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바닥 교육(25)장화(長靴)처럼 살아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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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바닥 교육(25)장화(長靴)처럼 살아야 하는데.
  • 최순삼 교장
  • 승인 2023.04.26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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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삼 순창여중 교장

4년 전부터 농사철이 시작되면 필자는 종종 장화를 신는다. 아내가 주말농장 텃밭 농사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살면서 신고 일했던 장화는 10켤레 정도가 될 것 같다. ··고 때 집에서 일하면서 8켤레 정도 신었고, 대학 때부터는 집 떠나 살았기에 한 켤레도 충분했다.

4년 전 아내가 사준 장화는 발 크기에 비해 많이 크다. 발은 250인데 장화는 265이다. 발도 작지만, 발보다 큰 장화를 산 이유가 있다. 우선 일을 시작하기 전에 발에 딱 맞는 장화를 빨리 신기는 쉽지 않다. 일터에서는 마음이 바쁘기 때문이다. 성질 급한 필자는 딱 맞는 장화를 신는 데 시간이 걸린다. 일도 시작하기 전에 헛심을 뺀다. 또 다른 이유도 있다. 두꺼운 양발을 신고 장화를 신어야, 일할 때 발이 편하다. 힘을 쓸 때는 발이 몸을 짱짱하게 지탱해 주어야 한다.

 

장화를 신고 나서면 일이 척척 되네요

3월 중순에 장화를 신고서 텃밭 밭고랑을 만들고 거름을 뿌렸다. 작년 가을에 신은 후, 밭 가장자리에 스티로폼 상자에 넣어 둔 장화는 보관 당시에 비해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았다. 포개서 넣은 두 짝이 찐득하게 달라붙어 있었다. 그래도 두 짝을 떼어서 신어보니 일하는 데 지장은 없었다. 3월 마지막 주말에도 텃밭에서 상추, 쑥갓, 치커리, 대파, 얼갈이, 들깨 씨 등을 파종하는데 장화를 신고서 일했다. 씨뿌리기에 적합하게 밭고랑을 정리해 주니, 아내가 칭찬도 한다.

혼자서는 도저히 못 하겠는데 당신이 장화를 신고 나서면 일이 척척 되네요.”

4월 첫 주 주말에 내 장화는 팔덕면 태자마을 고향 집으로 왔다. 작년 10월에 철거하고 평탄 작업을 한 고향 집터 둘레를 동생들과 함께 무궁화 꺾꽂이를 하기 위해서였다. 전날 비가 와서 집터 둘레가 질척질척했는데 장화를 신고하니 훨씬 수월했다. 그날 동네 앞 고향 집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아버지 어머니 산소에 은덕(恩德)을 기리는 작은 상석을 놓아드렸다. 마음이 푸근하다. 산소에서도 장화를 신고 일했다.

 

아버지 따라 초등학생 때부터 신은 장화

필자가 장화를 언제부터 신었던가? 아버지 따라서 논밭에서 일하기 시작한 초등학생 때부터다. 논밭에서 괭이질이나 삽질할 때, 늦가을에 물이 덜 빠진 논에서 낫으로 나락을 벨 때, 소를 앞세워 논 갈고 모내기할 수 있도록 써레질할 때, 논에 물이 빠지지 않도록 논두렁에 흙을 부칠 때는 장화를 신고 일했다.

초등학교 시절 또래들보다 키도 작고 허약하여 코도 많이 흘렸다. 그래서 어머니는 큰아들이 발 다칠까 걱정되어 일하러 가기 전에 아버지에게 자주 말했다.

순샘이 아부지, 순샘이 장화 챙겨서 가요. 없으면 옆집 가서 빌려 가요”.

50년 이상 장화를 신고 이런저런 일을 해 왔는데, 일을 시작하기 전에 장화를 신으면 마음이 편하고 일할 맛이 난다.

 

장화를 신고 장화처럼 사는 날이 많기를

장화는 일터에서 목장갑과 함께 최전선에 있다. 일터가 위험하고, 일하는 데 장애물이 많을수록 장화가 앞장선다. 장화는 가뭄이 지속되어 먼지가 뿌옇게 일어나는 밭고랑에, 장마와 태풍으로 발목에서 무릎까지 빠지는 물 많은 논에 농부와 함께 먼저 들어간다.

또한 찬 이슬이 맺힌 풀밭이나 논둑을 따라 일하러 갈 때, 더럽고 오염된 물건을 다루는 공장에서, 자갈과 시멘트가 범벅되는 공사장에서도 일하는 사람의 방패(防牌)가 된다. 장화는 발바닥보다 밑에 있다. 그러함에도 모두가 불평하는 환경에서, 힘들고 궂은일을 도맡아 한다. 장화의 공덕이 새롭고, 눈부시고, 끝이 없다.

눈을 돌리면 순창에서 목장갑을 끼고, 장화를 신고, 하루종일 일하는 분들이 많다. 얼마 전에 두릅을 따고, 고추 모종을 위한 밭고랑을 만들고, 논에 물을 채우고, 하우스에 들어가서 쌈 채소를 돌보는 분들이 장화와 함께 일한다. 세상인심이 갈수록 장화 신고 일하는 사람을 함부로 대한다. 장화를 신고 장화처럼 사는 날이 많기를 그려 본다. 희망 사항은 자주자주 그려야 현실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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