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바닥 교육(21) 나는 ‘누구’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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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바닥 교육(21) 나는 ‘누구’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가
  • 최순삼 교장
  • 승인 2022.12.21 08: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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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삼 순창여중 교장

40년 전, 198212월 중순이었다. 필자는 아버지가 입었던 검정 외투를 챙겨 입고 전주시 팔복동 변두리 자취방을 나섰다. 전북대 사범대학 윤리교육과 배○○ 교수님 연구실로 향했다.

1주일 내내 연탄불로 약간의 온기만 유지한 자취방에서 한 발짝도 나오지 않았다. 석유 곤로에 양은 솥으로 밥을 했다. 김치와 깍두기로 하루 2끼씩 먹었다. 일주일 동안 세수는 두세 번 한 것 같다. 대두병(大斗甁)을 재떨이로 청자담배를 하루 한 갑 이상씩 피웠다. 당시 전두환 정권에서 공장에 다니는 아이들과 야학(夜學)하면서 대학을 더 다녀야 하는지? 아니면 자퇴하고, 야학과 민주화 운동 전면(前面)에 나서야 할지? 번민과 결단의 시간이었다.

그 시절 대학은 기습시위 발생 10분도 안 되어 사복경찰에게 폭압적으로 진압되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교수님은 동양 철학과 사상사 강의와 질의응답 과정에서 민주사회와 평등사회에 대한 눈을 갖게 해주었다. 중국 근현대철학사수업 시간에 엄격하셨다. 필자에게 질문을 많이 했다.

자네가 양계초(청나라 말에서 중화민국 초기 사상가, 교육자)무술변법’(청나라 말기 정치개혁과 부국강병책을 강구하는 변법자강운동), 중국 철학과 사상사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 말해 보게?”

무술변법을 제대로 알지 못하니, 철학과 사상사 차원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의견을 낼 수가 없었다.

책도 제대로 안 보고 자료 한번 찾아보지도 않고 수업에 들어오면 안 됩니다.”

험난한 현대사에서 그분이 살아온 고난의 세월을 알기에, 1주일에 3일씩 공장에서 지친 몸을 이끌고 온 학생들과 야학한다는 핑계로, 수업에 등한(等閑)함은 변명밖에 되지 못했다.

~, 자네 시험도 끝났는데 왜 순창에 내려가지 않고 왔는가?”

갑작스러운 방문에도 교수님은 평상시 말투와 표정으로 필자를 쳐다보았다. 입술이 바짝 탔다.

~~. 교수님!. 신상(身上) 문제로 상의하고 싶어서요.”

앉아서 편하게 이야기합시다.”

탁자를 앞에 두고 대면(對面)해서 앉았다. 야학 선배들이 불온(不穩)한 학습과 야학생들을 의식화(意識化)시킨다고 정학 처분 등 징계를 받았고, 3학년이 되면 야학을 총괄적으로 필자가 책임져야 한다는 형편과 상황을 말했다.

야학 운영에 총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은 자네 생각인가? 아니면 선배들이 한 말인가?.” “선배들이 직접 말은 안 했지만 제가 맡아야 할 형편과 상황입니다. 그래서 고민 끝에 자퇴 후에 책임지고 야학하려고 합니다.”

한 참 침묵이 흘렀다.

그런데 과사무실에서 들었는데, 자네가 학군장교(R.O.T.C)후보생에 응시해서 합격했다고 하던데.”

예 아버지가 2학년 여름부터 제가 자퇴를 말하니까 계속해서 학군장교 시험 보기를 요구해서요. 제 생각은 합격과 관계없이 자퇴하려고 합니다.”

또 꽤 오랫동안 침묵이 흘렀다.

나는 자네가 학교에 다니고, 3학년이 되면 학군장교가 되기 위한 훈련과 교육도 받았으면 하네.”

교수님은 필자의 결단을 지지(支持)할 줄 알았다. 혼란스럽고 당황스러웠다.

내가 살아 보니까, 바닷가에 있는 소나무는 단단하게 자라지만 큰 재목(材木)으로 크기가 어렵고, 양지바른 곳에 있는 소나무는 크게 자라지만 단단하지 않네. 사람도 이쪽과 저쪽을 다 경험해보는 것이 좋네. 자네가 내 말을 들었으면 하네.”

교수님은 강의실에서 보았던 표정보다 훨씬 부드럽고 편안하게 말했다.

19871월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후, 6월 항쟁 전까지 교수님은 국가 정보·사정기관으로부터 많은 협박과 어려움을 겪었다고 들었다. 임관하여 소대장 생활 초기에 몇 번 찾아뵙고, 중위 계급을 달고 군대 생활 막바지에 뵙지 못해서 죄송한 시절이었다. 교장은 훈화(訓化)하는 사람이 아니다. 학교 구성원의 고민과 걱정을 들어주는 사람이어야 한다. 나는 누구이야기를 들어 줄 수 있는 그릇이 되는가?. 기대고 말하고 싶은 품 넓은 사람이 필요한 시대다. 퇴직 후에 크게 아프시고, 돌아가신 교수님이 무척 보고 싶은 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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