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치산 시인 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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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치산 시인 김영
  • 안욱환 순창희망포럼 주민자치위원장
  • 승인 2023.04.19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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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과 관련된 근현대사를 하나씩 짚어봅니다.
▲ 1970년 물레방아 글모임 지도교사 시절의 김영(아랫줄 가운데). 《순창문학》제공.

김영(본명 김웅·1929~1995)은 순창읍 출신으로 6.25가 발발한 195021세의 나이에 회문산에서 빨치산 활동을 하다가 1952년에 지리산 백무골에서 군경토벌대에 체포됩니다. 그는 포로수용소에 투옥되었고 전향하면 감형된다는 제안을 거부하다가 마침내 1958년에 전향서를 제출하게 되고 우여곡절 끝에 1964년 특별가석방을 받습니다. 그러나 빨치산 전력 때문에 당국의 감시를 받아 평생을 가난과 질병의 고통 속에서 살다가 돌아가신 우리 지역 출신의 시인입니다.

그는 1948년 순창농림학교(현 순창제일고) 재학 중에 남한만의 단독선거 반대 투쟁과 친일교사 축출 그리고 국립서울대학교안 반대운동과 동맹 휴업을 주도한 혐의로 5일간 구금될 정도로 민족의식이 투철했으며, 학업에도 두각을 나타내서 1949년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학교) 국문과에 수석 입학할 정도였습니다.

1950년 경제적 어려움으로 대학교를 중퇴하고 순창고등공민학교에 영어·국어 강사로 취업하였습니다. 6.25가 터지자 전국문학예술총동맹(문예총) 순창군지부 서기장으로 선출되어 예술단을 조직하여 혁명극, 시낭독 등으로 순회공연을 하다가 같은 해 915일 인천상륙작전으로 인민군이 패한 후에는 좌익운동가들과 산간 지역 주민 300명 가운데 끼어 구림 회문산에 들어가서 빨치산 투쟁을 시작합니다. 그들 중에는 순창에서 함께 시국과 문학을 논했던 고향 친구인 이성식, 흰나리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파르티잔 = 유격대 = 빨치산

지금 젊은이들 중에는 빨치산이란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어서 금강산이나 한라산 같은 산의 이름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지만 원래 빨치산은 유격대원을 뜻하는 러시아어인 파르티잔에서 나온 말입니다.

우리나라 근현대사에서 유격대의 역사는 일제 강점기 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들은 정규군이 아닌 의병들로 자신들에게 익숙한 지형지물을 이용하여 일본군을 교란하는 수법으로 그들과 싸웠는데 주로 밤에 다리나 철도 등 기간 시설을 부수거나 지서를 습격하고 산으로 도망하는 등 소규모의 부대로 움직이는 것이 특징입니다.

일제가 패망한 뒤인 194843일 새벽에 1년 이상 계속된 미군정의 탄압에 저항한 남로당 무장대가 한라산에서 내려와 지서와 우익단체를 습격하여 시작된 제주 4·3 봉기 때는 한라산에서 활동하였고 제주 4.3을 진압하라는 명령을 받은 여수 주둔 14연대 군인들은 194810, 1.동족 상잔 결사 반대 2.미군 즉시 철퇴 등을 내세워 출동을 거부하고 무장봉기를 하게 됩니다. 마침내 이들은 진압군에게 쫓겨서 회문산에 100여명이 입산하게 됩니다.

순창 회문산은 임실 성수산, 담양 가마골과 인접해 있으며 남원 지리산에 가까이 위치해서 전북도당이 있을 정도로 빨치산 활동의 중심지였으며 특히 쌍치는 지형이 산으로 쌓여 있어서 군경의 통제가 되지 않는 해방구로 유명했습니다. 또 가까운 담양의 가마골은 전남도당이 있었는데 골짜기가 깊어 무기를 만드는 시설이 있었다고 합니다.

 

굶어 죽고 얼어 죽고 맞아 죽는빨치산

이처럼 순창지역은 6.25 전쟁을 전후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전북도당과 순창군당에서 활동하던 사람들이 회문산에 입산하여 유격대 활동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들은 흔히 자신들을 빨치산이라고 하는데 보통 야산대나 산사람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경찰이나 군인들은 이들을 공비나 반란군이라고도 불렀습니다.

당시에 빨치산은 3번 죽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굶어 죽고 얼어 죽고 맞아 죽는’ 3가지 죽음을 각오해야 빨치산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6.25 전에 활동한 이들을 구 빨치라고 하고 6.25 전쟁 중간이나 이후에 입산한 경우를 신 빨치라고 불렀습니다.

한편 <남부군>의 저자 이태는 김영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내가 김영을 처음 만난 것은 1950년 늦가을 회문산의 전북 유격대 독수리 병단의 성원으로 있을 때였다. 그는 병단의 기술서기였고 나는 전투부대의 하급간부였다. ‘독수리병단50명가량의 적은 부대였는데, 거기서 나는 인쇄공장의 식자공이었던 쌍치 출신의 노병서와 서울 중앙대학교 학생이었던 이상렬 그리고 김영 등 세 사람의 문학청년을 알게 된다. 우리 네 사람은 서로 직책이 다르고 나이도 약간씩 차이났지만 문학애호가라는 공통분모를 발견하고는 남달리 친밀하게 지냈다.”

 

23세 김영 사형선고, 20년 감형-3년 독방

1948년 고등학생일 때 순창의 장로교회에서 세례를 받았던 그는 문화부 중대장이 군경포로를 죽이라는 명령에 자신이 기독교인임을 내세워 이유 없이 살상을 할 수 없다고 단호히 거부했다가 즉결처분 당해 죽을 수도 있는 위험에 처했으나 이태가 이미 전투력과 전의를 상실한 적을 굳이 처단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뜻이라며 거드는 바람에 겨우 화를 면할 수 있었다는 일화가 소설 <남부군>에 나옵니다.

이들 빨치산은 17~18세의 고등학생부터 30대 초반까지의 젊은 남녀 청춘들이 당대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옳은 것을 위해 싸웠는데, 그들은 6.25를 전후한 기간 동안에 8만 명이 입산하여 그중 1만 명은 귀순하고 나머지 7만 명이 죽었습니다. 이들 7만 명의 가족들도 당국의 핍박을 받았고 연좌제에 걸려서 취직을 할 수 없는 피해를 입게 됩니다.

김영 시인은 19513월 미군 비행기가 회문산에 기름을 뿌리고 공격하여 함락되자 장수 덕유산에서 남부군과 합류하였으나 결국 지리산까지 쫓겨 갔고 1952년 봄에 지리산 마천면에서 수도사단에 의해 체포됩니다. 23세의 젊은 김영은 광주고등군법회의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복역 중 20년으로 감형되었지만 전향을 거부하여 3년간 독방생활을 합니다.

국군과 경찰은 195210월부터 동계 토벌작전을 시행하여 지리산에 은거한 빨치산 토벌에 주력했으며 1953년 휴전 이후에도 계속된 공격으로 빨치산은 급격하게 세력을 잃었고, 잔여 세력은 1955년 무렵 거의 소탕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2002년 제1회 김영 추모 백일장

당시 순창의 국회의원 임차주 씨와 교회장로 박석은 씨 등은 끝까지 전향을 거부하는 김영을 면회하고 재심을 위해 전향할 것을 권유하자 그는 1958년 마침내 전향서를 제출하게 되고 1964년 마산교도소에서 폐결핵과 여러 질병의 합병증이 있는 상태로 정부수립 기념 특별가석방이 되어 세상에 나오게 됩니다. 이때 그의 나이 35.

출소한 해에 결혼을 하고 고향 순창에 내려온 시인은 농사를 짓고 창작 활동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고향에 내려온 지 10년 만에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서울에 올라가게 되고 영등포에서 손수레를 끌고 과일장사 등을 하면서 궁핍한 삶을 살게 됩니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그는 옥중 수기 <벽과 인간>, 시집 <깃발 없이 가자>, <리어카의 시인> 그리고 자전적 수기 <총과 백합>, <빨치산 철창 수첩> 등을 펴냈습니다.

당시에 순창에서 회문산에 입산한 사람이 300여명이라고 하는데, 그들 대부분 잘 알려지지 않고 있으며 이들은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자기 한목숨을 기꺼이 바친 비운의 청춘들이었습니다. 1990년에 시인이 언론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김구, 여운형 같은 민족지도자들이 암살당하고 이승만 정권의 비리와 부패에 대한 반감이 너무 컸기 때문에 김영은 빨치산이 되었던 것입니다.

빨치산을 소재로 한 문학작품으로 이병주의 <지리산>, 이태의 <남부군>, 조정래의 <태백산맥> 등 많은 문학작품이 발표되었으며, 이중 <남부군>(1990, 정지영 감독), <태백산맥>(1994, 임권택 감독)은 영화로도 만들어졌습니다.

2002년 한국문인협회 순창지부가 주관한 제1회 빨치산 시인 김영 추모 백일장대회가 개최되었으나 여러 가지 이유로 더이상 계속되지 못했습니다. 이제는 상처 치유와 화해 차원에서 빨치산 문화제가 계속되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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