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창 전통 음식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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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 전통 음식 이야기
  • 림재호 편집위원
  • 승인 2023.02.15 08:29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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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읍 가잠마을 출신 권태식(權泰植)1879년 고종 16년 기묘식년시에 과거에 급제해 홍문관 수찬(修撰)과 교리(校理)를 지냈다. 홍문관(弘文館)은 조선의 행정기관이자 연구기관이다. 사헌부·사간원과 함께 삼사의 하나로 옥당(玉堂)이라고도 한다.

국권피탈 3년 전인 1907(순종 즉위) 홍문관이 폐지되자 권 교리는 사직을 청하고 낙향하고자 했다. 당시 수라간 상궁 한 사람이 권 교리를 몹시 사모했다고 한다. 순종 황제가 이런 상황을 알고 상궁에게 권 교리와의 동행을 허락했다.

이에 두 사람은 가잠마을로 함께 내려왔고, 상궁은 권 교리의 후실이 되었다. 수라간 상궁 덕분에 가잠마을과 순창읍 사람들은 궁중음식을 다른 지역보다 먼저 접하게 되었고, 상궁의 지도로 권 교리 집안은 물론, 순창 음식문화 창달에도 크게 기여한 것으로 생각된다.

순창고추장과 간장·된장·장아찌 등 한식의 밑바탕이 되는 발효음식의 천국이었던 순창은 유난히도 식도락가가 많았고, 군민에게 회자되는 음식 이야기가 넘쳐났다. 남원집·새집 같은 한정식이나 순창 전통 순대처럼 그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음식도 있지만 이제는 기억조차 희미하게 사라져 가버린, 그리고 곧 명맥이 끊어질 것 같은 먹거리들도 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을 되살리고 그동안 수집한 자료를 토대로 오랜 세월 동안 순창군민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던 추억의 음식들을 살펴보고, 조리 과정도 살펴본다.

 

순창식 곰탕

'가마솥' 순창식 곰탕

 

우리나라 사람들은 탕의 민족이라고 불릴 만큼 국에다 밥을 말아 먹는 것을 좋아한다. 국에다 밥을 만 음식을 탕반 또는 장국밥이라 한다. 소고기를 재료로 한 장국밥의 탕은 곰탕·설렁탕·육개장 등이 있다.

소 사골과 잡뼈를 하루 이상 푹 고아서 국물이 뽀얗고 국물 맛이 좋은 쪽이 설렁탕이고, 고기로 육수를 내어 국물이 맑은 빛이며 고기 건더기가 많은 쪽이 곰탕이다. 그런데 설렁탕과 곰탕의 구분이 모호해진 지는 이미 오래다. 설렁탕에도 편육 같은 고기 건더기가 들어있고, 곰탕 국물을 낼 때도 뼈를 넣어 뽀얀 국물이 나오는 경우가 있으며, 설렁탕과 곰탕에 같은 육수를 쓰는 곳마저 있다.

육개장은 개장국에서 유래했으며, 소고기와 고사리·숙주나물(콩나물토란대(고구마순) 등 여러 채소를 푹 삶아 끓여 매운맛이 도는 국의 한 종류이다. 고춧가루로 간을 하며, 후추나 소금, 설탕, 참기름, 간장 등도 양념으로 첨가한다.

순창식 곰탕은 나주곰탕처럼 뽀얀 국물의 정통 곰탕이 아니라 곰탕·설렁탕·육개장의 장점을 혼용해 만든 빨갛고 얼큰한 맛의 독특한 음식이다. 풍산옥이 순창식 곰탕으로 1960년대 순창읍민의 입맛을 사로잡았으며, 현재는 가마솥 식당이 순창 곰탕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어린 시절 맛보았던 풍산옥의 순창식 곰탕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설렁탕과 곰탕의 육수 내는 방법을 모두 사용한다. 잡뼈와 고기(양지머리 등)를 모두 사용해 국물을 우려낸다. 통째 삶은 고기를 잘라 밑간을 하고, 살짝 삶은 고사리에도 밑간을 한다. 그런 후 밑간을 한 잘게 썬 소고기와 머우대·콩나물·고사리·파를 함께 끓여 뚝배기에 내놓는다. 콩나물은 대가리와 꼬리 부분을 정갈하게 다듬는다. 사각사각한 머우대 맛이 일품인데, 머우대가 나오지 않는 여름에는 고구마순을, 가을·겨울에는 토란대를 넣었다. 국물 색깔은 지금의 가마솥 곰탕처럼 주홍색에 가까운 붉은색이다. 취향에 따라 들깨가루를 첨가해 먹기도 한다.

 

소 허파 전

(사진출처 : 구글이미지)

순창군에서는 오랫동안 설이나 추석 때 육전과 함께 소 허파로 전을 만들곤 했다. 소 허파전 만드는 과정을 소개한다.

먼저 밀가루와 소금을 푼 물에 허파를 넣고 문지르며 잡내와 불순물 제거해 깨끗이 씻어 준다. 허파는 5등분 정도로 썰어준다. 냄비에 물을 넣고 월계수 35잎과 생강 몇 조각을 넣고 삶아준다. 그래야 누린내를 완전히 제거할 수 있다.

처음엔 센 불에 끓이다가, 끓어오르면 약불로 줄여 푹 익힌다. 허파는 삶으면 가벼워서 풍선처럼 둥둥 뜨는 성질이 있어서 중간중간 뒤집어 가며 삶아야 한다.

허파는 식감으로 먹는다. 그래서 전으로 부칠 땐 얇게 저며 부쳐야 식감이 부드럽다. 막 삶은 허파를 자르려면 튕겨나가기도 해서 얇게 썰기가 힘들다. 그래서 식혀서 냉장고에 하루 넣어두면 잘 굳어서 썰기 편하다. 얇고 적당한 크기로 자른 후에 사선으로 칼집을 내어준다. 칼집을 내면 양념도 잘 배고 허파도 연해진다.

허파 자체가 원래 호흡기관이다 보니 기름기도 없고 감칠맛은 떨어지는 편이다. 그래서 허파전을 할 때는 밑간이 중요하다. 간장에 다진 마늘과 다진 생강, 청주, 후추, 참기름, 잘게 썬 쪽파 등을 넣어 양념장을 만들어 밑간이 잘 배도록 주물러 준다. 밑간한 허파는 하루 가까이 냉장고에 숙성시킨다. 전을 부치기 전에 밑간이 된 허파에 한 번 더 참기름 살짝 둘러 가볍게 주물러주고, 부침가루나 밀가루에 묻히고 계란물 묻혀 구워주면 된다. 허파는 이미 익었으니 계란만 익으면 완성이다.

 

방아잎 전

보통 허브라고 하면 로즈마리, 페퍼민트 같은 서양에서 도입된 식물을 떠올린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도 박하·머위·방아잎 등의 토종 허브들이 있다.

특히 어릴 적 봄이면 시골 마당에 쑥쑥 자라 올라오던 방아잎은 외국 이름도 코리언 허브’(Korean herb)로 우리나라 대표 토종 허브라고 할 수 있다. 방아잎의 별칭은 배초향이다. 다른 풀의 향기를 밀어낼() 만큼 향기()가 강한 풀()이란 의미다. 잎을 문지르면 특유의 향긋한 냄새가 난다. 향은 박하와 비슷하고, 모양은 깻잎과 닮았다. 깻잎보다 작고 갸름하며 향이 더 진하다.

(사진 출처 : 방아잎 구글이미지

무더위와 습한 날씨 때문에 입맛이 떨어지는 여름철에 호박전과 함께 순창에서 주부들이 가장 많이 부치던 전이 방아잎 전이었다. 깻잎전보다 훨씬 부드럽고 향도 은은하고 맛있다.

향이 강력한 만큼 탈취 효과도 뛰어나다. 예부터 시골에선 설거지하거나 생선 비린내를 없애는 데도 방아잎을 썼다. 농촌진흥청 따르면 근래에 와서 향신료의 수요가 늘어나고 특히 로즈마린산 함량이 높은 식물이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재배 생산을 시도하는 농가가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동아(동외)정과

요즘은 장식품이나 귀한 볼거리로 변했지만, 시골집 지붕마다 열린 탐스런 박은 오랜 세월 풍요와 결실의 상징이었다. 가난했던 시절 박속을 긁어내 만든 갖가지 음식은 허기를 채워주는 수단이기도 했다.

박과의 한 종류로 한해살이 덩굴식물인 동아(동외)3월에 씨를 심고 10월에서 11월 말에 수확하는데, 첫서리가 내리고 나서 수확하면 좋은 동아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우리 선조들도 서양인들처럼 일찍이 훌륭한 디저트를 즐겨왔다. 그중 하나가 정과이며, 정과 중에서도 동아(동외)정과는 조선시대에 궁중음식이나 양반들의 간식과 귀한 손님에게 대접했던 음식이다. 순창에서는 동아정과보다는 동외정과로 불리고 있다.

동외정과는 꼬막 또는 굴 껍데기를 태워 재로 만든 사회가루에 묻어서 조직이 단단해진 동아의 과육을 조청에 조려낸 대표적인 한과이다. 내로라하는 양반집에서도 귀한 음식으로 만들어 먹던 동외정과는 재료에서부터 만드는 방법, 그 맛에 이르기까지 까다로워서 양반집 아낙네들을 고생깨나 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만드는 과정부터 신비롭다. 우선 잘 여문 동아를 반으로 쪼개 씨를 말끔하게 긁어내고 토막 낸 뒤 썰어 함지박에 담아놓는다.

다음은 사회가루’(‘사와가루라고도 함)라는 걸 만들어야 한다. 꼬막이나 굴 껍데기를 관불에 하얗게 될 때까지 구워 곱게 빻는다. 그 가루를 썰어 놓은 동아 조각에 골고루 묻혀 식혜 국물로 만든 조총에 넣고 하루쯤 잠을 재운다. 다음날 동아에 묻은 사회가루를 깨끗하게 씻고, 56회 정도 물을 갈아주며 씻어낸 다음 조청을 가득 부어 하루 정도 담가둔다. 다음날 거의 맹물로 변한 조청물은 버리고, 다시 동아를 꺼내 찬물에 씻어 조청과 함께 솥에 넣고 은은한 불에 10시간 이상 푹 졸여낸다. 그러면 물기가 없이 꼬들꼬들한 정과가 된다.

동아정과는 시간이 지날수록 붉은빛이 더해져 검붉은 색으로 변한다. 조총을 흠뻑 머금은 동외정과는 씹히는 맛이 잘 익은 배처럼 사각사각하다. 엿처럼 끈적이기만 한 다른 정과와는 다르고, 단맛 뒤에 남는 개운함도 다른 디저트의 단맛과 차이가 있다.

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전라북도편(1971)순창에서는 동아를 썰어서 꼬막가루를 재워서 몸이 굳게 해두었다가 꺼내서 물에 많이 우린 다음 조청에 조린다고 했다. 현재도 순창 일부 지역에서 재배되어 정과나 장아찌로 만들어 시판되고 있다.

 

순창 유과(油菓)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순창 각 가정에서는 설날을 비롯해 혼례, 제례 등에 사용할 유과(油菓)를 손수 만들었다. 현재도 순창 유과는 타 지역과 달리 식용유에 튀기지 않고 한 장 한 장 연탄불에 구워 내어 담백한 맛을 내고 있다. 그런데 과거에는 더 정성스럽게 유과를 만들었다. 당시 가정에서 만들었던 유과 제작 과정을 소개한다.

먼저 찹쌀을 씻어 23일 동안 담가 놓는다. 손으로 만져보아 쌀이 흐물흐물해졌다 싶으면 방아를 쪄 가루를 만들고 떡시루에 앉혀 찐다. 그렇게 완성된 찰떡을 반죽하여 방망이로 납작하게 펴서 적당한 크기로 잘라 따뜻한 방바닥에 비닐을 깔고 그 위에 말려 건조시킨다.

다음 작업은 고운 모래를 깨끗이 씻어 솥에 넣고 모래를 볶아 가열한다. 모래가 뜨겁게 달궈지면 (유과용)바탕을 모래 속에 넣어 가열시킨다. 중간 중간 나무 주걱 등을 이용해 꾹꾹 눌러가며 모양을 만든다. 신기하게도 바탕에 모래는 전혀 붙지 않는다.

이렇게 만들어 부풀어 오른 바탕을 숯불(연탄불)에 구워 생강을 첨가한 조청을 바른 후 그 앞뒤에 나락()를 튀긴 (팝콘처럼 부풀어진)밥풀을 붙인다. 튀밥(뻥튀기)기계가 나오기 전에는 밥풀도 솥에 담긴 가열된 모래 속에서 튀겨냈다. 이어서 빨간 대추와 검은 목이버섯을 잘게 썰어 예쁘게 고명을 입혀 완성한다.

광주광역시 수완동에 거주하는 임수원 씨가 음식 조리과정에 대해 도움 말씀을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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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 음식이야기 2023-02-15 16:55:10
앞으로도 순창의 전통음식들과 식당에 대한 좋은 칼럼 부탁드립니다. 좋은 기사 잘 읽었습니다. ^^

순창고추장킹덤 2023-02-15 16:00:08
순창음식에 이런 숨겨진 이야기들이 있다는 걸 알게되었네요. 좋은 칼럼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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