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창, 숨겨진 이야기(11)순창 예술·교육에 기여한 임인주 선생 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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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 숨겨진 이야기(11)순창 예술·교육에 기여한 임인주 선생 가문
  • 림재호 편집위원
  • 승인 2023.03.29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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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년 된 가야금·대금 국악원에 기증
▲ 지난 19일 3남 임창호 선생(중앙)을 방문한 조계문 국악원장(좌)과 설기호 부원장(우)

 

해산(海山) 임인주(林麟周) 선생이 생전에 사용하던 200여 년 된 가야금 1점과 대금 1점을 지난 19일 순창국악원에 기증했다.

가야금과 대금을 기증한 주인공은 해산 임인주 선생의 3남으로, 전 순창중앙초등학교 교장으로 퇴직한 임창호(林昌鎬) 선생이다.

임 전 교장은 집안 보물인 가야금과 대금 기증으로 서편제 본향이자 동편제의 또 다른 산실인 소리의 전통을 계속 이어가길 희망한다순창국악원의 보관 장소 여건이 좋아진다면 선친의 유작인 병풍과 서화작품 등도 추가로 기증하겠다라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2대에 걸쳐 순창 예술·문화·교육에 큰 족적을 남긴 임인주 선생과 집안에 대해 살펴본다.

 

임인주 선생

공직자이자 서예·동양화 명인

임인주(林麟周·18941961) 선생은 평택임씨 순창관 32세로 호는 해산(海山)이다. 공직자이자 서화에도 뛰어난 예술인이자 풍류객이었다.

그는 민족수난기였던 일제강점기에 18년이라는 오랜 세월을 공직자로 근무하며 순창면장직 등을 수행했다. 그가 순창면장을 하면서 이룬 가장 큰 성과는 순창읍 경천 둑길 완성이었다.

갑술년 물난리라고만 전해오는 19347월 장마철에 삼남지방(전라·충청·경상도) 일대에 미증유라고 표현할 정도로 큰 비가 내렸다. 717일에 시작된 홍수는 25일까지 8일 동안 홍수가 계속되어 평균 600정도의 비가 내렸다. 그 결과 179명이 죽고, 5만여 명의 수재민이 발생했다. 이 때의 대홍수는 작가 박화성(朴花成)으로 하여금 <홍수 전후>(洪水前後)라는 작품을 쓰게 했을 정도였다.

순창읍의 경우에도 그야말로 물바다가 되었다고 한다. 이때 경천과 인접한 순창읍 남계리와 옥천동마을은 경천물이 넘쳐 모두 잠겼다. 이후 경천 제방공사가 시작돼 1940년대 초에 완공되어 오늘날 옥천동에서 남계리 사정마을에 이르는 경천둑길이 완성되었다(3남 임현호 증언).

그는 천부적인 예술 재능으로 서예와 동양화, 그리고 가야금과 거문고 등 악기 연주에 뛰어난 재주를 보여 당시 호남 일대에 명성이 자자했다.

조선미술전람회(조선미전) 5·6회 입선 작품인 청죽과 난 등이 조선미술도록(朝鮮美術圖錄)에 수록되어 있고, 유품으로도 남아 있다.

그는 서예에도 뛰어나 순창군청 앞 다리인 순창교(淳昌橋) 글씨도 남겼다.

조선미술전람회 입선 당시 함께 작품을 출품했던 호남 예술의 거성 허백연과는 두 차례에 걸쳐 동년 동시에 입선한 바 있다. 두 사람은 화방에서 함께 그림을 그리고 인생을 달래며, 호남지역의 서화 전통을 더욱 떨치게 하려는 노력을 주도했다고 한다.

그는 가야금을 비롯해 양금(洋琴원금(爰琴호적(胡笛대쟁(大箏) 15종의 악기를 능통하게 다루었다. 그가 소유하고 있던 악기만도 60여 종이었다고 한다.

해방 후에는 조선중앙방송국과 전주방송국 등에 출연해 가야금과 거문고를 연주했으며, 했다. 당시 전국에 방송된 가야금·거문고의 음류은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한다.

후손들은 그를 공직자보다는 평생을 그림과 글씨와 풍류를 벗 삼아 청아한 삶을 살았던 예술인으로 기억한다.

대나무 그림

 

장남 임현호 교장

임현호(林炫鎬·19241998)는 임인주의 장남이다. 전주북중학교와 전주사범 학교를 수료한 후 23세 때 순창초등학교에서 교직을 시작했다. 27세 때 교장으로 특임 받아 군내 순창·인계·구림·옥천·풍산·적성·내월초 교장(순창·인계·구림초는 각 2)을 지내고 1980년 퇴임했다.

아버지의 풍류를 닮아 거문고를 잘 켰으며, 퉁소를 특히 잘 불었다. 한문학에도 능통했으며, 시를 즐겨 썼다. 젊은 시절 <순창 군민의 노래> 노랫말을 썼다.

<순창 군민의 노래>1948년 무렵에 당시 순창초등학교 교사였던 임현호가 가사를 쓰고, 계효순이 작곡한 곡이다. 임현호의 8살 아래 동생인 임창호는 “1948년 무렵 군내 각 학교 교가를 만들 때 <순창 군민의 노래>도 만들었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순창 군민의 노래>4분의 4박자의 행진곡풍 노래다. 순창군 주요 행사나 향우회 등 중요한 민간 행사에서 애창된다. 순창 지명과 함께 정겨운 가사로 아늑한 감동을 주고 있으며 살기 좋은 순창 건설의 꿈을 담고 있다.

1: 회문산 높은 봉에 해 떠오를 때/ 망망히 펼쳐지는 우리의 낙토/ 희망찬 내일 위해 서로 도우며/ 일하는 즐거움에 우리는 산다.

2: 옥천수 맑은 물에 수려강천은/ 사랑과 믿음으로 이룩된 모습/ 보아라 찬란한 꿈 여기에 심어/ 알차게 보람 있게 우리는 산다

3. 후렴 : 장하다 천년만년 이어 나가는/ 살기 좋은 내 고장 우리의 순창

 

3남 임창호 교장

이번에 순창국악원에 임인주 선생의 가야금과 대금을 기증한 임창호(林昌鎬·1932)는 임인주 선생의 3남이다. 순창군교육청 장학사와 순창초·인계초 등에서 교장을 지냈다.

아버지를 닮아 서화에 뛰어나 대한민국서도대전, 동아국제미술대전, 전국노인서예대전 등에서 30여 차례 수상한 바 있다. 또한 함평 천지 늙은 몸이로 시작하는 <호남가> 가사를 쓴 서예 작품을 액자로 만들어 순창군에 기증 한 바 있다. 현재 광주광역시에 거주하고 있다

▲ 순창교(淳昌橋) 글씨
▲ 순창교(淳昌橋) 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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