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순창읍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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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순창읍 풍경
  • 림재호 편집위원
  • 승인 2022.12.21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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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순창읍 시가지 지명 설명

 

1. 삼양도정공장  2. 순창도정공장  3. 계림사 서점  4. 명문당 서점  5. 학예사 서점  6. 밀림당 빙과  7. 은파미용실  8. 서장관사  9. 성원사진관  10. 산림조합  11. 쌍치상회  12. 양조장  13. 새집  14. 전파사  15. 목욕탕  16. 중앙집(1중앙문화센터(2)  17. 백합사진관  18. 백명라사·백명양장  19. 신성라사  20. 순창병원  21. 순창문화원  22. 남원집  23. 군 농협  24. 성주다방  25. 오복당제과  26. 백설빙과  27. 정화미용실  28. 삼천리자전거  29. 정미소  30. 풍산옥  31. 조대현 사법서사  32. 대중식당  33. 백산옥  34. 풍일옥  35. 순창극장  36. 면사무소  37. 경찰서  38. 등기소  39. 연탄공장  40. 경천 꼬부랑나무  41. 적성여관  42. 남창여관  43. 군수관사  44. 구구당구장  45. 일월식당  46. 전매서 47. 동백다방  48. 레몬집빙과  49. 화창반점  50. 서울여관·서울다방   51. 순흥택시  52. 기와공장  53. 농협창고  

 

1960년대는 4.19혁명(1960), 5.16군사정변(1961), 한일국교 정상화(1965), 월남전 참전(19641973)으로 이어진 격변의 시기였다. 산업화와 도시화가 급격히 진행되고, 이농현상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교통과 통신·대중매체가 발달함에 따라 문화가 다양해지고, 민주화 투쟁이 시작되는 시기이기도 했다. 1960년대는 인구가 폭증해 지금과는 반대로 산아제한정책이 실행된 시기이기도 했다.

1965년 기준 순창군 인구는 105521명으로 정점을 찍었던 해였다.

 

순창 공용버스정류장(터미널)

2015년 간행된 순창군지(향토문화전자대전)에는 순창군 공용버 정류장은 1980년대에 지어진 이래라고 기술돼 있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기록이다.

1950년대에 광주여객과 전북여객이 각자 다른 정류장에서 운행하다가 1955년 창림동마을이 조성되고, 1959년 현재의 광주-남원 국도가 깔리면서 공용버스정류장이 조성된다. 순창공용버스정류장은 1960년대 초 창림마을 지금의 성운세탁소와 스터디카페 부근에 있다가, 몇 년 후 지금의 알파문구 자리로 이전했고, 1964년 경 현 위치에 자리 잡게 된다.

 

순흥택시

1960년대 후반에 지금의 미호베이커리에 자리 잡아 순창군민의 길잡이 역할을 독톡히 했다.

 

읍사무소

순창극장 옆에 있다가 1966년에 1년 동안 옥천로 21-2(순화리 248-5·예전 구구당구장 자리)를 임시 사용하고, 터미널사거리 현 다이소 자리에서 업무를 보다가 1995년 현 청사로 이전했다.

 

우체국

순창우체국은 처음에 지금의 순창농협(구 단위조합) 자리에 있다가 1960년대 후반 지금의 썬마트 자리(순창읍 장류로 361)로 옮겼으며, 19911210일 현 청사 자리로 이전했다.

 

농협 순창군지부, 산림조합

1961<농업협동조합법>이 제정 공포되면서 종합 농협 체제인 순창군농협이 출범했다. 현 대동의원 자리였다.

순창군 산림조합은 196235일 설립 인가를 받아,19687월 현 위치인 순창읍 남계리 432번지로 이전했다.

 

순창성당

1960년 순창읍 남계리 205번지(순창로 247)에 건물을 세우고 천주교 순창성당으로 승격되었다.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성당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었으며, 오른쪽에는 조그마한 연못이 있었다. 개구리와 잠자리가 많아 아이들의 놀이터이기도 했다.

 

순창여고 개교

현 해태아파트 자리에 1955년 개교한 순창여중에 이어, 공립 인문계 여자고등학교 순창여고가 196734일에 개교했다.

 

순창북중·고등학교 개교

순창 최초 사립중학교인 순창북중학교가 196410월 학교법인 옥천학원 재단 인가를 받고, 다음 해 37일에 충신마을((순창읍 옥천로 67-13)에서 개교했다. 196732일에는 군내 최초 사립 인문계 남자 고등학교인 순창고등학교가 개교했다.

 

경천 꼬부랑나무 - 사진 속 인물들은 순창초등학교 61년 졸업생들의 4학년 시절 모습이다.(1966년) 사진 신승호 제공

 

 

한정식

판문점·새집·남원집 등이 있었다. 판문점은 원래 망고개(물통고개) 정상에 있었는데, 이곳이 순창읍·인계·유등 경계에 걸려 있어 판문점이라 이름을 지었다 한다. 나중에 지금의 대동의원 앞으로 이전했다. 새집(1957년 개업)과 남원집(1960년대 초)은 개업 이래 현 위치에서 지금까지 운영하며 순창 한정식의 대명사가 되고 있다.

 

전문 한식점

풍산옥은 순창식 곰탕으로 유명한 1960년대 대표적인 순창 맛집이었다. 머우대와 콩나물, 소고기가 가득하고 국물이 시원해 계모임 등 단체 손님도 많았다. 풍산옥은 1969년 경부터는 화순집이 그 자리를 이어받았다. 경천 변 지금의 구림식당 자리다.

닭곰탕과 추어탕으로 유명했던 일월식당은 지금의 권치과 자리에 있었으며, 현 군립도서관 앞 주차장 자리에는 맛이 빼어난 팥죽집이 있었다.

 

중국음식점

중국인 곡상 가게 : 당시 우체국(현 순창농협) 앞에 있었다. 서울로 갔다가 다시 돌어와 부인과 함께 운영했는데, 1950년대와 달리 작은 규모였지만 만두와 찐빵은 비교 불가의 맛 자체였다.

화창반점 : 터미널 옆 지금의 피자마루 자리 2층에 있던 중국인이 운영하던 중화요리 식당이었다. 물만두를 비롯해 정통 중화요리로 명성이 자자했다.

순창극장 앞 : 군청 방향에서 시장 쪽으로 백산옥과 대중식당이 나란히 자리 잡았다. 조금 떨어져 극장 사거리에 부래옥도 있었다. 그 중 대중식당은 현재도 중앙로(순창로)에서 ‘2대째 짜장으로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평산식당 : 십자지거리에서 경천 방향으로 조금 가서 왼쪽에 있었다.

 

요정 등 술집

호남관·광주관·한일관(현 물레방아 기름집)은 요정 또는 기생집이라 할 수 있었으며, 중앙집(현 중앙로 사거리 도로), 풍일옥(순창극장 앞), 시민주점은 기생집보다는 한 단계 격이 낮은,‘여자종업원을 고용한 식당 겸 술집이었다. 현 대동의원 건너편에 삼이홀이라는 맥주홀이 있었다. 선술집(막걸리집)으로는 대전집, 동산식당(bbc치킨), 인계집 등이 있었다.

 

빙과점

봉명식 씨가 1950년대부터 운영하던 최초의 빙과점에 이어 백설빙과(현 대궁 건너편), 밀림당(시장 미곡전 부근), 레몬집(구 전주하숙집, 현 순창슈퍼), 등이 있었으며, 현 터미널 옆 순창금방 자리와 순창극장 사거리에도 빙과점이 잠시 운영되었다.

 

제과점

오복당 제과점이 현 군립도서관 입구 부근에 있었다. 기름에 튀긴 단팥 찹쌀 도너츠와 카스텔라, 그리고 예쁘게 고명을 입힌 각종 팥소찹쌀떡(모찌)이 오복당의 대표 상품이었다. 양과자라고도 불린 팥소찹쌀떡세트는 당시 인기 선물상품이었다. 순창 제과점 역사는 1970년대 조아당(당시 정읍집 식당 옆),1980년대 풍년제과(당시 군 농협 건너편)로 이어진다.

 

이발소

1970년대까지만 해도 나이가 적고 많음에 관계없이 남자는 이발소(이용원), 여자는 미장원으로 서로의 영역이 확고히 갈라져 있었다. ·고등학생과 일부 초등학생들은 일제강점기부터 이때까지 삭발을 했고, 대다수 초등학생들은 앞 머리를 가지런히 자르는 상구단빌이라는 헤어스타일이었다.

대표적인 이발소로는 옥천이발소(지금의 맥반석 옆), 칠성이발소(현 순창농협 옆), 동명이발소가 있었다. 그 외 순창극장 건너편 조대현 사법서사 옆과 교육청 옆, 옥천동에도 이발소가 있었다.

순창초등학교는 교내에 이발소가 있었다. 읍내 이발소의 절반 정도 가격으로 매우 저렴해 많은 학생들이 이용했다.

 

미용실(미장원)

1960년대에 앞머리와 귀 양 옆에 볼륨을 준 듀오라인스타일(일명 바가지 스타일), 정수리 부위를 최대한 부풀린, () 육영수 여사의 헤어스타일이 유행하면서 순창읍에도 많은 미용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1960년대 순창읍 미용실에는 정화미용실(순창극장사거리 정미소 건너 임병수 씨 가게), 서울미용실(현 대동의원 맞은편), 은파미용실(현 순창농협 근처), 성심미용실(영생약방 건너편) 등이 있었다.

 

양복·양장점

1960년대 산업화에 따른 섬유산업의 발달과 대중매체의 보급은 외형적인 생활양식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한복이 주류를 이루었던 일상복이 양장으로 바뀌어 양장시대가 정착되기 시작했다. 1960년대 후반에는 미니스커트와 통이 넓은 판탈롱팬츠(나팔바지)가 젊은이들에게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순창읍에서도 일부 중·고등학생들은 교복 바지통을 넓힌 나팔바지를 입는 것이 유행이었다. 1960년대 말 순창읍에는 기성복 판매와 함께 신성라사·백명라사를 비롯한 양복점, 백명양장 등 여러 양잠점이 성업했다.

 

연탄공장과 석유가게

1960년대 순창읍 겨울 난방은 땔감나무와 연탄, 석유가 공존했다. 읍내 주변 산은 민둥산으로 변한 지 이미 오래여서 성인 남자들은 지게를 지거나 리어카를 끌고 갈재나 강천산까지 가서 땔감 나무를 베어 왔다. 대다수는 자수골목 옆 땔감나무 시장에서 장작을 구입했다.

각급 학교에는 조개탄이 제공되었고, 군청 앞 순창교 건너 교성리 교항마을에 연탄공장이 있었다. 주유소가 생기기 전 석유가게는 지금의 대동국수 자리, 대궁 옆, 십자지거리 등 여러 곳에 있었다.

 

자전거·손수레·달구지

순창읍 자전거가게는 삼천리자전거(현 위치), 창성자전거(현 맥반석목욕탕 건너편), 눈보네자전거(시장통) 등이 있었다. 1960년대 순창읍에서는 자전거 가게에서 리어카(손수레)도 제작해 주었다고 한다.

광복 후부터 1960년대 말까지도 달구지는 전국적으로 중요한 수송 수단이었다. 달구지는 소나 말이 끄는 짐수레를 말한다. 소달구지는 우차(牛車), 말달구지는 마차(馬車)라고도 부르고 둘을 합쳐 우마차라고도 한다. 곡식 가마니를 비롯해 여러 종류의 짐을 운반했다. 1960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순창에서 소달구지는 흔히 볼 수 있었고, 말달구지도 당시 순창병원 건너편 집에서 1960년대 후반까지 운행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대중목욕탕

1960년대 후반(1967년 경 추정) 순창 최초의 대중목욕탕인 순창목욕탕이 생겼다. 지금의 산울림주점 자리이다.

 

구구당구장

구구당구장은 순창 최초 당구장이다. 1950년대 후반 현 메디컬센터 자리에서 영업을 시작해 터미널 준공에 맞춰 동백다방 건물 1층로 이전했고, 1967년 옥천로 21-2(순화리 248-5)로 이전했다. 1970년대 초에는 쌍치상회 자리에 홍백당구장이 문을 열었다.

 

만화방(만화가게)

만화방(만화가게)은 당시 어려운 경제상황에서도 어린이들의 대표적 오락이자 문화생활로 자리 잡았다. 당시 정부와 부모들에게 만화는 어린이들에게 나쁜 영향을 주는 규제의 대상이었지만, 어린이들은 용돈이 생기면 부모 눈을 피해 친구들과 함께 만화가게를 찾아 즉석에서 구독하거나, 집으로 빌려가 여러 사람이 돌려가며 구독했다.

1960년대 최고 인기 만화는 산호의 <라이파이> 시리즈, 김종래의 사극, 엄희자의 순정만화, 박기당의 괴담류 만화, 임창의 땡이 시리즈, 손의성의 탐정만화 등이 있었다.

순창읍 대표적인 만화가게로는 중앙만화센터(현 중앙로 사거리, 1층은 중앙집이고 2층이 만화방), 현 가마솥식당 부근, 순창극장 앞 대중식당 옆, 남계리 금덕마을 당시 남계파출소 부근에 있던 만화방들이 있었다.

순창읍 소재 만화방들은 1970년대 초 티브이(TV)시대가 열리면서 한동안 세계타이틀이 걸린 권투시합이나 국가대표 축구 경기가 열리는 경우 시청료(?)로 한 사람 당 10원씩을 받기도 했다.

 

서점과 어린이 잡지

1950년대 개업한 계림사에 이어 십자지거리에 명문당, 학예사가 있었다. 문구류와 초등학생용 전과와 수련장, ·고생 참고서, 각종 도서를 주로 취급했지만, 초등학생 대상 월간 잡지도 취급했다.

어린이(초등학생) 대상 월간 잡지는 커다란 판형에 컬러화보를 대폭 늘리고, 역사·공상과학 등 흥미 있는 이야기와 인기 만화를 연재해 어린이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새소년>(1964년 창간)에 이어 <소년세계>·<어깨동무>·<소년중앙>이 잇따라 창간되고, 1970년대 들어서는 어깨동무·보물섬·만화왕국이 창간되면서 아이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다.

 

운동회

해마다 가을이면 순창초등학교와 동(옥천)초등학교에서는 운동회가 열렸다. 만국기가 휘날리는 파란 하늘. 청군과 백군으로 나뉘어 재잘거리는 아이들, 릴레이 경주 등 각종 경기, 운동장이 떠나갈 듯한 함성, 상으로 받은 노트, 가족들과 같이 먹는 점심, 후식으로 먹는 우린 감과 삶은 밤, 사이다는 운동회 날의 풍경이었다.

지금도 각급 학교에서 체육대회나 운동회를 하지만, 1960년대 운동회는 단순한 체육행사가 아닌 일종의 지역 축제였다. 학생들의 학부모는 물론이고 지역 유지까지 운동회에 와서 같이 점심도 먹고 운동회에도 직접 참가해 경기를 하기도 했다.

 

여름 성경학교

여름 성경학교는 여름방학 동안에 교회에서 주최하는 단기간의 성경 수업으로, 주로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한다. 성당에서는 여름신앙학교라 한다.

순창읍 소재 순창교회(현 순창읍교회중앙교회·제일교회·전도관 등은 모이자 여름 성경학교, ○○교회, ○○일부터 ○○일까지라고 적힌 벽보를 붙이며 홍보했다. 행사기간 중에는 간식이 제공되기도 했으며, 여러 교사들이 재미있는 성경이야기를 들려주며, 찬송가 경연대회를 열어 입상자에게 학용품을 시상하기도 했다.

 

다방

1902년 손탁호텔의 커피숍에서 시작된 우리나라의 다방 문화는 100여 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음료를 마시는 소시민들의 담소 장소로, 가난한 예술가들의 활동무대로, 기업인들의 업무 공간으로, 한량들의 시간 보내는 장소 등의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해 왔다.

순창읍 다방으로는 동백다방(터미널 맞은편), 서울다방(현 순창금방 옆), 희다방(순창극장 옆), 성주다방(현 대동의원 건너편, 백설다방(대동의원 옆), 동명다방(서장관사 건너편) 등이 있었다.

 

기타 상가

사진관으로는 백합사진관(경천교 부근), 중앙사진관(지금의 대궁 음식점 옆), 성원사진관(지금의 담소커피숍 맞은편에 있다가 서장관사 건너편으로 옮겼다.) 등이 있었다.

그 외 주요 상가로는 군청에서 시장 쪽으로 가다보면 양곡조합(현 대궁 옆), 순창문화원과 순창병원(현 대화슈퍼 부근), 쌍치상회(현 양지축산 자리), 전파사(현 엄마방 자리)가 있었다. 그리고 현 메티컬 건물 자리는 기와공장이 있던 자리였다.

순창극장 건너편과 터미널 옆에 있던 풀빵가게는 추운 겨울날 서민들의 행복한 간식거리였고, 순창순대·천엽이나 달떡을 머리에 이고 행상하는 모습도 1960년대 순창읍 풍경 중 하나였다.

김문소(순창읍오영호(순창읍임주실(서울 향우조순엽(순창읍) 님의 증언을 중심으로 기술했습니다.

순창 성단 입구 계단에서 필자 3형제(1966년)
순창 성단 입구 계단에서 필자 3형제(196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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