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쪽빛한쪽(11) 언체인 마이 하트(Unchain my he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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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쪽빛한쪽(11) 언체인 마이 하트(Unchain my heart!)
  • 선산곡 작가
  • 승인 2022.08.24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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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산곡 작가

 

‘Unchain my heart!’

커피콩을 간다. 전기를 이용한 커피 머신을 여러 종류 가지고 있지만 결국 수동적인 방법으로 회귀하게 되었다. 여과지에 내려 마시는 드립식으로 바꾸기로 한 것이다. 그렇다고 수동분쇄기에 한 줌 커피콩을 넣고 핸들을 돌리는 것은 아니다. 어쩔 수 없이 도깨비방망이 믹서로 사나흘 분 커피콩을 간다.

아들이 어렸을 때 고사리 같은 손으로 분쇄기 핸들을 돌리는 모습을 바라보았던 흐뭇함은 이젠 없다. 아들은 장성하여 집을 떠난 지 오래되었고 그 기억은 애잔함으로 변해 핸들로 커피콩을 갈기 싫다는 핑계가 생겼는지 모를 일이다. 커피콩 수동분쇄기는 이제 장식품에 불과해졌다.

주둥이가 백조 모가지처럼 기다란 커피 주전자로 깔때기 여과지에 물을 붓는데 귀에 익은 음률이 흘러나온다. 주방 수납장 밑에 옵션으로 달린 라디오 수신기가 있었다. 집 고치는 (리모델링) 기술자들이 뜯어 내버리려는 것을 특별히 다시 설치하도록 의뢰한 것은 내 고집이었다. 주방에서 일할 때 들어야 하는 에프엠(FM) 채널은 처음부터 고정되어 있었다.

저 노래가 왜 나와?’

식성 가릴 게 없는 FM 음악이지만 미국의 레이 찰스(Ray Charles)1964년에 불렀던 언체인 마이 하트(Unchain my heart)’였다. 영국의 코크(Joe Cocker)1987년에 다시 불렀다지만 그마저도 고전이 된 지 이미 오래다. 철없던 까까머리 학생 때 유행했던 팝송은 레이 찰스 버전이었고 극장 쇼 공연이면 단골로 들어있던 레퍼토리였다. ‘내 마음을 지워주오’, 마음의 사슬을 끊으려는 그 뜻이나 알고 그 노래를 불러댔을까.

커피 액이 떨어지는 동안 노래는 끝났다. 그 시절 그 호기심, 그 연약했던 감성, 그 출렁거리던 욕망은 어디로 갔는가. 어느덧 고령(高齡)이라는 단어가 무색하지 않은, 그 세월의 뒷자리가 지금 여기인가.

부질없음은 시간이 흐를 때마다 쌓인다. 세월의 흔적은 손에 잡히지도 않는다. 기억할 수 있음은 엄밀히 말해 마음의 사슬일 뿐이다. 애초에 표시할 수조차 없는 인생의 이정표지만 그 길 따라 이렇게 흘러온 것은 마음의 사슬을 천천히 지워왔기 때문이다. 지금 이 커피 한 잔이 그 마음의 사슬 하나 더 지워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커피잔을 든다. 그리고 가만히, 가만히 외쳐본다.

‘Unchain my he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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