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송용] 어르신들의 삶의 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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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송용] 어르신들의 삶의 질
  • 이송용 순리공동체(구림 금상)
  • 승인 2022.07.27 08: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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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에 살 때 우리 가족이 세 든 집은 말바우시장 끄트머리에 있었다. 재래시장에 다니는 분들의 평균 연령대가 높은 편이기도 하거니와, 오래된 주택가여서 그랬는지 동네 자체에 노인 인구가 많은 편이었다.

그 동네에서는 폐지를 수집하는 노인들을 심심치 않게 만나볼 수 있었다. 카트나 리어카를 끌고 다니며 본격적으로 폐지를 수집하는 분도 있었지만, 그냥 길 가다가 또는 장 보고 오다가 폐지가 있으면 그 자리에서 정리해서 집으로 갖고 가는 분도 있었다. 그래서 재활용 쓰레기 중에 종이나 박스 같은 것을 대문 앞에 내놓으면 금방 사라지곤 했다.

한번은 차에서 박스에 담긴 짐을 내리다가 대문 앞에 놓고는 깜박 했는데, 한두 시간 뒤에 아차 하고 가 보니 그 박스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어찌나 허탈하던지. 그래도 별 수 없었다. 그냥 어르신들이 그랬나보다 하고 허허 웃을 수밖에…….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면 폐지라도

내가 다니던 교회의 할머니 한 분도 폐지를 줍고 사셨다. 백발의 머리를 곱게 빗어 넘겨서는 올려 묶은 아름다운 분이셨다. 그분 집에 몇 번 가 보았다. 단층 주택의 평지붕에 있는 옥탑 방에 혼자 살고 계셨다. 무릎이 불편하신 분이었는데, 가파른 철계단을 위태하게 오르내리셔야 했다. 기초수급자였던 할머니에게는 정부에서 나오는 지원금이 있었다. 혼자 소박하게 사시는 분이었기에 그분에게 적은 돈은 아니었을 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할머니가 폐지를 주워야 했던 이유는 간단했다. 그 정부 지원금이 고스란히 월세로 나갔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면 다시 빈손이 된다.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면 폐지라도 줍는 수밖에…….

 

도시 어르신들의 삶이 치열하다

우리 가족이 시골에 와서 살게 되면서 흥미로운 점을 하나 발견했는데, 시골 어르신들은 폐지를 줍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 가끔 아궁이에 불 때는 데 필요하다고 종이나 박스를 한 줌 주워 가시는 분은 있다. 하지만 생계를 위해 폐지를 줍지는 않는다.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이 시골 어르신들에게는 일단 집이 있다. 때로 다 허물어져 가는 집이라 해도 최소한 월세를 낼 일은 없는 것이다. 나라에서 주는 기초수급비는 오롯이 그분들의 생활을 위해 쓰일 수 있다. 그러니 재정적인 압박이 적다.

더불어 조금씩이라도 이래저래 밭일들을 하고 계신 경우가 대부분이다. 거기서 조금이나마 소득이 난다. 고사리 삶아 말려서 장에 내다 팔기도 하고, 토란대, 돼지감자, 무말랭이 같은 것들 말려 놓으면 1톤 트럭이 마을을 지나다니며 사 가기도 한다. 개나(불편한 분들이 계시다면 죄송!) 염소를 한두 마리 키워서 파시는 분들도 있다. 명절에 손주들 손에 쥐어 줄 용돈 벌이는 되는 셈이다.

 

시골 어르신들의 삶의 질이 높다

비단 재정적인 부분만이 아니다. 아내나 내가 밭에 들어가 있으면, 어르신들이 지나가다가 한 마디씩 툭툭 던진다.

감자 심었으면 흙 덮어줘야 혀.”

비 온다는데, 콩 안 심는가?”

그럼 우리 부부는

, 흙을 덮어 줘야 하나요? 알겠습니다!”

, 콩을 지금 심으면 되는군요.”

하면서 어르신들 조언을 참고해 가며 농사를 짓는다. 도시와는 다르게 시골에서는 노인들의 권위가 살아 있다는 것을 느낀다. 이것은 그분들의 삶의 질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사람은 본질적으로 관계 지향적이며, 다른 이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 의미 있는 존재가 되길 원하기 때문이다.

 

어르신이 어르신 대접을 받는 시골

도시에서 길을 가던 노인이 지나가는 젊은이에게 한 마디씩 툭툭 던진다고 생각을 해 보라. 아마 정신 나간 사람 취급을 당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시골에서는 다르다. 어르신들이 어르신 대접을 받는다. 젊은 사람들의 삶에 관여할 여지를 갖는다. 이러니 삶의 질이 어떻게 다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검은 아스팔트로 뒤덮인 땅은 노인이라고 봐 주지 않는다. 젊은이건 노인이건 흰 줄이 그어진 트랙 위에서 매일을 경주한다. 그러나 검붉은 흙을 드러낸 땅은 자비롭다. 청년에게도 백발에게도 작물을 내니 말이다.

지나친 시골 찬가가 될지도 모르겠지만, 내 생각에 도시의 어르신들과 시골 어르신들은 표정부터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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