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어린이에게 들려주는 한-미 자유무역협정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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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어린이에게 들려주는 한-미 자유무역협정 이야기
  • 이해영 교수
  • 승인 2011.12.01 16: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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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 가스비·병원비 대주는 제도 돈 밝히는 미국 투자자도 동의해 줄까요?

 

어린이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대학교에서 삼촌, 이모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랍니다. 때론 어린이 여러분의 선생님의 선생님이기도 하지요. 오늘은 여러분에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얘기를 하려고 그래요.

 

어린이 여러분, ‘자유무역’이 무언지 선생님한테 배우셨죠. 그래요. 나라 사이에 물건을 사고팔 때 세금을 없애면 좋은 물건을 싸게 살 수가 있을 거예요. 그런데 말이죠. 어린이 축구단하고 대학생 삼촌 축구단하고 시합을 한다고 생각해보죠. 똑같이 뛰면 어린이 여러분이 키나 체력이나 기술이나 여러 가지 면에서 게임이 안 되겠죠. 그런데 심지어 운동장이 기우뚱하다고 생각해보세요. 각도계로 재어 보니 한 30도는 어린이 축구단 쪽으로 기울어져 있네요. 아무리 차봐야 공이 도로 굴러 내려오는 그런 운동장이죠. 그런데 삼촌들이 그래요. 골대 절대 바꾸기 없기! 이렇게 ‘자유’롭게 시합하면 누가 이길까요? 또 여러분 중에 힘이 젤 센 친구하고 격투왕 표도르하고 ‘자유’롭게 격투하면 누가 이길까요? 이런 자유경쟁은 실은 센 쪽을 ‘보호’하려는 속임수랍니다. 선생님도 그렇게 생각한답니다, 자유무역이 정말 공정하게 되면 참 좋겠다. 그런데 실제론 그렇지 않은 경우가 너무 많답니다.

어린이 여러분, 미국이라는 나라는 진짜 센 나라랍니다. 돈도 많고, 무기도 완전 짱인데다 핵무기도 세상에서 젤로 많아요. 가끔 돈 떨어지면 마구 찍기도 하고 그래요. 우리나라도 그렇게 만만치는 않아요. 장난 아니에요. 그런데 미국이 넘 센 거죠. 월가(월스트리트)라고 들어보셨죠? 뉴욕에 있는 증권가를 말하는 거랍니다. 우리나라 여의도에 있는 증권가의 원조랍니다. 그런데 체급 차이가 너무 나요. 글쎄 미국 월가하고 견주면 1000분의 1이나 될지 몰라요. 이 월가가 몇 년 전 초대형 사고를 쳤답니다. 돈 벌려고 무한꼼수를 부리다가 그중 큰 회사 몇 개가 쫄딱 망해 버렸답니다. 그 때문에 우리도 엄청 피해를 봤어요. 선생님이 월가 얘기를 하는 이유는 말이죠.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그냥 관세만 없애는 것이 절대, 절대 아니기 때문이에요. 관세보다 훨씬 중요한 게 우리나라 법과 제도를 미국식으로 뜯어고치는 일이에요. 그중에서도 말이죠, 월가의 이익을 보장해주기 위해 그런 제도를 고스란히 수입했어요. 원래 자유무역협정은 이렇게 하는 거냐고요? 천만의 말씀! 한-미 자유무역협정에서 말하는 ‘자유’는 말이죠, 사실은 월가의 자유고 돈의 자유랍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이렇게 말한답니다. “지구상에 진짜 자유로운 것은 돈하고 바람이다.” 멋있는 말이죠.

그런데 여러분, ‘투자자-국가 소송제도’(ISD)라고 들어보셨나요?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세계 여러 나라 정부는 진짜 못사는 사람들을 위해 전기요금도 깎아주고, 할아버지와 할머니 기차요금은 싸게 받고, 그리고 여러분 또래 가운데 엄마랑만 사는 친구들 집엔 가스요금도 좀 싸게 해주고 그래요. 그것만이 아니에요. 심각한 지구온난화,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배기가스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라고 기업에 요구하기도 한답니다. 또 농민들이 힘들여 지은 농산물을 사서 어린이들에게 무료로 급식하기도 한답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여러분들 몸이 아프면 전국 어느 병원에서나 치료받을 수 있는 아주 좋은 제도를 갖고 있어요. 미국에는 이런 제도가 없어 많은 사람이 고통을 받고 있죠.

그런데 말이죠. 미국 회사가 우리나라 발전소나 가스회사를 사들이거나, 철도회사를 차리거나 혹은 우리 정부가 그들에게 우리 농민들이 생산한 농산물을 사용하게 한다거나, 아니면 몸이 아픈 어린이를 공짜로 치료하게 한다거나 할 때는 얘기가 팍 달라진답니다. 자선사업 하려고 투자한 게 아닌데, 이런저런 거 자꾸 하라고 하니 짜증이 나겠죠? 투자자는 남이 잘살든 못살든 자기 이익만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국가는 그렇지가 않아요. 공익을 대표해야 하죠. 그래서 ‘사익이’하고 ‘공익이’하고 싸움이 벌어져요. 이때 사익이가 말합니다. “공익이 너 이리 와, 세계은행이란 데 가서 재판 좀 받아보자. 내 너 공익이 때문에 손해가 장난 아니거든.” 그런데 세계은행은 뭐 하는 덴가요? 미국이란 나라가 실제 주인인데다 거기서 젤로 높은 사람은 언제나 미국사람이 하기로 정해져 있답니다. 그래서 공익이가 말합니다. “싫어 나 안 갈래, 해보나 마나잖아.” 그러면 사익이가 이렇게 말합니다. “놀고 있네, 너 무조건 간다고 여기 협정문에 약속했거든, 여기 도장 찍었잖아.” 헐, 이럴 수가. 이렇게 잘못된 제도가 투자자-국가 소송제도랍니다. 우리 헌법도 막 무시하고 그런 거죠.

어린이 여러분, 인터넷 없이는 못 살죠? 불법 다운로드는 물론 안 하시겠죠. 그런데 세상에서 젤 불평등한 자유무역협정인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불법 다운로드를 허용하는 인터넷 사이트는 아예 폐쇄할 수 있게 만들었어요. 지각 한 번 하면 퇴학시킨다는 조항 같은 거예요. 세계 최초랍니다. 물론 우리나라에만 적용돼요. ‘헐, 설마 그럴 리가’라고 묻고 싶죠? 그렇답니다. 미국에는 적용이 안 되고, 우리에게만 그렇게 하라는 거죠. 이거 말고도 말이죠, ‘어이상실’ 조항이 무지 많답니다. ‘역진방지 메커니즘’이란 것도 있어요. 어렵죠? 무슨 말인가 하면, 축구시합 하는데 앞으로만 가라는 것과 비슷해요. 뒤로 가면 페널티킥이에요. 어른들이 말이죠, 어린이 여러분보다 못한 일을 많이 해요. 선생님도 참 부끄럽답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발효되면 우리나라는 미국의 ‘경제영토’가 될 거 같아요. 우리 시장도 미국에 점령당하고 말이죠. 특히 우리 농민들이 무지 당할 거랍니다. 그뿐만이 아니에요. 여러분 엄마 아빠들 중에 작은 회사 경영하는 분들 많으시죠? 슈퍼마켓 하시는 분도 있겠고요. 그런 엄마 아빠들은 지금보다 살기가 더 어려워질 것 같아요. 엄마 아빠 많이 도와주셔야 합니다.

우리나라 자동차 엄청 좋아진 거 아시죠? 그런데 잘 모르는 아저씨들이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발효하면 우리나라 자동차 수출이 마구 는다고 해요. 아니랍니다. 이미 절반 가까이는 미국에서 직접 만들어 팔고 있답니다. 그래서 수출이 팍팍 늘 수가 없답니다. 그런데 미국이 작년에 그랬어요. 우리가 옛날에 협상하다가 조금 가져간 게 있는데 그거 돌려달라고 말이죠. 자기들이 다 먹었는데, 실수로 하나 남겨두었다나 뭐라나. 원래 자유무역이란 게 서로 관세를 없애 소비자들이 좋은 물건을 싸게 사자는 것이라고 했죠. 그런데 처음에는 양쪽 다 자동차 수입할 때 붙는 세금을 없애자고 합의했어요. 그런데 그 뒤에 미국 차가 잘 안 팔릴 것 같으니, 한국 차를 미국에 수출할 때 붙는 관세는 없애지 말고 4년 동안 그냥 두자고 억지를 부렸답니다. 정부 일 하는 아저씨들이 이게 이익이 제일 크다고 맨날 자랑했는데 말이에요, 미국이 달라니까 홀라당 다 넘겨주고 왔네요. 참 바보죠.

일자리가 막 늘어날 거라고 텔레비전에서는 그러죠? 하지만 선생님이 보기에 맥도날드에서 하루 종일 패티나 굽는 일자리 말고, 여러분 모두가 열심히 일하고 또 돈도 많이 벌 수 있을 그런 일자리가 도무지 생길 것 같지 않아요. 참 걱정이랍니다, 쩝. 오늘은 여기까지 할게요.

한겨레 2011.11.25일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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