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담 농사일기(34) 농장의 4월은 곁순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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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담 농사일기(34) 농장의 4월은 곁순달
  • 차은숙 작가
  • 승인 2023.04.19 08: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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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은숙(글 짓는 농부)
토마토
토마토
토마토

 

토마토 나와요?”

수확철이 다가오자 여기저기서 토마토 수확을 묻는 전화도 오고 문자도 온다. 지금은 몇 알씩 빨간 물이 들어가는 중이고 하순에 접어들면 따기 시작할 거다. 농장의 4월은 곁순달이다. 곁순이 너무 왕성해서 그렇게 이름 지어 보았다.

토마토의 곁순은 토마토 줄기와 잎 사이에 나오는 순이다. 말 그대로 원순 곁가지로 나는 순이다. 곁순은 모종을 심고 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서부터 조그맣게 보인다. 그러다 꽃이 피는 3월에는 제법 쑥쑥 자라난다. 곁순 따기도 시작된다.

 

농장에서 자주 만나게 되는 공벌레

 

공벌레

 

그리고 4, 하우스 안은 모든 기운이 왕성하다. 꽃을 찾아 날아다니는 수정벌의 윙윙대는 소리도 크고, 하루하루 커가는 토마토는 무릎 높이였다가 허리까지 다시 가슴만큼 어깨 위로 그러다가 내 키보다 크게 자라난다. 어디서 왔는지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는 공벌레들까지 바쁘다.

그늘지고 습한 곳을 좋아하는 공벌레는 곰팡이나 죽은 식물질을 먹는다는데 지렁이처럼 생태계의 분해자라고 한다. 공벌레가 부지런히 움직여 토양의 유기물을 분해하고 공극을 만들어 준다고 한다. 생김새도 순하고 무해하게 보이는 벌레다. 그러나 수가 극심하게 많으면 어린 묘와 부드러운 열매를 먹어 골칫거리가 되기도 한다.

농장에서 자주 만나게 되는 공벌레는 손으로 건드리면 공처럼 몸을 동그랗게 만든다.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서 그러는 거라고. 작고 연약해 보이기는 하지만 껍질이 생각보다 단단해서 높은 곳에 떨어져도 괜찮다고 한다. 우리 마음도 가끔은 작은 공벌레처럼 도르르 말려서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대단한 생명의 기운을 내뿜는 곁순

농장의 4, 그 무엇보다 대단한 생명의 기운을 내뿜는 것은 곁순이다. 며칠만 일을 미루면 곁순은 원순만큼 굵어지고 꽃을 피우겠다고 꽃망울이 생겨난다. 토마토 농사의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가 곁순 따기다. 토마토 잎마다 곁순이 나오기 때문에 나무 하나에 곁순은 스무 개가 넘는다. 어떤 곁순은 따낸 자리에서 다시 돋아난다. 이 곁순을 쉼 없이 따내며 움직이다 보면 마침내 한두 알 빨갛게 익어가는 토마토를 만나게 된다.

4월을 곁순달이라고 이름을 지어놓고 보니 그럴듯하다. 내친김에 1월은 고랑이랑달, 밭을 갈고 거름을 내고 고랑과 이랑을 만드는 때니까. 2월은 심는 달, 3월은 꽃을 세는 달이라고 해본다. 3월은 심은 어린 모종에 꽃이 필 때마다 기특해서 날마다 노란 꽃을 세며 일을 시작한다.

그리고 5월은 열매달, 6월은 따고 마무리달, 7월은 베는달로 한 작기가 끝난 나무를 베어내고 봄 작기를 마무리하는 달, 8월은 쉬는 달이라고. 땅도 농부도 쉬어 가자고. 1년에 농사가 두 번이니 이름이 같은 달도 두 번이다.

 

달력을 걸어두는 일

문장달력
문장달력

 

새해가 시작되고 벌써 4월도 중순을 넘기고 있다. 올해도 달력 여러 개를 얻었다. 해마다 어디선가 누군가에게 달력을 얻으며 살아왔다. 탁상 달력 몇 개, 종류별로 다양한 벽에 거는 달력들. 생각해보면 고마운 일이다.

점심을 먹고 나서 거실 책장 앞을 지나다가 작은 달력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3월을 펼치고 걸려 있었다. 진작 온 4월인데 작은 달력 한 장 제때 넘기지 못했다. 얼른 달력을 내려서 보니 소시락 소시락 겨울과 봄 사이 오솔길단정한 글자로 쓰여 있는 문장 달력이다. 달마다 아름다운 구절들이 적힌 달력의 작명법은 1월 새날달, 2월 스스로달, 3월 사이달, 4월 피고 지고달, 5월 그대 달이다. 이 달력은 <문장 달력>으로 시인과 타이포그래퍼가 함께 만들었다.

문장 달력처럼 나도 내 말을 가진 농사 달력을 걸어두게 되었다. 농사짓는 일은 계절과 날씨에 맞춰 사는 일 같고, 일 년 열두 달, 달마다 또 다른 이름을 맞이하고 가꾸는 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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