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미육아] 생애 첫 7일간의 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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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미육아] 생애 첫 7일간의 휴가
  • 조은영
  • 승인 2022.12.21 08:4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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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영(동계 내룡)
▲ 백설이가 겨울풍경을 바라보고 있다.

 

사과 한입을 베어 먹고 나니, 약기운으로 텁텁하던 입안이 개운하다. 긴 시간의 육아와 가사일을 배겨내지 못한 육체가 이제 그만 쉬고 싶다고 허우적대었지만, 모른 체하였다. 그 결과는 코로나 확정이었다. 병원에서 확정 진단받기 전 날, 들숨과 날숨이 버겁게 폐에 자극이 느껴졌다.

손주들을 돌보러 가야 해서 설마 하며 병원에 들렀는데, 피해가지 못한 것이다. 4차 접종을 하였기에 설마 하였는데, 상황은 냉정하였다. 옆지기는 백설이(강아지)와 피난을 떠났고, 7일 동안 혼자만의 사회적 격리가 시작되었다.

 

7일이 나에게 주어졌네

나른한 봄날 닭장 안의 병아리가 졸음을 못 이겨 비실거리듯 졸리웠다. 자다 일어나기를 반복하며 하루 이틀을 보내다 보니, 문득 스치는 생각. 7일간이란 시간이 나에게 주어졌네~~~. 맘대로 음악을 들을 수도 있고 배달 음식도 주문할 수 있는 것이었다. 아침식사를 챙기려 일찍 일어나지 않아도 되고, 생체 리듬에 따라 뒹굴뒹굴할 수도 있는 거였어생각이 바뀌니 순간순간 시간이 아까워지기 시작했다.

알 수 없는 사람 마음이 이런 거였나 보다. 맘이 달라지니 입가에 미소가 돌고 둔하던 몸동작이 빨라진다. 자리에서 일어나 커튼을 열어젖히고 창문을 열었다. 겨울 찬 바람과 햇살이 기분좋게 살갗을 스치운다. 노트북 유티브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후배가 문앞에 두고 간 달달한 호박죽을 먹었다. 며칠 전 지인 친구분께서 두고 간 책도 읽기 시작하였다. 책 저자이신 그분은 지리산으로 귀촌한 지 10년째인데,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주변 일상을 담백하게 표현하였다.

별일 없는 일상들로 이루어진 평범한 하루야말로 진정한 기적이다.”

책 머리글에 적힌 내용이 가슴에 와닿아 몇 번이고 읽어 보았다. 별일을 겪어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평범한 일상이 기적인 것을.

아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엄마 코로나 증상은 어떤가요? 겨울이고 날도 추우니 앞으로 오지 마세요. 장모님께서 가사도우미를 부르자고 하네요. 양가에서 비용을 반반씩 부담했으면 한다고 말씀 하시네요.”

생각지도 못한 안사돈의 제안에 어리둥절하였지만, 나는 이미 응 그래 그렇게 하자라고 답변을 하고 있었다. 사실 나는 격리가 풀리고 며칠만 더 휴식을 한 뒤, 청주로 가려고 생각하고 있었던 터라. 이 제안이 당황스러웠다. 매번 느끼는 일이지만, 함께 사는 세상일이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옷장 속 사진첩

격리 3일째, 별일 없이 흐르는 시간이 아까워 조바심내다가 돌아서서 웃는다. 아니라고 하면서도 맘속 한구석에 욕심이 남아있었나 보다. 세탁한 빨랫감을 정리하면서 단스안에 빽빽하게 박힌 옷들을 꺼내었다. 서로 다른 양말 짝들을 버리지 못하고, 어디선가 나타날 것만 같은 나머지 짝을 지금껏 기다리고 있었던 짝 잃은 양말들을 더는 미련 없이 관급 봉투에 버렸다.

안방에 자리한 붙박이 드레스룸도 열어보았다. 산속에 사는 큰딸이 추울까 봐 친정 어머니께서 보내주신 옷들이 즐비하다. 잠바에 털스웨터, 긴 코트까지80대 후반이신 어머니께서 입던 옷이라 아직 60이 안된 내가 입기에는 부담스러운 면이 있기는 하였지만, 모두 멀쩡하기도 하고 어머니 생각이 나서 버리지 못하고 몇 년째 농지기만 하고 있는 것이다.

그중에서 몇 년 동안 한 번도 손대지 않은 스웨터와 몇 가지를 더해서 의류보관함에 넣었다. 결혼할 때 시어머니께서 해주신 캐시미어 검정코트는 차마 버릴 수 없어 다시 제자리에 두었다.

아들이 첫월급 받은 날 백화점에서 구입한 노란색 아웃도어가 눈에 들어온다. “~이건 쪼금 아쉽다. 길이가 약간만 길었으면 맛깔나게 입었을 텐데혼잣말로 아쉬움을 되새기며, 몇 번 입지 않은 아들 선물도 옷걸이에 걸어 놓았다. 다시 농지기하는 옷들을 바라보며 맘 한켠이 흐뭇하다. 세월이 지나가도 버리지 못하는 옷장 안의 옷들은 마치 낡은 사진첩을 보았을 때처럼 그리운 추억같다.

옷장을 닫고 신발장을 열어본다. 오래된 신발부터 자주 신는 운동화까지 정리가 되어 있지만, 역시 수년 전에 장만한 몇 번 신지 않았던 신발들이 눈에 들어온다. 정장을 즐겨 입지 않다 보니, 신을 일이 없었던 코발트색 숙녀화에 구두약을 바르고 닦아서 제자리에 올려놓았다. 어느 생일날 내가 나에게 선물한 진한 코발색 구두는 내년에도 그 후에도 내 곁에 있을 것이다. 볼 때마다 그 순간을 스치고 지났던 아련한 마음들이 애틋하게 되살아난다.

오래된 물건들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옆지기가 20년 전에 선물한 굽 높은 부츠도 선반에서 내려놓고, 천조각에 구두약을 묻혀서 닦아 주었다. 이 부츠는 긴 세월 동안 한 번 신어보았다. 반짝반짝 빛이 나게 닦은 부츠도 다시 제자리에 올려놓으며 빙그레 웃는다. 어린아이가 애착인형에 집착하듯 추억을 간직하며 신발장 문을 닫으며, 아쉬움을 달래본다.

 

휴가 마지막 날

산 너머 붉은 태양을 온몸으로 맞이하며, 혼자만의 마지막 날을 맞이하였다. 간단한 단백질 셰이크와 사과로 아침을 대신하고, 모든 창문을 열어 집안을 환기하였다. 그동안 손대지 못한 구석구석을 청소하고 아픈 상태에서 다녔던 노선을 되짚어 향균력99.9% 살균티슈로 문손잡이, 냉장고, 싱크대, 식탁, 테이블, 화장실 등을 소독살균 청소를 하였다.

이제는 피난 가서 독감 걸렸다는 옆지기가 들어와도 안전할 듯하다. 백설이가 옆지기와 함께 피난 길에 오르기 전 날 밤에 오줌을 샀던 식탁 아래 카페트도 세탁하고, 어제 세탁한 빨랫감도 개어 놓았다. 대충 집안일을 마치고 나니, 약기운 때문인지 스르르 졸린다. 티브이(TV)도 틀지 않고 보낸 7.

격리 마지막 날이 되기까지 나에게 관심 가져 주고, 연락해온 사람들을 되짚어 보니 옆지기, 아들, 며느리, 어머니 그리고 먹거리를 챙겨준 후배와 지인 3명 정도이다. 페이스북 친구님들 위로 댓글도 있었다. 아플 때 누군가 곁에서 따뜻하게 챙겨 주는 것도 좋겠지만, 주부입장에서는 누군가를 챙기지 않고 자신만 챙기는 시간이 언제이었을까 싶다? 견딜 만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뜻밖의 코로나 강제 격리로 귀한 휴가를 즐길 수 있었다. 마지막 격리일이 지나갔다.

자유로운 시간 어디든 갈 수 있는 아침이 밝아왔다. 못다 한 집안일을 마무리하고, 늦은 김장을 하기 위해 고추꼭지를 따고 먼지를 닦아내었다. 살아가기 위해 애쓰는 소소한 일들이 버겁지 않게 다가온다. 충분히 쉬었으니 올해 김장은 특별히 맛있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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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성 2022-12-21 10:43:35
격리기간에 반한 '7일간의 휴가'라는 제목다운 단편소설, 아기자기한 살가운 일상과 정겨운 예쁜글에 박수를 보냅니다.
미안한 덧) 코로나는 안중에도 없이 글 읽어냈지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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