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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이다. 광주를 생각하면 또 오월(惡月)이다. 아 오월의 붉은 광장에도 꽃은 새로 피고 가사(假死)의 나무도 머리부터 잎은 푸르구나. 20대 초반 ‘아, 어머니를 닮았다는 마음으로 살고 싶은 오월이여’ 시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5월이 되니 참 바쁘다. 모내기도 해야 하고 애경사도 많고 근로자의 날, 어린이날, 어버이날, 유권자의 날, 동학농민혁명 기념일, 입양의 날, 스승의 날, 성년의 날, 5.18민주화운동 기념일, 발명의날, 세계인의 날, 부부의 날, 부처님오신날, 바다의 날이 적힌 달력도 바쁘다. 그리고 5월 5일 열린순창신문 창간기념일.
어머니 병환으로 복흥과 서울을 오가던 13년 전 어느 봄날, 신문 창간과 정주 기자 모집 현수막이 인연이 됐다. 기존 신문이 있는데 이렇게 작은 곳에서 두 번째 지역신문이 과연 사업성이 되겠는가. 직업이 신문이나 잡지 만드는 일이었기에 직원들 월급 주고 일정한 수익이 발생하느냐가 우려였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반가웠다. 서울에서 구독한 신문이 제 역할을 충분히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서울에 살 때는 기본 군정, 고향 소식, 인물 동정만 나와도 반가웠고 충분했지만, 막상 고향에 살다 보니 다양한 분야에서의 비판기능도 중요했다.
어려운 과정을 거친 13년, 열린순창 신문을 바라본다. 제호도 세련됐고 편집도 아쉬움은 있지만 비교적 산뜻하다. 기사의 완성도도 이만하면 괜찮다. 기자 수가 여유가 있고 취재가 충분하면 훨씬 밀도 있게 나오기 마련이지만 그렇지 못할 때가 많았다. 마감에 쫓겨 어정쩡한 기사도 있었다. 그러다 보면 더 강한 저항을 받기도 했다.
주위 평은 대체로 후하지만, 일부에서는 과거 “군수와 행정을 비판해서 싫다”는 얘기도 직접 들었고 그중에는 “구독도 끊었다”는 말도 들었다, 그렇지만 그것이 언론의 가장 중요한 기능인데 어쩌겠는가 웃고 넘어갔다. 여론을 멀리한 군정에 대한 평가는 이미 끝났다. 민심에 귀 기울이지 않은 독단 행정의 최후는 아름답지 못했다. 필자도 작심하고 한몫했으니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우리는 겉으로 드러난 현상에 앞서 그 저변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왜 그런 기사가 나올 수밖에 없었는가. 재미로 썼겠는가. 봉투 받고 썼겠는가. 강한 용기와 직업정신으로 꾹꾹 눌러 작성한 거다. 기자이기 전에 사람이다. 눈치코치도 있고 파장도 고려한다. 오히려 그 용기에 박수와 칭찬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열린순창 기자들에게 진심으로 엄지척을 해주고 싶다.
기자는 무엇보다 부지런해야 하고 균형감각이 중요하다. 충분한 취재와 양측의 입장을 듣고 기사를 써야 신뢰도 높은 기사가 완성된다. 최근 쌍치면 어느 마을과 관련해 다음 포탈에 대문짝만한 인터넷 뉴스 기사가 나와 귀농·귀촌 순창에 먹칠을 한 적이 있다. 언론을 알고 10여 년 이상 귀농·귀촌 관련 일을 한 관계로 전화를 많이 받았다. 어디냐? 진짜냐? 경과는 생략하고 해당 기자와 통화하고 마을 분을 만나본 결과는 일방적인 기사였다. 주민들은 “기자가 주민들을 만나지 않고 기사를 제보한 사람의 입장만 일방적으로 썼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제목은 거창했지만 기사의 진실성을 상실했으니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문제화 시키는 것이 간단치 않다. 이미 억울하게 추락한 귀농·귀촌 순창을 그 기자가 알기나 할까. 산술적으로 계산할 수 없는 유무형의 손실이 발생했으니 언론의 중요성을 상징하는 사건이라 하겠다.
정론직필(正論直筆) 13년은 사명감 없이는 버틸 수 없는 열린순창의 시간이었음을 잘 안다. 도움이 되지 못한 미안함도 늘 상존한다. 독자분들께 감히 바라건대 소통하고 공정하고 사랑이 넘치는 내 고향 순창을 위해 열린순창신문을 구독해준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기자는 독자의 관심으로 살아가는 직업이다. 기사에 반응해주면 이것처럼 신나는 일이 없다. 그동안 실망한 부조리의 순창을 생각해보면 작은 관심으로 기자들이 순창에서 훨훨 활동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더 생산적이지 않을까 싶다.
독자 여러분, 열린순창 가족 여러분 13년 수고하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