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연의 고전읽기(2)방귀가 소박맞을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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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연의 고전읽기(2)방귀가 소박맞을 일인가?
  • 김영연
  • 승인 2023.02.08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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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연(길거리 책방 주인장)

아이들은 예나 지금이나 방귀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참으로 민망하지만 참으려고 애써도 안 되는 것이 방귀라는 놈이지요. 방귀이야기라 하면 누구 방귀가 더 센지 겨루는 방귀 시합 이야기’, ‘방귀로 도둑을 쫓아낸 이야기그리고 방귀쟁이 며느리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이 중에서 오늘은 방귀쟁이 며느리(신세정/사계절)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야기는 대충 아시지요? 방귀쟁이 며느리가 시집을 갔다가 방귀 때문에 소박맞는 이야기입니다.

『방귀쟁이 며느리』 (신세정/사계절)

 

방귀쟁이 며느리

, 표지를 한번 보시지요. 신윤복의 <미인도>를 닮은 여인이 당당한 모습으로 종을 흔들고 있습니다. 바로 주인공 방귀쟁이 며느리입니다. 주변엔 예쁜 꽃들이 만발했군요. 며느리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다 같이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봅시다.

표지를 넘기니 꽃밭에 아리따운 아가씨가 새와 나비와 함께 서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 다음 장에 꽃은 시들고 새 두 마리가 땅으로 떨어지고 있네요. 그리고 아가씨의 근심스러운 표정.

한 처자가 있는디 참 고와. 아주 동네에 소문이 자자하지. 근디 이 처자가 말여, 방귀를 참말로 잘 뀌어.’

아니 어떤 방귀이길래 동네에 소문이 난 걸까요?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궁금해지는 군요. 방에서 수를 놓던 아가씨가 방귀를 낄라치면 종을 울리자 마당의 하인들은 도망가기 바쁩니다. 김덕신의 풍속화 <파적도>의 한 장면과 닮았습니다.

드디어 방귀쟁이 아가씨가 시집을 갑니다. 방귀 뀔 때 울리던 종도 두고 가야 합니다. 사각 프레임 밖에서 수를 놓으면 마음대로 방귀를 뀌던 자유분방한 아가씨가 시집이라는 프레임 안으로 들어갑니다. 시집가는 길은 환한 불빛 아래 있지만, 뒤돌아보는 아가씨의 불안한 마음을 블루톤의 배경이 말해주는 듯합니다.

시집을 가고 보니 어른들 앞에서든 신랑 곁에서든 방귀를 뀔 수가 있나. 참고 참고 또 참다 보니 갈수록 얼굴이 누렇게 변해 가지고는 그 뽀얗게 곱던 얼굴은 간데없고 누런 메줏덩이가 되었네 그려.’

방귀를 못 뀌어 괴로운 며느리입니다. 방귀를 참느라 엉덩이를 부여잡는 모습에 웃음이 절로 나옵니다. 하지만 어린 신랑은 아직 며느리를 보호해 줄 처지가 아닙니다. 보다 못한 시아버지,

방귀를 참으면 쓰간디? 뀌어라, 뀌어.”

그랬는데 글쎄, 방귀 한 방에 집안이 풍비박산이 납니다. 시어머니는 문고리 쥐고 날아가고, 남편은 시어머니 치맛자락을 붙잡고 있습니다. 시아버지는 가마솥 뚜껑을 안고 날아갑니다. 반면 방귀쟁이 며느리는 얼굴에 화색이 돌아옵니다.

‘“고만 뀌어라

하는데 남편은 시어머니 등 뒤에 숨어 있기만 합니다. 결국 시부모는 이 방귀쟁이 며느리를 친정으로 돌려보내기로 합니다. 아내가 집에서 쫓겨나는 데도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습니다. 이럴 때도 남편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아니 방귀를 요란하게 뀌었다기로 친정으로 보내다니요? 이게 가당키나 한 일입니까? (책을 읽으며 아이들이 한 이야기입니다. 요즘 아이들 이렇습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할까요? 요란한 방귀가 문제라면 병원에 가야겠죠. ~ 맞습니다. 원인을 찾아서 해결해야지요.

친정으로 가는 길에 어마어마하게 키 큰 배나무 아래서 쉬고 있는 장사꾼들을 만납니다. 이 장면은 이교익의 <휴식>에 나오는 인물들이고요.

이때 장사꾼들이 배 한 개만 따 주면 짐 반으로 나눠 줘도 좋겠다는 말을 듣고, 방귀쟁이 며느리가 나섭니다. 며느리의 방귀 한 방에 후두둑 후두둑 배가 떨어집니다, 결국 비단장수랑 놋그릇 장수에게서 짐을 나눠 받습니다.

한 마디로 횡재를 했네요. 요란한 방귀도 써먹을 때가 있긴 합니다. 그깟 배 한 개에 재산의 반을 걸다니요, 함부로 내기를 한 장사꾼들은 벌(?)을 받았습니다.

여기서 다시 질문, 여러분이 방귀쟁이 며느리라면, 또는 시아버지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에헤야, 가자우리 며늘 아가야.“

시아버지는 며느리 방귀 덕에 재산을 얻었으니 집으로 돌아가 같이 살자고 하겠지요. 방귀 뀌었다고 쫓아낼 땐 언제고, 방귀가 돈이 될 거 같으니까 다시 붙잡네요.

어떤 판본에서는 방귀쟁이 며느리가 소박맞는 데서 이야기가 끝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서 며느리는 다시 시가로 돌아가 사랑을 받으며 잘 먹고 잘사는 걸로 끝이 납니다.

 

방귀의 의미

시댁의 입장에서 보면 외부 인물인 며느리가 방귀를 통하여 새로운 가정에서 온전한 식구로 인정받게 되는 일종의 통과의례적 과정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방귀 때문에 소박맞은 며느리가 불쌍해서 다시 사랑받고 살 수 있도록 누군가가 이야기를 덧붙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방귀(단점)로 인해 쫓겨났지만 오히려 그 방귀(장점)로 인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고 당당하게 시댁으로 돌아간 것이지요. 여기서 방귀는 며느리의 경제력또는 노동력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시대 남자들이 하지 못한 일을 함으로써 남성들에게 통쾌한 복수를 합니다.

또한 며느리가 시댁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이유가 며느리가 방귀를 뀌지 않게 되어서가 아니라, 시댁 식구들의 방귀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며느리는 어떠해야한다는 의식의 변화라고 생각됩니다. 과연 시댁으로 돌아간 방귀쟁이 며느리는 어떻게 살았을지 궁금해지는 대목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며느리라면 방귀로 돈을 벌 수 있다면 자신을 내쫓은 시댁으로 다시 가고 싶었을까요? 언제 다시 쫓아낼 지도 모르는데요. 함께 이야기를 읽은 여성들은 대부분 돌아가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또는 돌아가되 조건을 내걸기도 합니다. 분가하겠다, 재정독립을 하겠다는 등, 자신의 목소리를 내겠다고 말합니다. 요즘은 세상이 많이 바뀌었으니까요.

 

구수한 사투리와 익살스러운 그림

구수한 옛이야기와 신윤복, 김득신, 이교익의 옛 그림이 참 잘 어울립니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넘기는 페이지 배열이나, 세로쓰기 편집 또한 옛날 책 느낌을 줍니다.

그림을 그린 신세정 작가는 우리의 옛그림을 잘 변용하여 세상 당당한 방귀쟁이 며느리의 모습을 우리에게 전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책 속의 구수한 사투리가 왠지 익숙하지 않나요? 바로 순창과 이웃한 정읍 사투리라고 합니다.

▲ 신윤복의 미인도
▲ 신윤복의 미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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