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광석 시인
무늬3 김남주 묘소 앞에서
젊은 날, 민족문학의 대들보가 되라
과분한 말씀을 주셨지만
가솔 딸린 가장으로 살았다
맹렬하게 살았으나
약속을 지킨 것은 아니었다
정신을 벼르기는 하였으나
세상을 굴린 건 아니었다
십수 년도 지난 어느 날
잔설 내리는 겨울 속으로
생국화 끌어안고 지은 죄 많은 학동처럼
선생님 묘소 앞에 섰다
먹을 것 하나 없는 빈 하늘이라도
까치 먹을 홍시 하나는 달아놓으라던
선생님 바람과 달리
나는 통속적이었다
내 벗들도 세속과 탐욕에 필사적이었다
선생들의 노역이 담긴 홍시까지
우린 참 우악스럽게 먹어치웠지만
통속과 탐욕 사이에서
자신과 세대를 넘어서는 삶과 철학
문장의 씨앗 하나 만들지 못했다
실패를 고해성사하듯
무릎 꿇고 소주 뿌려
담배 하나 불 붙여 올리지만
아, 잔설에 젖은 마음 한 장
엎드려 절한 채
왜 이리 꿈쩍하지 않는가
채광석 시인. 1968년 순창에서 태어났다.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재학 중인 23세 때 등단했다. 하지만 등단은 ‘대학 재학 중 사법고시 합격’ 등과는 화려함의 결이 전혀 다르다.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대에 절필을 한 후, 나이 쉰이 넘은 지난 2019년 2번째 시집 <꽃도 사람처럼 선 채로 살아간다>를 펴냈다. <오월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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