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쪽빛한쪽(13) 가을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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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쪽빛한쪽(13) 가을이 간다
  • 선산곡 작가
  • 승인 2022.10.26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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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산곡 작가

 

오랜만에 가요 좀 들어봅시다.”

아내가 장갑을 끼며 하는 말이다. 바깥일 하기 좋은 오후, 뜰에 차도록 오디오의 볼륨을 높이고 밖으로 나온다.

누가 울어 이 한밤~.”

가수의 목소리가 처절하다. 반주로 흐르는 첼로의 음색도 마찬가지다. 청바지 입어보는 게 소원이었다는 가수. 그는 젊은 나이에 요절(夭折)했다. 그가 부른 노래들 대부분은 그가 원했건 원하지 않았건 자기의 짧은 삶을 예견하는 비탄(悲嘆)을 품고 있다.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음은 살아있는 사람들의 몫이지만 그러나 운명처럼, 그는 그렇게 정해진 길은 갔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노추(老醜)의 굴레는 쓰지 않았다는 말로 그를 회상하는, 쓸쓸한 변명이 잠시 스쳐간다.

울타리의 느티나무 잎이 흡사 비늘처럼 떨어진다. 엊그제 내린 서리 때문인지 뜨락 곳곳에 서 있는 나무의 잎들이 지기 시작하고 있다. 바람이 불어 계곡 쪽으로 날아가기도 하지만 잔디 위에 떨어진 조각들은 깍지를 낀 것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몇 해 전부터 별생각 없이 내버려 둔 낙엽이 나쁜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최근에 깨달았다. 쌓인 잎들로 생긴 습기 때문에 잔디밭에 이끼가 끼기 시작했고 덕분에 봄부터 생각지도 않은 갈퀴질을 해야 했다.

낙엽을 치우는 것보다 이끼를 후비는 일은 생각보다 중노동이다. 잠시 쉬기 위해 내동댕이치는 갈퀴가 저만치 떨어지자 아내가 킥킥거리고 웃는다. 계단에 몸 부리고 학학거리고 앉아 하늘을 본다. 서편 산마루에 그림처럼 펼쳐진 구름. 구름은 멈춰 있어 보이지만 실은 흐르고 있을 것이다. 저 구름이 지워가는 게 시간인지 모른다.

내 인생도 가을이라는 생각이 깊게 젖은 지 오래지만 흐르는 유행가는 옛 시절의 것 그대로다. 저 요절한 가수의 목소리도 그대로다. 내 청춘도 한때였지, 그 정열도 한때였지. 노랫말들이 점점 내 인생을 닮아간다는 것 같다. 어쩐지 따라 부르기 힘들다는 이유가 그거였음을 깨닫게 된 오후,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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