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연의 고전읽기(1)우리 시대의 용왕, 별주부, 토끼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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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연의 고전읽기(1)우리 시대의 용왕, 별주부, 토끼는 누구인가?
  • 김영연 주인장
  • 승인 2023.01.04 08: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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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연(길거리 책방 주인장)

 

계묘년 토끼해가 밝았습니다. 토끼하면 여러분은 어떤 이야기가 떠오르는가요? 바로 옛이야기 토끼전과 이솝우화 토끼와 거북이일 것이외다.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토끼전이지만 제대로 책을 읽은 사람은 아마도 많지 않을 것이구요.

신라 김춘추가 왕이 되기 전 백제가 신라를 침략하자 고구려에 도움을 청하러 갔다가 감옥에 갇히고 맙니다. 이때 고구려 신하인 선도해가 넌지시 토끼와 거북이(구토설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야기를 들은 김춘추는 자신이 용왕에게 사로잡힌 토끼임을 깨닫고 고구려 왕이 노리는 신라 땅을 토기의 간으로 삼아 위기를 모면했다고 하지요.

이 이야기를 바탕으로 조선후기에 판소리 수궁가와 소설로 만들어지게 됩니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다 보니 시대에 따라, 말하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 내용이 조금씩 다른 이야기가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별주부전이라 하여 거북이가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서로 다른 결말이 등장하기도 하구요.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용왕과 별주부, 토끼 이야기가 어떤 의미가 있을지 함께 생각해 보기로 하지요.

 

용왕은 어떻게 해서 병이 났을까?

어느 해 남해의 용왕이 병이 납니다. 용왕은 왜 병이 났을까요? 잔치 끝에 병이 났다고 합니다. 술과 여자를 가까이 한 탓에 간이 놀라 병이 났다고도 하고요. 용왕은 좋다는 약은 다 찾아 먹었지만 병은 점점 깊어지고, 용왕의 병치레에 나라의 재물도 줄어만 갑니다.(때로는 용왕이 가뭄에 비를 내리려고 너무 애쓴 나머지 병이 났다고 되어 있습니다. 만약 용왕을 한 나라의 임금이라고 생각한다면 병든 용왕을 통해 사람들은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했을까요? 판소리를 즐기던 양반들 앞에서 임금이 주색잡기로 병이 났다고 말하기 곤란하지 않았을까요?)

이때 도사가 나타나 용왕의 병에는 토끼의 간이 명약이라고 합니다. 용왕은 수국 조정의 모든 신하들을 불러들여 자신을 위해 토끼의 간을 구해올 자를 구합니다. 서로 눈치만 보던 온갖 물고기들이 서로 내달으며 충성경쟁을 하나 모두 마땅치 않습니다. 이때 별주부가 자청하여 토끼를 잡아오겠노라 합니다.

 

별주부는 왜 나섰을까?

토끼 화상을 그린 그림 한 장 손에 쥐고, 육지로 떠나기 전 집에 들러 부디 가지 말라는 노모와 아내에게 하직인사를 합니다. 한편 별주부는 아내에게 남생이를 조심하라는 신신당부를 합니다. 어떤 판본에서는 가족들이 가지 말라고 만류를 하고 어떤 판본에서는 임금의 병을 더 중히 여겨 어서 다녀오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별주부는 왜 토끼의 간을 구해오겠다고 나섰을까요? 용왕에 대한 충성심으로? 아니면 성공 후에 오는 명예와 부를 노리고? 육지와 토끼에 대한 호기심으로? 어쨌든 별주부를 보내는 마음에 여러 가지 가치가 담겨 있습니다.

뭍에 오른 별주부가 제일 처음 만난 것이 우()생원입니다. 살아서는 인간을 위해 논밭을 갈고, 죽어서는 살과 뼈는 물론이요, 머리, 가죽까지 다 내어주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합니다.

깊은 산속에 들어가니 길짐승들이 모여 나이 자랑을 하며 상좌 다툼을 합니다. ‘범 없는 골짜기에 토끼가 선생이라는 속담처럼 토끼가 상좌에 앉아 시끌벅적하게 놀 때 배고픈 호랑이가 나타납니다. 별주부는 하마터면 산중 호랑이에게 잡아먹힐 뻔합니다.

 

토생원은 왜 별주부를 따라 갔을까?

드디어 우여곡절 끝에 별주부는 토생원을 만나 인산세상의 흥미를 묻습니다. 토끼는 어깨를 으쓱하며 사계절의 경치를 자랑합니다. 하지만 별주부는 세상살이의 팔난(八難)을 말합니다. 눈 쌓인 겨울 먹을 게 없어 고픈 배를 틀어쥐고, 춘삼월 먹이 찾아다니다가 목타래에 떨꺽 치고, 산꼭대기에는 매를 날리는 수할치가 숨어 있고, 산허리에는 몰이꾼과 사냥개가 숨어있고, 총 잘 쏘는 포수들이, 풀 베던 목동은 자루 긴 낫을 들고, 나무꾼은 그물을 치고, 사방에서 토끼의 목숨을 노리고 있는 현실입니다.

별주부가 풀이 죽은 토끼에게 수국자랑을 늘어놓습니다. 아름다운 수궁, 어진 용왕, 아리따운 여인들, 벼슬과 부귀영화로 토끼를 유인합니다. 여우가 나서서 말려보지만, 듣지 않습니다. 별주부가 하는 말이 의심스럽기는 하지만 육지에서 자신을 괴롭히는 총알, 수할치, 사냥개가 없다는 말에 넘어갑니다.(아무리 못해도 살아남기 어려운 육지보다는 나으리라는 헛된 희망을 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토끼가 수궁에서 겪은 일(간을 육지에 꺼내두고 왔다는 토끼의 거짓말을 그대로 믿는 어리석은 용왕과 신하들)이야 다들 아실 터이니 생략하겠습니다. 다만 토끼의 말에 속아 넘어간 용왕이 자라탕이 몸에 좋다는 말에 별주부를 잡아먹으려고 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자신을 구하려고 육지까지 다녀온 충신을 자신을 위해 잡아먹으려는 용왕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또한 자신이 없는 동안 남생이를 조심하라 했던 별주부가 이번에는 자신의 목숨을 구하려고 자기 부인을 토끼방에 들여보냈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어떤 판본에는 용왕의 부인과 입맞춤을 했다는 설도 있습니다.(여기서 반전은 별부인이 토생원이 떠나는 것을 오히려 아쉬워했다는 것입니다. 토끼와 이별한 후 그리움이 병이 되어 속절없이 죽었다고도 합니다. 내막을 모르는 용왕은 별부인을 열녀로 표창하게 합니다. 아이러니한 일이지요.)

 

별주부는 어떻게 되었는가?

우여곡절 끝에 토생원은 살아서 돌아옵니다. 별주부는 차마 수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소상강으로 들어가 대숲에 의지하여 살아갔다고 합니다. 또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도 전해집니다. 그대로 돌아가면 사형감이겠죠?(여러분이 알고 있는 결말은 별주부의 충성심에 감동한 산신령이 나타나 명약을 주었다는 해피엔딩이지요? 충성스런 별주부가 죽어버리면 누가 충신이 되려고 하겠습니까? 역시나 누군가의 입김이 느껴지지 않나요?)

 

병든 용왕 살려야 할까?

판본에 따라 용왕은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합니다. 용왕의 죽음으로 끝날 경우 대개 용왕이 스스로의 잘못을 깨닫고 죽었다고 합니다. 이 역시 용왕의 체면을 차려주려는 의도가 아니었을까요? 그런데 굳이 용왕을 살려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여러분은 어떤 결말이 마음에 드시나요?

 

돌아온 토생원은 어떻게 되었을까?

다시 살아난 토끼는 방정을 떨다가 그물에 덜컥 걸리고 맙니다. 어렵게 수국에서 살아 돌아왔는데 인간의 손에 잡아먹히게 되었네요. 토끼는 다시 꾀를 냅니다. 지나가는 쇠파리떼에게 부탁하여 자신의 몸에 쉬를 담뿍 슬어놓게 합니다. 어리석은 인간 나무꾼은 멀쩡한 토끼를 썩었다고 휙 내버립니다. 점점 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는데, 이번에는 독수리가 나타나 토끼 대가리를 탁 치는 것이 아닌가요. 토끼는 죽기 전에 설움 타령이나 한 번 들어보라면서 수국 용왕한테 받아서 굴속에 넣어 두었다는 꾀주머니 이야기를 늘어놓습니다. 토끼 뒷다리를 잡고 꾀주머니를 차지하려던 독수리는 토끼에게 속은 줄 알고 날아가 버립니다.

이렇게 우리의 토생원은 뭍에서도, 물속에서도 목숨이 위태로웠지만 오뚜기처럼 수국에서도 살아남고, 육지에서도 살아남았습니다. 오늘날 이 시대의 토끼는 누구이고, 별주부와 용왕은 누구일까요?

검은 토끼의 해, 우리 모두 토끼의 지혜로 살아남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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