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랑재진/나올 게 없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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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랑재진/나올 게 없어져
  • 정문섭 박사
  • 승인 2022.07.27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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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섭의 고사성어 '마지막회'

나올 게 없어져

江郞才盡강랑재진

큰 내 강, 사내 랑, 재주 재, 다할 진 盡

 

새 정권이 들어서면서 많은 자리가 비어지고 또 생겨나 장관 등 수많은 요직이 바뀐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에게 해당되든 아니든 온갖 공공기관과 단체들의 주요요직에 대한 물갈이에 촉각을 곤두세우기도 한다. 관련 당사자들은 어디선지 물밑 작업이 이뤄지고 있는 것 같아 좌불안석이다.

한편 각 부처, 지자체에서도 내부적으로 내보내고 갈 자리 마련때문에 바쁠 것이다. 정년이 남았는데도 무리하게 내 보내려고 하고 당사자는 이에 반발하고, 밀고 당기는 가운데 급기야 감정이 악화되고 뒤틀리는 사태가 올 수도 있다. 이런 모습을 보고 싶다.

선배님, 정년 나이가 얼마 남지 않으셨으니 후배를 위해서, ○○으로 옮기시죠.”

올 것이 왔구나. 30여년의 공직생활이 여기서 마감되는구나. 강랑재진(江郞才盡), 이제 나의 헌 의자를 내어드리네, 후배들이 더 열심히 하여주시게.”

이연수(李延壽)가 쓴 남사·강엄전(南史·江淹傳)에 있다. 자칭곽박왈, 오유필재경처다년, 가이견환, , 절무미구, 시인위지재진(自稱郭璞曰, 吾有筆在卿處多年, 可以見換, , 絶無美句, 時人謂之才盡) : 곽박이 말하기를, ‘경에게 오랫동안 맡겨 둔 붓을 이제 찾아가려 한다이후 좋은 글을 쓰지 못하니 사람들이 그의 재능이 다했다고 말했다.

 

남북조(南北朝, 420-581)시대 고성(考城)에 강엄(江淹)이라는 젊은이가 있었다. 집안이 매우 가난하여 종이와 붓을 살 돈이 없었지만 스스로 열심히 노력하여 좋은 문장을 써내었다. 젊은 시절 재기가 넘치고 또 노력을 거듭하였으므로 광록대부(光祿大夫)가 되었고 훗날 양()나라의 저명한 문학가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나이가 점차 들면서 문장실력이 떨어지고 시를 지어도 특이한 점이 없이 그저 평범하므로 사람들의 입방아에 올라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강엄이 훌륭한 문재(文才)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한 필의 기묘한 주단(紬緞 : 명주와 비단 따위)을 갖고 있어서였다. 그런데, 어느 날 배를 타고 선영사(禪靈寺)에 갔다가 하룻밤을 묵었는데, 꿈속에서 진()나라 때 문학가 장경양(張景陽)이 나타나 그 주단이 자기 것이라 하며 돌려 달라고 하였다. 강엄이 할 수 없이 품속에서 쓰고 남은 주단을 꺼내어 주었다. 꿈에서 깨어난 후부터 다시는 뛰어난 문장을 써내지 못하게 되었다.”

강엄이 신기한 채색 붓을 갖고 있어 그 붓으로 좋은 시와 문장을 써 냈다. 그런데 어느 날 정자에서 잠을 자다가 꿈속에서 진()나라 때 시인 곽박(郭璞)이 나타나 그 채색 붓을 돌려 달라고 하였다. 결국 품에서 그 붓을 꺼내어 되돌려 주고 잠이 깨었다. 그런 이후 강엄의 글의 구상이 말라 좋은 시를 쓰지 못하게 되었다.”

당시 사람들은 강엄이 젊은 시절 재기가 넘쳐 글을 잘 썼으나 늙은 후에 퇴보한 것을 두고, 그가 이미 재진(才盡), 즉 재능이 다하였다는 뜻으로 이러한 성어를 만든 것이다. 즉 사람이 갑자기 무능해지거나 뛰어났던 재능이 차차 쇠퇴함을 이르는 말로 재사(才思)가 쇠퇴하여 더 이상 좋은 글을 쓰지 못하다’, 나이가 든 문인들이 자신을 겸손하게 생각한다는 의미로 쓰이게 되었다. 한편, 비판적인 시각과 교훈을 주는 의미로서, 당시 강엄이 현재 자신의 모습에 만족하고 안주하였기 때문에 더 이상의 발전이 있을 수 없다고 보면서 이러한 태도를 경계하는 말로도 사용되었다.

 

2011128, 필자가 <열린순창>의 문을 두들긴 이래 신문사의 배려와 고향 독자들의 성원에 힘입어 졸필을 써온 지 어느덧 11년 반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얼추 235여개의 고사성어를 풀이하면서 인문학적 관점에서 필자의 어린 시절과 학창시절, 30여 년의 공직생활, 10여 년 간의 중국생활, 은퇴 후 10여 년의 사회생활 속에서 가졌던 경험과 읽고 보고 듣고 느낀 것을 부가하여 써 봤던 것이다.

중국의 고사성어는 수천 개도 넘어 무한합니다만, 강랑(江郞)? 그의 발끝도 못 따르는 능력으로 글을 써 오면서 비로소 필자의 한계를 느끼고(才盡), 독자들의 식상마저도 감지 못한 채 오늘에 이르게 된 어리석음을 이제야 느끼며, 이제, 더 이상 써 나가는 것은, 하여 손을 놓고자 하는 것입니다.

글을 써 온 내내 즐거웠고 행복했습니다. 장시간 졸필을 연재해주시고 읽어주신 여러분께 무한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 송백 정문섭 배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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