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도 사람처럼>
역사의 바깥12 밀양 아리랑
채광석
북한이나 남한은 약산의 이름을 지웠지만
여전히 두려워하지만
밀양 약산로에는
올해도 저 홀로 가을이 물드네
열여덟 열아홉 만주 꿈이 번지네
예쁜 각시 얻는 일보다
논두렁 밭두렁 농사 짓는 일보다
왜 하필 나라 찾는 일에
먼저 눈이 뜨였을꼬
결사단을 만들고 자폭탄이 되어
맹수처럼 국경을 넘나든 이야기
양자강에 배 띄우고 태항산 타고 넘으며
바람처럼 대륙을 떠돈 이야기
장엄한 듯 가혹한 듯
우리나라 옛 어린 것들의
참 가여운 이야기
어떤 것은 죽어서
제 고향 당산나무 옆 빛나는 묘비석이 되기도 하고
어떤 것은 죽어서
제 나라 사람 수호신 집신이 되기도 한다지만
남북 삼천리
아무것도 되지 못한 이야기
가을로만 번지네
아무런 두려움도 없이
(※편집자 주. 약산 김원봉(1898~1958) 경남 밀양 출생 독립운동가.)
채광석 시인. 1968년 순창에서 태어났다. 성균관대학교 재학 중인 23세 때 등단했다. 하지만 등단은 ‘대학 재학 중 사법고시 합격’ 등과는 화려함의 결이 전혀 다르다.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대에 절필을 한 후, 나이 쉰이 넘은 지난 2019년 2번째 시집 <꽃도 사람처럼 선 채로 살아간다>를 펴냈다. <오월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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