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미육아] 다미가 집으로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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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미육아] 다미가 집으로 왔습니다
  • 조은영
  • 승인 2022.11.23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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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영(동계 내룡)
둘째 손녀 '다미'
둘째 손녀 '다미'

 

차가운 서리에도 곱게 빛나던 단풍이 바람결에 떨어집니다. 더이상 버틸 여력이 없었던 잎새는 새털보다 가볍게 날리고 있네요. 그 빽빽하던 숲이 조금씩 속살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겨울 문턱입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고 하더니, 그 말이 맞나 봅니다. 뜨거웠던 여름 우리 가족에게 일어났던 아픔이 잊히고 있습니다.

넉 달을 병원 인큐베이터에서 보낸 둘째 손녀 다미의 퇴원 소식을 아들이 전해왔습니다. 떨리는 마음을 애써 모른 척 외면하며, 남편과 함께 백설이를 동반한 채 고속도로를 달렸습니다. 나는 청주에 도착해 첫째 손녀 다율이를 돌보았고, 남편과 아들 내외가 ○○병원으로 아이를 데리러 갔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다미는 바구니 카씨트에 들려져 있었습니다. 이목구비가 뚜렷한 아이는 뽀얀 살결이 믿기지 않을 만큼 고왔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집에 온 다미를 며느리는 신생아 침대에 뉘었습니다. 무엇이 불편한지 침대에 누운 아이가 칭얼대기 시작합니다. 옆지기는 그런 다미가 안쓰러웠나 봅니다. 두 팔로 안아서 꼭~ 안아줍니다. 밖에서 들어와서인지 발이 차갑고 푸르스름한 냉기가 있습니다. 할아버지의 심장 소리를 들으며 안정을 찾은 다미가 스르르 잠이 듭니다.

잠든 아이를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습니다. 세상에 나올 준비가 전혀 안 된 핏덩이를 엄마인 며느리의 건강 악화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세상 밖으로 나와버린 아이입니다. 볼수록 맘이 미어집니다. 그런 다미를 할미의 간절함으로 꼭 안아주었습니다.

 

다율이가 언니가 되었어요

낮잠을 자고 일어난 첫째 다율이는 둘째 다미를 안고 있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엄마의 모습을 보더니, 충격을 받은 것 같습니다. 지금껏 모든 가족이 자신만 바라보고 안아주고 예뻐했는데, 사랑을 동생에게 빼앗겼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칭얼대고 울부짖으며 안아 달라고 떼를 씁니다. 주먹을 쥐고 와서 다미를 때리기가 일쑤입니다.

둘째가 태어나면서 첫째가 마음의 상처와 정서 불안이 찾아온다고 하더니 맞나봅니다. 엄마인 며느리는 며칠만이라도 다율이를 챙기겠다며 다미를 나에게 맡기고 다율이를 다독입니다. 둘째가 집으로 돌아온 뒤 다율이는 성장통을 겪고 있습니다. 아이에서 세 살 언니가 되어가는 일이 힘이 드나 봅니다. 잠시도 엄마 곁에서 떨어지기 싫어하는 큰아이를 두고, 둘째를 안아야 하는 며느리나 가족 모두가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두 아이를 양육하며 집안일 하는 것이 무리인 며느리여서 양가에서 격주로 도움을 주고 있지만, 막상 닥치고 보니, 가족 모두가 합심해도 시간이 갈수록 피로가 누적되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평소 집안에서 아이 돌보는 것을 기쁨으로 알던 며느리가 자녀 둘 키우는 것보다 직장일이 쉽겠다고 힘듦을 표현합니다. 오래전 우리 5남매를 기르셨던 어머니는 어떤 마음이셨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5남매 장녀, 나 어릴 적에

어릴 적에 할머니가 계셨던 우리 형제들은 큰방에서 할머니와 같이 지냈고, 엄마께서는 주로 집안일을 하셨습니다. 또한 첫째 장녀였던 나는 엄마를 대신하여 동생들을 돌보아야 했습니다. 특히 남동생인 넷째와 막내는 거의 저의 손에서 자랐습니다. 또래 친구들과 술래잡기며 고무줄놀이도 하고 싶었는데, 동생들을 등에 업은 나는 아이들 노는 것만 바라보아야 했습니다.

어느 날 넷째를 업고, 셋째 여동생을 데리고 동네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나가야 하는 길에 황소가 메여 있었습니다. 소를 묶은 줄을 땅에 말뚝을 박고 메어 놓았기 때문에 지나가도 되었을 텐데, 뿔이 두 개 달린 커다란 소가 무서웠던 나는 동생을 업은 채로 그 자리에서 울기 시작했습니다. 동생들도 따라 울기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울었을까요. 다리에 힘이 빠진 나는 하필 돌에 부딪혀 넘어졌고 무릎에서는 피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피를 보자 더 큰 소리로 울었지요. 마침 지나가던 동네 분께서 우리들을 달래며 피 흘리는 무릎을 닦아 소독해 주었고 천으로 감아 주셨습니다. 그날의 무릎 상처는 지금도 남아있습니다.

며느리와 다미
며느리와 다미

 

그리운 나의 할머니

이제는 할머니가 된 중년의 여인을 거울 앞에서 봅니다. 그녀에게서 아이의 모습을 찾아볼 수는 없지만, 시간을 거슬러 가 보니 빨간 기와지붕 아담한 한옥이었던 우리집 마당에는 해마다 각양각색의 꽃들이 사철 피어 있었습니다. 그 너머에는 대추, 자두, 앵두나무도 있었습니다. 면사무소에 다니셨던 아버지께서는 집에 오시면 삽을 들고 집안 여기저기를 살피고 다듬기를 멈추지 않으셨지요.

지금의 저보다 훨씬 젊고 고우셨던 우리 엄마께서는 닭장에서 달걀을 꺼내어 매일 달걀후라이를 도시락에 얹어 주셨습니다. 나무로 만든 쌀 뒤주가 있던 대청마루도 그리움으로 남아있습니다. 할머니 방에는 아담하고 운치 있는 장롱과 벽장이 보물처럼 있었구요.

특히 벽장에는 곶감과 과자, 연시, 유과, 약과 등 당신 손주들을 위한 먹거리가 가득했지요. 요즘 세상과 비교하면 별거 아니겠지만, 어린 맘에는 그 안이 매일매일 궁금한 비밀의 공간이었습니다. 서울에 사시던 큰고모님과 작은고모 그리고 작은아버지께서 다녀가실 때마다 주신 용돈을 모아서 손주들에게 주려고 맛있는 먹거리들을 벽장 안에 챙기셨던 겁니다. 지금은 계시지 않지만, 다율이와 다미를 향한 나의 모습에서 어린 시절 할머니를 보고 있습니다.

인연으로 생명을 부여받고 부모님과 가족의 사랑, 희생으로 우리는 존재합니다. 젊은 시절에 아들을 품었을 때는 미처 알지 못하고 놓쳤던 마음을 손주를 얻으면서 새롭게 알아가고 있습니다. 달력 한 장을 남겨 놓은 올 한해 어떻게 보내셨나요? 저는 감사한 마음으로 남은 시간들을 보내려고 합니다. 여러분 가정에 평화와 사랑이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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