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담농사일기(28)노릇노릇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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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담농사일기(28)노릇노릇하다
  • 차은숙 작가
  • 승인 2022.10.19 08: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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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은숙(글짓는 농부)
노릇~ 노릇~
노릇~ 노릇~

 

순창의 들판이 알맞게 익었다. 노릇노릇하다! 요즘이야말로 이 말의 색감과 어감이 실감난다.

노릇노릇은 부사로 군데군데 노르스름한 모양, 매우 노르스름한 모양을 뜻한다. ‘노릇노릇이라는 단어는 사투리도 다채롭다. 놀노리하다는 강원도, 노랑노랑하다는 경남, 놀놀하다·놀작하다는 전라 방언이다.

빵이 구워지는 것도, 전이 익어가는 것도, 고기가 구워지는 것도 노릇노릇인데, 다채로운 방언만큼 노릇노릇의 유의어도 많다. 노르스름하다, 노로꼬롬하다, 노름노름하다, 놀짝지근하다, 놀짱하다. 어떤 단어를 써도 노랑을 표현할 수 있는 말은 그야말로 무궁무진하다.

 

모든 노란색이 있는

농장으로 출근하며 눈에 들어오는 논에는 노란색과 황색의 경계에 있는 세상의 모든 노란색이 들어 있다. 그 노랑노랑한 빛깔을 마주할 때마다 경탄한다. 바라만 보아도 아늑하고 고요하다. 마음도 저절로 풍요롭고 다채로운 색감으로 채워진다.

우리 논은 다리 건너에 있는 몇 마지기가 전부지만 그래도 벼농사를 짓는다. 요즘 논농사는 기계가 농사를 다 짓는다고도 하지만 물을 대고, 빼고 예초를 하러 오간다. 또 일부러도 나락이 잘 자라는지 논에 다녔다. 어떤 때는 옆 논보다 더뎠고, 또 어떤 때는 실한 것도 같았다. 나락이 잘 됐다는 말은 참 기꺼운 말이었다.

우리 논의 나락을 마을 어르신이 더 잘 알고 계시듯이 우리도 마을 앞 들녘의 어떤 논에 피가 많으면 걱정이고 심란했다. 또 이맘때 쓰러진 벼도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태풍도 없었고, 큰비도 없었는데 나락이 쓰러진 걸 보면 적잖이 속상했다. 더구나 그 논 주인은 또 어찌나 부지런하신지 이른 아침에도, 땡볕일 때도 논에 들어가 있었는데. 또 다른 논은 재작년 돌아가신 어르신 논인데 그 분이 논둑을 오가던 모습을 엊그제도 보았던 것처럼 생생하기도 해서, 새삼 서운하고 안타깝다.

마을 앞 들녘이 아무 걱정 없는 듯 노릇노릇 익어가지만 벼농사를 짓는 농부들의 시름은 깊다고 한다. 농부들이 평안한 세상이 진짜 평화로운 세상일 텐데, 사람들의 평화는 언제나 멀리 있다.

 

배추 속에 든 노랑

마지막 호박꽃과 꽃 같은 배추
마지막 호박꽃과 꽃 같은 배추

 

동요 중에 <가을은>이라는 곡이 있다. “가을은 가을은 노랑색 은행잎을 보세요/그래그래 가을은 노랑색 아주 예쁜 노랑색이렇게 시작한다. 가을은 노랑색이 맞다. 김장할 배추가 꽃처럼 예쁘다. 푸른 배추도 그 속에 노랑을 키우고 있다. 배추의 푸른 잎사귀 속에 웅크리고 있는 작고 어린 고갱이의 노랑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배추 모종을 심은 건 지난 달, 배추 모종을 심고, 무와 갓씨도 뿌렸다. 뿌린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무는 쑥쑥 자라 솎아서 어린 무청으로 시래국을 삶았다. 제법 굵어진 무로 무국도 끓였다. 그리고 김치도 담았다.

그 사이 배추는 그야말로 폭풍 성장을 했다. 배추를 심었던 중에 올해 배추가 제일 좋은 듯 싶었다. 올해는 배추밭을 옮겼다. 해마다 고추를 수확하고 나서 고춧대를 베어낸 다음 고춧대 사이 배추 몇 백 포기를 심었다. 하우스 옆 긴 밭에 심은 배추 크는 게 고르지가 않았다. 배추밭도 점적호스를 깔아 물관리도 하고 비료를 줬지만 그다지 실하지는 않았다.

올해는 가족 김장을 마감하고 우리 집 김장만 하기로 '합의'를 했다. 그러니 배추는 100포기도 많았다. 그에 따른 갓, , 쪽파 등 양념들도 자연히 적어졌다. 밭도 넓지 않아도 되니 집 뒤에 있는 텃밭으로 옮겼다. 봄에 가지, 오이, 꽈리고추를 심었던 밭이다. 밭을 옮겨서일까? 물주기와 비료주기를 바꿔서일까. 어쨌든 올 김장배추는 걱정이 없다.

가을에 만나는 노랑은 호박에도 아직 남아 있다. 봄부터 호박잎만 무성하고 여름까지 제대로 호박 하나 내놓지 않더니 뒤늦게 꽃을 피우고, 호박을 쑥쑥 내놓았다. 이제 늙기 시작한 호박도 누릿하다. 그리고 올해 마지막이지 싶은 호박꽃까지.

가을은 노랑색이라고 식탁 위에도 노랑이 찾아왔다. 어머니가 마을 사람들과 가을 나들이를 가셨다가 군산에서 사온 멍게다. 그리고 제대로 굵어진 대파를 잘게 썰어 넣고 만든 계란말이와 멍게 사이에도 수많은 노란색이 있다.

읍내 객사 앞 느티나무에도, 어느 집 앞의 감나무에도 가을이 와 있다. 빨강과 노랑이 사이 좋게 어울려 핀 분꽃에도.

사이좋은 노랑과 빨강
사이좋은 노랑과 빨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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