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미육아]다미가 순창에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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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미육아]다미가 순창에 왔습니다
  • 조은영
  • 승인 2023.02.15 08:28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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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영 (동계 회룡)
다율이가 동생 다미를 돌보고 있습니다.
다율이가 동생 다미를 돌보고 있습니다.

 

새봄은 오고 입춘이 지난지 여러 날이 지났습니다. 노오란 복수초(얼음새꽃)가 얼굴을 내밀고 봄을 알립니다. 남쪽에서는 홍매화 소식도 들려오니, 봄이 머지않았음을 실감하게 합니다. 여름에 태어났지만, 가을이 되어서야 집에 온 다미는 환하게 웃으며 하얀 겨울을 맞이하네요. 우리 나이로 올해 4살인 다율이도 동생 다미를 제법 챙긴다고 하니 기특하고 대견합니다.

태어난 지는 220여일이 지났지만, 실제 출생 예정일로 계산하면 125일쯤 된 다미에게 백일 기념일을 제대로 챙겨주지 못했었습니다. 정상적인 출생일을 가늠할 수는 없지만, 다미를 위해서 마땅한 날을 잡아 기념일을 챙겨주기로 하였습니다. 순창 떡집에서 백일떡을 주문하고, 왕할머니께서 준비해 주신 금반지도 챙겼습니다. 사돈댁도 오신다니, 나물이며 밑반찬 몇가지를 분주히 만들어서 청주로 향했습니다.

 

그리운 만남

할머니를 부르며 달려오는 다율이와 격한 포옹을 하고, 생글생글 웃는 다미도 안아 주었습니다. 그 사이 다율이는 못 하는 말이 없을 정도로 말이 늘었고, 분명하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만큼 의젓해졌습니다. 동생 다미를 위해서 생일 축가를 부르는 모습을 보니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겨울 동안에는 춥기도 하고, 나의 건강도 힘들어져서 집안일과 아이들 돌보는 분을 두었습니다. 덕분에 집안일에서 여유가 생긴 며느리는 다율이에게 책을 읽히고, 글자 공부며 영어까지 공부를 시키고 있었나 봅니다. 예사롭지 않은 발음으로 영어단어를 말하면서, “할머니는 못하지라고 말하는데, 순간 영어 공부를 해야 하나생각이 들기까지 하였지요.

거실과 다율이 방에는 매번 새로운 책들이 들어와 있습니다. 예전에는 상상도 못할 입체적이고, 알아서 읽어 주기까지 하는 기능을 갖춘 책들이 놀랍습니다. 더군다나 명작그림이 있는 장면에 버튼만 누르면 원어민 발음으로 일상 회화를 읽어 주기까지 하는 책이라니~ 그저 놀라운 일이죠. 며느리는 아이들 교육을 위해서 부모도 함께 공부를 해야 한다며 일찌감치 영어공부를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저 어렸을 때는 학교에 입학하면서 ㄱ, , 을 배웠습니다. 영어는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알파벳을 배우고 단어를 외우며, 이해하기도 어려운 문법을 달달 외웠었지요. 그런데 29개월 다율이는 놀이하듯 책을 보고, 영어를 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문득 다율이가 유치원을 졸업하고 학교에 들어가면 무엇부터 배울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모든 아이들의 상황이 같지는 않을 텐데미리 공부가 된 아이들과 형편상 그렇지 못한 아이들이 같은 교실에서, 수업을 받을 때 지장은 없을런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어릴적 동무 순식이

요즘 아이들과는 비교도 안되는 어릴적 나와 친구들은, 조기교육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동생들을 돌보았고, 집안일을 하는 아이들도 있었지요. 그러다 보니, 책을 보고 글자를 읽히는 공부라는 것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지금은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도, 알 수 없는 어릴적 나의 동무 순식이는, 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집안일을 하였습니다. 매일 밭일을 나가시는 부모님은, 동생들과 연세 드신 할머니까지 어린 순식이에게 부탁하였던 것입니다. 정지(부엌)에서 불을 지펴 밥을 하고, 석유 곤로에 된장국이며 동태국을 야무지게 끓여 내었던 순식이는 믿기지 않는 신비한 마법사 였습니다.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아궁이에 불을 지펴야 했기에 땔감이 필요했는데, 소나무 아래 떨어진 낙엽을 갈퀴로 긁어 한 포대 가득 머리에 이고 집에까지 왔던 것입니다. 그 일을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하였으니, 지금 사람들은 아동 학대라고 말하지 않을까요?. 나와 순식이의 유년기와 초등학교 시절은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졸업식 날, 순식이는 학교에 오지 않았습니다. 가정 형편상 중학교에 갈 수 없었던 것입니다. 밥도 안 먹고, 하루종일 눈이 탱탱 붓도록 울었다고 합니다. 얼마나 서럽고 아팠을까요그로부터 일년 뒤 순식이의 중학교 입학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후배가 되어버린 친구는 더 이상 나와 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맘에 상처가 많았던 만큼, 얼마나 공부를 열심히 하였는지 명문 여상고에 입학을 하였답니다. 그 후로도 순식이와는 서먹하게 지냈습니다. 지금은 어디에서 어떤 할머니가 되었을지 알 수도 없지만 가끔씩 연락하고 차도 마시며 옛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막연한 그리움에 울컥해집니다.

요즘 세대는, 먹고 입는 것뿐만 아니라 그때 그 시절 사람들과 삶의 방식까지도 상식을 뛰어 넘는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다율이와 다미가 살아갈 세상을, 할미인 나는 가늠할 수가 없습니다.

 

다미가 순창에 왔습니다

다율이와 다미

 

아이 둘을 며느리에게 맡겨둘 수가 없어, 둘째 다미를 데려고 내려왔습니다. 아들과 며느리가 첫째 다율이의 교육을 염려하다 보니, 아직은 먹고 자는 것이 일인 다미를 데려온 것입니다. 옛말에 온 동네 사람들이 아기를 본다는 말이 있습니다. 오죽하면 아기 보느니 밭에 나가 일한다고 하겠습니까. 3월이면 다율이가 어린이집을 입학하게 됩니다, 다음 달부터는 육아가 조금은 수월해질 것입니다.

세대가 바뀌고 시절이 다르다 하지만, 부모 없이 자식이 있을 수 없는 것은 불변합니다. 다미가 걸음마를 하고, 할머니를 부르며 재롱을 부릴 때쯤이면 한숨 돌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이를 보는 것은 나의 시간과 일을 모두 접는 것이지만, 아이와 함께하는 순간순간 속에서 나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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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세연 2023-04-12 01:48:29
열린순창 지면평가위원회에서 조은영 님의 글이 신선하다고 합니다^^
곧 수필집 출간해도 되겠어요~

김만성 2023-02-16 08:10:41
계묘년(癸卯年)의 봄소식은 그리운 다미와 만남을 통해 그렇게 오고있군요, 장군목길 길섶의 버들강아지 눈을 뜨는 우수에는 또 하나의 그리운 순식 친구의 소식이 오고 있지말입니다. 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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