찍 출근했다. 우편물과 업무 관련 사이트를 확인한 후 복도로 나섰다. 영양교사가 교장실로 막 들어오려고 했다.

교장 선생님 빨리 오셨네요, 보고할 사항이 있어서요.” “~ 그래요.” “여기서 말해도 될까요” “괜찮아요.” “조리사 이○○씨가 이직(移職)을 한다고 해서요. 동계면에 작은 사회복지시설 조리사 자리가 있어서 옮긴다고 합니다. 우리 학교는 급식 인원이 280명이어서 조리 종사원 3명으로 너무 벅차고, 복지시설이 가까워서요.”

착하고 부지런한 영양교사가 걱정스러운 얼굴이다. 맞다. 순창에서 학교급식을 하는데 순창여중 식생활관 근무가 가장 힘들다. 급식 인원 대비 조리 종사 인원이 적다. 학생 수가 조금만 더 있으면 인원이 보강될 수 있는데, 경계선에 있다. 여학교이어서 반찬과 청결도 신경 쓴다. 그래서 식생활관에서 일하는 사람끼리 이심전심(以心傳心)이 중요하다. 순창여중 식생활관 사람들의 우정은 깊고 단단하다.

○○, ‘동계 양반’(필자가 부르는 별칭)은 작년 1월에 힘든 학교인 줄 알면서 우리 학교에 왔다. 순창읍에서 먼 동계면 마을에서 다녔다. 조리실에서 두 언니 조리사와 영양교사 사이에서 항상 웃는 얼굴로 일을 더 하려고 애썼다.

맛있게 먹어라. 부족하면 또 와. 이것이 몸에 좋아.”

아이들 개개인의 식생활 습관을 고려하며 정성으로 배식을 했다. 누구는 밥을 안 먹어서 걱정이고, 누구는 날마다 장애인 친구와 함께 밥을 먹어 너무 이쁘다고 말한다. 참 살가운 분이다. 조리실 하루는 다듬고, 삶고, 옮기고, 데치고, 푸고, 닦고, 뜨거운 열기로 땀 범벅이다. 그래도 항상 웃는 얼굴이었다. 뜻밖의 이별에 서운하고 아쉽다. 진심으로 새 출발을 축하해 주고 싶었다.

615일 오후에 매달 하는 교무회의가 있었다. 전 교직원이 참여하여 안건을 내고, 교장이 진행하며 현안을 토의·토론하고 합의하여 집행한다. 회의 전 환송식을 간단하게 하기로 친목회장과 상의했다. 퇴직이므로 친목회에서 적지 않은 전별금을 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정성껏 꽃바구니를 준비했다.

앞날에 행운이 가득하시길 소망합니다!”

마음 가는 데로 썼다. 친목회장이 환송 덕담을 해 달라고 했다. 리본에 쓰인 문장을 한 번 더 크게 읽는 것으로 대신했다. 덕담은 함께 일한 조리사분들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큰 언니 임○○씨 덕담 한마디 해주세요.”

만감이 교차하는 얼굴로 일어선다. 앞으로 나온 동계 양반을 한참을 본 후 3월에 와서 막 정이 들고, 일을 맞춰 가고 있었는데, 아쉽고 서운하다, 좋은 곳으로 가게 돼서 잘했고, 가서 꼭 몸 건강했으면 좋겠다말을 더 못하고 고개를 떨군다.

○○씨는 할 말이 많을 것 같은데요.”

힘들게 일어선다. 멀리서 보아도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야이 ○○○, 나를 두고 가버려. 가서 잘 먹고, 잘 살아라!”

아쉬움과 허전함에 목이 메인다. 그래도 눈빛은 끝까지 애틋하다. 모두가 힘찬 박수를 보냈다.

동계 양반이 답()했다.

처음 순창여중에 올 때 큰 학교여서 정이 없고, 서로 힘들어 삭막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언니들과 영양 선생님이 따뜻하게 대해주고, 선생님과 아이들과도 잘 지낼 수 있어서 즐거웠습니다. 옮긴다고 했을 때 언니들이 응원해주어서 미안하고 고마웠습니다. 여기 있는 분들이 꽃길만 갔으면 좋겠습니다.”

언니들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을 앞세우는 동계 양반이 멋졌다. 그리고 동계 양반은 복대를 차고 일하는 큰 언니의 아픈 허리가 걱정이고, 근골격계 질환이 심해지는 둘째 언니가 안쓰럽다.

국민과 주민의 삶을 책임지겠다는 선출직 공무원은 알아야 한다. 날마다 땀 흘리고 일하면서 서로 돕는 노동자의 진()한 우정을. ‘일하는 사람들의 우정이 우리 사회를 어떻게 지탱하고 있는가?’를 똑똑히 보아야 한다. 오늘도 일터에서 자판기 커피를 권하고, 일 끝난 후 쓴 소주잔을 나누는 사람들이 사회를 떠받치고 있다. 자기 밥그릇만 챙기는 정치인은 배워야 한다. 동계 양반의 밥 짓는 공덕과 함께하는 우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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