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쪽빛한쪽(18)드디어 꽃이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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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쪽빛한쪽(18)드디어 꽃이 핀다
  • 선산곡 작가
  • 승인 2023.03.29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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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산곡 작가

 

이른 봄의 시선이었다.

 

그리움은 먼 곳에 있다

차갑게 가슴 울리던

절망의 공명(共鳴)도 가고

수액(樹液)의 끝

세월의 이슬은 얼음처럼 차갑구나

가거라

알게 될 거야

 

흰 눈이 내리는 겨울에도 얼음이 든 커피를 마셨다. 떠도는 말로 얼얼’, 곧 얼어 죽어도 얼음 커피라는 말이다. 뜨거운 커피 홀짝거리기 싫어진 지는 이미 오래되었다. 백작처럼 앉아서 도도하게 마셔야 한다는 자세는 멋쩍은 과시였을 뿐. 한때의 의식이 이렇게 변하는 것도 세월 탓인지도 모르겠다. ‘한 시간의 냉기가 칠 년의 열기를 빨아내듯가슴에 불이 났을 때 마시던 버릇이 굳었다면 천박하겠지만 그래도 그래야만 했던 이유는 있었다.

살던 곳을 중심으로 컴퍼스로 원을 그리듯 동서남북을 전전해왔던 커피집 가기가 문득 사치스럽게 생각되기 시작했다. 내상(內傷)은 깊이 감추어 놓고 사는 게 뭐가 그리 좋아서 찻집에 앉아 있을까. 그 한가(?)함을 세상 사람 모두가 비웃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세월은 흘렀다. 때를 맞추어 찾아온 코로나가 그 경계를 대신해 줘서 다행이었다. 아픔을 떠안았던 그때의 상처는 조금씩 아물어 가지만 이따금 회상의 피를 흘리기도 한다. 그때 마시기 시작했던 커피는 여전히 얼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 냉기를 품어야 한다면 그 또한 못 할 일이지만 요사이 며칠 작정하고 버텼다. 전화기는 아예 진동으로 해놓고, 웬만하면 창밖을 내다보지 않았다. 책을 받아도 감사하단 엽서 한 장 쓰지 않았고 그 책 또한 펼치지 않았다. 아들이 선물해준 만년필만 만지작거린 심사는 따로 있었다. 그렇지만 넉넉하게 얼려 둔 얼음, 닷새 불량 갈아 둔 커피콩이 든든했다. 날마다 한 차례 임윤찬의 피아노 연주를 들었고 들을 때마다 눈물이 나와 행복했다. 그 사이,

드디어 꽃이 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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