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대법원장 기린 ‘가인연수관’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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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대법원장 기린 ‘가인연수관’ 개관
  • 우기철 기자
  • 승인 2010.07.30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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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인정신 계승위한 법조인 연수 세미나 장소로 활용

 

우리 군 출신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가인 김병로 선생을 추모해 건축된 가인 연수관이 지난 2일 준공식을 갖고 문을 열었다.

 

이날 준공식에는 이용훈 대법원장과 법원관계자, 이강래ㆍ정동영ㆍ우윤근ㆍ유성엽 국회의원, 김승환 교육감, 강인형 군수, 도내 기관단체장 및 가인의 손자인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 손녀사위인 윤영철 전 헌법재판소장과 지역주민 등 300여명이 참석했다.

연수관은 가인 김병로 선생의 정신을 기리고 전국의 법관과 법원 공무원들의 연수 및 심신수련, 법 관련 학회 세미나 장소 등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기념식사를 통해 “평생 청렴하고 강직했던 가인 김병로 선생님이 살아계셨다면 ‘사치스러운 연수관을 지었다’고 꾸짖었겠지만 선생님의 공적에 비추면 때늦은 감이 있다”며 “가인 선생님은 헌법이라고 지칭 되셨으니 선생님의 정신을 잊지 말고 이어 나가자”고 당부했다.

복흥면 답동리에 총 사업비 116억원이 투입돼 부지 80,303제곱미터(㎡)에 연수원 5,203㎡규모로 지난 2009년 2월 착공한 가인 연수관은 1년5개월만에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로 건축됐다.

콘도형으로 지어진 건물은 지하 1층에는 대강의실, 중강의실, 세미나실, 가인 전시실 등이, 지상 1층에는 식당, 탁구장, 휴게실 등 연수생 편익시설이, 2ㆍ3층에는 중형객실 각 15개, 지상 4층에는 대형객실 4개 등 총 34개의 객실이 들어서 있고, 연수관 광장에는 천연 잔디구장과 야외 족구장 등 운동시설과 주차시설이 설치돼 있다. 특히 지하 1층에 설치된 가인 전시실은 3억원이 투입돼 초대 및 2대 대법원장을 역임하고 후배 법조인들로부터 가장 존경받는 우리 군 출신 가인 김병로 선생을 기념하는 유품과 판결문, 영상물, 사법역사를 담은 각종 자료들과 흉상 등이 전시됐다.

● 인터뷰

 

 

 강민규 (63ㆍ복흥 답동 구산마을)
“순창 특히 복흥에서 대대로 살고 있는 이 지역사람들 모두가 가인 김병로 선생님을 존경합니다. 대법원이 선생님 뜻을 받들기 위해 이렇게 연수관을 열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복흥 지역민으로서 자부심이 생기고 가슴 뿌듯합니다. 연수관 뒤로는 한 눈에도 시원하게 볼 수 있는 담양호와 금성산성, 추월산 등이 있고 앞에는 낙덕정과 가인 선생의 생가 마을을 내려다 볼 수 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기에도 좋습니다. 이렇게 좋은 자리에 세워졌으니 법을 공부하는 사람들한테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이강래(민주당 국회의원)
“가인 김병로 선생님의 정신이 면면이 전승되기를 바랍니다. 가인연수관은 대법원장의 배려와 남다른 인식으로 구체화 될 수 있어 뜻 깊은 개관식이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사업추진 과정 중에는 어려움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예결위원회에서부터 가인 연수관 건립에 많은 관심과 적극적 지원을 해 왔는데 오늘 이곳에서 개관식을 맞게 되어 감회가 남다릅니다. 가인 연수원은 법조인뿐만 아니라 순창인 이라면 그 누구라도 긍지와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만큼 순창군민 모두가 가인의 정신을 이어받아 순창의 정신이 되어 지기를 기대합니다.”

 

 

 

김종인 (전 국회의원, 가인의 손자)
“할아버님께 순창의 생가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듣고 자랐지만 성장하면서 실제 복흥 답동리의 생가에 자주 와 보지는 못했습니다. 순창을 방문할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았지만 순창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갖고 있습니다. 연수관의 건립 첫 삽을 시작으로 이렇듯 준공을 하여 개관식을 갖게 되어 어느 때 보다 기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가인 선생님의 성품과 많이 닮았다는 평을 듣고 계신 것 같은데 어떠신가요?” 라는 기자의 질문에는 “그런 표현들이 어색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걸 보면 핏줄이라 그런 거 아닌가 싶습니다.”며 웃음을 보였다.

 

 

 

 정동영(민주당 국회의원) / 축사중에서
“특별한 날이기 때문에 특별하게 비가 온다. 가인 김병로 선생이 왜 호화청사 지었냐고 꾸중하신다면 우리는 건물을 지은 것이 아니라 정신을 지은 것이다고 말해야 한다. 용골산, 회문산 등 사방이 명산인 이곳 연수관에 판사님들이 오셔서 오도 가도 못하게 할 딱 맞춤 자리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가인선생이 있어 자랑스러웠다. 아쉬운 것은 가인선생의 생가가 평범한 농가로 전락해서 순창으로부터 버려진 느낌을 받는데 대책이 절실하다.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보류인 가인선생이 순창사람인 게 자랑스럽다.”

 

 

 

■ 김병로 초대대법원장은
법조인ㆍ정치가로 본관은 울산, 호는 가인(街人)이다. 1887년 12월 15일(음력) 복흥면 하리에서 사간원 정원을 지낸 아버지 김상희와 어머니 장흥고씨 사이에서 3남매 중 외아들로 태어났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자살까지 결심했으나 용추사(현 담양 용면)에 찾아온 면암 최익현의 열변에 감동, 동지들을 규합하여 순창읍 일인 보좌청을 습격하는 등 항일투쟁에 참여했다.
신학문을 통한 ‘민족 자강’이 민족이 살 길이라는 신념으로 1910년부터 14년까지 일본으로 건너가 니혼대학과 메이지대학, 주오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여 법조인의 기틀을 다졌다.
1919년 부산지법 판사로 취임했지만,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재판을 거부하면서 그만 두고 경성지방법원 소속 변호사로 개업하면서 ‘민족 변호사’의 길을 걷는다. 변호사 시절 6ㆍ10 만세운동, 도산 안창호 등 독립투사들이 관련된 사건을 100여건을 무료변론 등 다채로운 사회 활동으로 독립운동에 기여했다.
해방 뒤 좌우합작운동을 하고 헌법기초에 참여했으며, 미 군정청과 남조선 과도정부의 사법부장을 거쳐, 1948년 초대 대법원장에 선출 되어 1953년 2대 대법원장까지 9년 3개월 동안 외부에서 오는 모든 압력과 간섭을 뿌리치고 사법권 독립의 기초를 다졌다.
1952년 부산정치 파동 직후 대법관들에게 “폭군적인 집권자가, 마치 정당한 법에 의거한 행동처럼 형식을 취해 입법 기관을 강요하거나 국민의 의사에 따르는 것처럼 조작하는 수법은 민주 법치 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이를 억제 할 수 있는 길은 오직 사법부의 독립뿐이다”라고 강조했다
선생은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특별재판부 재판관장을 맡아 대한민국 건국과 민족정기 구현에도 큰 족적을 남겼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했다.
1964년 1월 13일 서울 인현동 자택에서 사망, 사회장으로 서울 수유리에 안장돼있다.

사진 : 이길민 기자

 

인터뷰: 이양순 - 황호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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