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일] 비 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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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일] 비 움
  • 강성일 전 순창읍장
  • 승인 2022.12.06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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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일 전 순창읍장(금과 전원)

12월이다. 무성했던 산야는 헐거워졌고 나무는 빈 몸으로 시린 겨울을 맞고 있다. 앙상함이 처연하기도 하지만 군더더기 없는 정결함도 느껴진다. 모든 생명체는 순환의 과정을 거친다. 봄철엔 대지의 생명력으로 잎과 꽃을 피우고 여름엔 태양의 뜨거움으로 열매를 키우며 가을의 선선한 풍광으로 결실을 맺고 이젠 알몸으로 삭풍을 맞고 있다.

사람의 삶도 마찬가지다. 젊어서는 꽃피우고 열매맺는 성취가 있지만 나이 들면 계급장 없는 삶으로 돌아간다.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이다.

집사람이 도자기 공방을 하려고 준비했던 장비들을 몇 달 전에 다 처분했다. 집사람은 2017년 금과에 집 지을 때부터 공방을 계획하고 작업장, 토렴기, 성형틀, 가스가마 등 필요한 시설과 장비를 갖췄다. 나는 처음부터 미덥지 않았다. 모든 일은 시간이 요구된다.

특히 몸으로 하는 일은 숙달이 되어서 몸이 먼저 반응을 해야 한다. 도자기도 오랜 노력이 필요한데 집사람은 50세 넘은 나이에 대학 가서 2년 공부하고 동호회에서 몇 년 활동했던 경험으로 자신의 공방을 연다기에 아니라고 생각했다.

우리 부부는 서로의 생활에 거의 관여를 않는데 한마디 했다. 나이가 있으니 공방을 차려 직접 운영하는 것보다 다른 공방에 가서 취미 활동 수준으로 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내 말은 마이동풍이 되고 자기 생각대로 준비하길래 공방에 대한 열망이 강한가 보다라고 생각했다.

공방 운영에 필요한 시설과 장비는 갖췄지만 코로나 상황이 되면서 사람 모이는 게 안되니 시작도 못하고 몇 년이 흐르면서 장비를 한 번도 써보지 못하고 이번에 다 처분했다. 손해본 돈은 인생 수업료라 생각하면 된다. 집사람도 공방과 설비는 갖췄지만 운영을 못하니 숙제를 안한 것 같이 찜찜했는데 치워지니 후련한 모양이었다. 환해진 공방을 보고 나서는 좋다고 했다.

내가 한마디 했다. 이젠 나이가 60 중반이니 하던 일도 정리할 때다. 새로운 일은 벌리지 말고 물건도 있는 것 쓰며 살라고 했다. 바로 응답한다. 이젠 돈이 없어서 사고 싶어도 못 산다고. 그 말에는 남편이 생활비를 적게 준다는 푸념도 들어 있다. 좀 부족하게 사는 게 삶의 질을 높인다. 음식도 많이 먹으면 그땐 만족스럽지만 바로 나른해지고 졸린다. 생활도 그렇다. 조금 부족해야 눈도 초롱초롱하고 몸도 부지런히 움직이게 된다.

덜어내거나 비우며 살면 상쾌해지는 걸 느낀다. 이발만 해도 기분이 좋고 목욕하고 나서 캔맥주 하나 마시면 그 청량감은 황홀한 수준이다. 시가지에서 오래된 빈집을 철거해 공터가 되면 바람길이 뚫린 것 같이 시원하고 주변 경관이 다르게 보여 그 자리에 서서 느껴 보기도 한다. 청소하고 치우는 것도 정신을 맑게 한다. 한땐 명상도 시도 해봤지만 내 성향과는 맞지 않고 망상만 심해서 그만뒀다.

그런데 청소를 하거나 정리를 하고 나면 기분이 좋다. 사람마다 스타일과 수준에 차이가 있으니 방법도 달라야 한다. 나는 생활이 인생 공부라 생각한다. 우리는 코로나 상황을 겪으면서 소소한 일상의 소중함을 깊이 느꼈다. 지인들과 삼겹살에 김치 구어 소주 한잔 마시는 게 무척이나 그리웠다.

10월엔 감을 우려먹어봤다. 4년 전에 대봉감 묘목을 심었는데 올해 감이 26개나 열려서 신기했다. 감 대부분이 햇볕을 많이 받는 동남쪽으로 달렸다. 아직은 나무 몸통이 가늘어서 저 무게를 버틸 수 있을까 걱정을 했는데 결국 가지 하나가 부러졌다. 감이 11개나 달렸고 알도 제법 굵었다. 그때는 떫어서 먹을 수는 없었는데 버리기가 아까워서 인터넷에서 감 우리는 방법을 찾아보니 간단했다. 우린 감을 먹으면서 할머니와 외할머니가 생각났고 철없이 굴었던 일이 회상되어 한참을 반성했다.

필부(匹夫) 와 성자(聖者)의 차이는 단순하다. 필부는 죽을 때까지 하나라도 더 가지려고 아등바등 되고 성자는 하나라도 더 버리려고 목숨까지 건다. 겨울에 잎을 버려야 봄에 새싹을 얻을 수 있다는 걸 나무가 보여 준다!!

자거나 찾아오는 길고양이 6마리를 아침저녁에 밥을 챙겨주는 건 신경이 꽤 쓰인다. 외출할 때도 애들 밥때에 맞춰 들어온다. 그애들이 크게 말썽을 피우진 않지만 서로 싸우거나 울거나 집사람 차위로 올라가 발자국을 남긴다든가 비닐 하우스위를 올라가면서 찢기는 등 작은 사고를 치면 조용히 타이른다. 너희들이 그러면 사람들이 싫어하고 하씨(나는 그애들을 손자로 생각한다)가 입장이 난처하니 그러지 말라고 대화하듯 말한다. 비교적 말을 듣는 것 같다. 간혹 밥 주는 시간이 늦어지면 내 방앞에 와서 울며 밥 달라고 신호를 보낸다. 창문을 열어보면 이빨을 보이며 보채는 게 귀엽기도 하다..

사람이 상황을 바꾸기는 어려워도 대응하기는 자기가 마음먹기에 얼마든지 가능하다. 길고양이를 처음엔 연민으로 대했다. 불쌍했다. 산에서 사는 야생 짐승도 아니고 집에서 먹이를 챙겨주는 집짐승도 아니고 눈총받는 천덕꾸러기 길짐승이었다.

나라도 구박하지 말자고 생각하며 밥을 챙겨주기 시작했는데 이젠 내 생활의 한 부분에 자리하면서 내 감성이 촉촉해짐을 느낀다. 그리고 퇴직해 집에 있는 남자들은 대부분 을()이다. 그런데 그 애들에겐 내가 갑()이다. 또한 나이 들면 몸뚱이도 생각도 건조해지고 말라비틀어진다. 그런 걸 꼰대라 한다. 여러 생명과 함께 살다 보니 감성이 살아나는 걸 느낀다. 복이라 생각한다.

수시로 변하는 신통한 재주를 가진 요물이라서 상대하기가 어렵다. 내가 하기에 따라 내 하인도 되지만 순식간에 나를 가지고 놀기도 한다. 많은 실패를 거듭하며 얻은 결론은 좋은 습관을 갖는 게 현실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먼저 해야할 게 절제다. 생각도, 말도, 물자도 절약하고 줄여야 한다. 그렇다고 인색은 아니다. 습관이 나를 이끌어 간다. 별거 아닌 일상이지만 의미를 부여하고 정성이 함께 하면 별것이 될 것이라 믿는다.

이젠 석양의 나이가 됐다. 생각은 아직 철부지인데 몸은 세월의 무게를 느낀다. 반응이 늦고 회복은 더디고 쥐도 자주 나고 기억력도 떨어진다. 지금의 나를 인정하고 마음의 고삐를 잡고 몸은 다독이며 살겠다. 생물은 생존하며 진화하고 나는 생활하며 향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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