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연의 고전읽기(4)낭군 같은 남자들은 조금도 부럽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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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연의 고전읽기(4)낭군 같은 남자들은 조금도 부럽지 않습니다
  • 김영연 주인장
  • 승인 2023.04.12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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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연 (길거리 책방 주인장)

 

바야흐로 꽃의 계절. 벚꽃, 목련 등 봄을 알리는 꽃나무들도 많지만, 요즘 우리집 마당에는 보라색 제비꽃이 한창이다. 내가 어렸을 땐 앉은뱅이꽃, 오랑캐꽃이라고 했다. 왜 그랬을까?

기록에 의하면 오랑캐는 여진의 종족으로 미개하고 주변 지역에 대한 침략과 약탈을 일삼는 종족으로 나타난다. 이 여진족을 통일하고 세워진 나라가 바로 청나라다. 겨울지나 제비꽃이 필 때쯤이면 오랑캐들이 쳐들어온다고 붙여진 이름이 아닐까?

1636년 청나라 태종이 10만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와 조선을 공포에 몰아넣었으니, 바로 병자호란이다. 당시 조선의 임금 인조는 삼전도의 굴욕을 맛보며 항복하였고, 백성들은 부끄러움에 치를 떨었다. 여자들이 청나라로 끌려갔으며, 고초를 겪고 고향으로 돌아온 그녀들은 화냥년’(환향녀)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아야 했다.

이런 현실에서의 패배의 쓴맛을 통쾌하게 날려준 것이 숙종 때 창작된 것으로 전해지는 박씨부인전’(작가미상)이다. 어리석은 남정네들로 인해 빼앗길 뻔한 조선을 (현실과는 다르게) 주인공 박씨 부인이 큰 활약을 펼쳐 나라를 구한다는 이야기이다.

 

외로운 별당아씨

1970년대 별당아씨라는 드라마를 기억하는가? 특수 분장하고 출연했던 홍세미가 주인공이었다. 이야기는 크게 박씨 부인이 흉측한 탈을 쓰고 진행되는 전반부와 허물을 벗은 후반부로 나누어진다.

금강산에 사는 박처사가 어느 날 재상 이득춘을 찾아온다. 박처사는 이득춘의 아들 이시백과 자신의 딸이 혼인 맺기를 청하고 이득춘은 박처사의 비범함을 믿고 허락한다. 그런데 혼례를 마치고 보니 신부가 너무 흉측하여 차마 마주볼 수가 없었다. 이득춘을 제외한 시댁가족들의 냉대에 박씨 부인은 별당을 짓고 몸종 계화와 더불어 외롭게 살아갔다.

얼굴은 비록 흉측했으나 박씨 부인의 능력이 출중하여 집안을 위해 여러 가지 일을 해내었다. 시아버지 이득춘의 조복을 하룻밤 사이 지어내고, 비루먹은 망아지를 천리마로 키워내고, 남편 이시백이 과거에 장원급제하도록 도왔다. 이렇게 아무리 훌륭한 능력을 지녔어도, 여자이기에, 흉측한 외모 때문에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하였다.

 

허물을 벗고

그러던 어느 날 때가 되어 박씨 부인은 허물을 벗고 아름다운 여인이 되었고, 남편 이시백은 그동안 자신의 행동에 용서를 빌었다. 이에 박씨 부인은 조선은 예의의 나라라 했는데아내의 심정을 모르고서 어찌 출세하여 이름을 날리겠습니까?저 같은 아녀자의 마음으로도 낭군 같은 남자들은 조금도 부럽지 않습니다하고 꾸짖는다.

남편뿐만 아니라 시어머니를 비롯한 주위 사람들의 반응도 백팔십도 달라졌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을 외모로 평가하는 일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청에 맞서다

세월이 흘러 청나라가 조선의 변방을 자꾸 쳐들어 왔다. 하지만 임경업 장군이 있어 매번 실패하였다. 그러자 청나라 황후는 조선의 숭고한 인물과 임경업을 죽이려고 여자 자객 기홍대를 조선으로 보낸다. 하지만 기홍대는 박씨 부인의 상대가 되지 못하였다.

청나라는 임경업을 피해서 동해를 건너 한양성으로 쳐들어왔다. 박씨 부인이 이를 미리 알고 임금께 고했지만 요망한 계집의 말만 듣고 중요한 곳을 버릴 수 없다는 신하 김자점(실존인물)의 권세에 어쩔 도리가 없었다.

결국 병자년에 전쟁은 일어나고, 임금은 강화도까지는 엄두도 못 내고 서둘러 남한산성으로 피했다. 오랑캐 장수 용골대(실존인물)는 남한산성으로 향하고 아우 용울대가 박씨 부인과 맞서게 된다. 용울대의 군사들이 박씨 부인의 별당까지 쳐들어 왔으나 뜰을 지키는 나무들에게 오히려 당하게 되고, 박씨 부인의 몸종 계화에 의해 용울대는 목이 베이게 된다.

조선의 인조임금은 결국 청나라에 항복을 하게 되고, 용골대가 아우 용울대의 원수를 갚으러 달려왔으나, 박씨 부인의 재주를 이겨낼 수가 없어 무릎을 꿇고 목숨을 구걸했다. 용골대는 박씨 부인의 재주에 감탄하며 다시는 조선에 오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돌아갔다.

인조임금은 박씨 부인의 조언을 듣지 않은 것을 크게 후회하였으나 이미 지나간 일이었다. 알다시피 청나라 임금에게 세 번 무릎을 꿇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렸다는 삼전도의 굴욕을 겪은 것도 모자라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을 비롯한 수많은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갔다. 포로 대부분의 여인들이었다. 일부 양반가의 여인들은 몸값을 치르고 돌아오기도 하였지만 대부분의 여성들은 낯선 이국땅에서 치욕스러운 생을 살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하였을 것이다. 이것이 조선시대 여인들의 현실이었던 것이다.

 

여성영웅의 등장

그동안 고전소설 속에 등장하는 영웅들은 모두 홍길동 같은 비범한 능력을 소유한 남성들이었다. 여성주인공들은 심청이나 춘향처럼 효녀, 열녀 등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반면 박씨부인전에는 능력있는 여인들이 많이 등장한다. 박씨부인을 비롯해서 몸종 계화, 심지어 적국인 청나라 황후와 자객 기홍대까지 비범한 능력을 지녔다.

이렇게 이야기는 전쟁에 패배한 현실과 현실에 대한 보상심리가 섞여서 진행된다. 현실에서는 이룰 수 없었던 조선 여인네들의 복수(?)를 그리고 있다. 이 소설의 독자는 누구였을까? 조선후기로 가면서 신분제도도 흔들리고 여성들의 사회의식에도 변화가 일어난 것일까?

허물을 벗고 태도가 달라진 남편 이시백에게 호통을 치고, 오랑캐장수 용골대의 무릎을 꿇리고 이 장면에서 당시 독자들이 통쾌감을 느끼고 많은 박수를 보냈을 것이다.

박씨 부인이 추한 허물을 벗고 절세가인이 되었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로 서양에는 <미녀와 야수>가 있다. 자신의 잘못으로 마법에 걸려 야수로 변한 왕자, 그 마법을 푼 것은 사랑하는 여인이었다. 반면 박씨 부인은 어떻게 허물을 벗게 되었지? 그냥 때가 되어서’, ‘액운이 다해서좀 아쉬운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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