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연의 고전읽기(5)심청은 과연 효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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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연의 고전읽기(5)심청은 과연 효녀인가?
  • 김영연 주인장
  • 승인 2023.05.10 08:3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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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연 길거리 책방 주인장

5월 가정의 달입니다. 어린이날부터 시작하여 어버이날, 성년의 날, 부부의 날에 이르기까지 기념일이 넘쳐납니다. 사회가 변하면서 가족에 대한 개념도 많이 변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잘 아는 <심청전>을 통해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겠습니다.

 

<심청전>은 오래전부터 전래되어오다가 판소리로 불리기도 하고, 소설로 정착되기도 하고, 동해안 무당들은 굿을 할 때 무가로 부르기도 했다고 합니다. 용왕의 보살핌으로 살아 돌아온 심청이 뱃사람을 지켜 주는 신으로 떠받들어졌기 때문입니다. 현대에 와서도 뮤지컬, 애니메이션, 연극과 오페라 등으로 다양한 변주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심청>은 우리나라 유니버셜 발레단의 단골 레파토리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심청전>은 어리석은 심봉사가 공양미 삼백석을 시주하기로 약속하여, 어린 심청이 인당수에 몸을 던진 이야기로 알려져 있습니다. 요즘시대의 부모들은 자신의 자녀들에게 이러한 <심청전>을 추천할까요? 아마도 고개를 갸우뚱하며 주저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슬픈 이야기가 오랫동안 사랑을 받았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심청전은 우리가 알고 있는 조선시대 권장 덕목인 효에 관한 이야기인 동시에, 주인공 심청이 세상에 맞서는 영웅적인 내용을 그리고 있습니다.

 

심청은 누가 키웠나?

심봉사와 금슬 좋게 살던 곽씨부인은 늦둥이 심청을 낳은 후 시름시름 앓더니 불행히도 결국 세상을 등지고 맙니다. 태어나자마자 어미와 아내를 잃은, 가련한 심청과 심 봉사는 시련을 맞이합니다. 시각장애인으로 생활능력이 없는 심봉사에게 젖먹이까지 딸렸으니, 앞으로 살아나갈 길이 막막합니다. 심봉사는 어쩔 수 없이 동냥젖으로 심청을 키우고, 구걸로 삶을 겨우겨우 이어갑니다.

심청전에서는 마을공동체가 젖먹이 심청을 키워줍니다. 마을 사람들은 불쌍한 심청부녀를 외면하지 않았고, 배가 고파 우는 심청에게 젖을 먹입니다. 심 봉사가 동냥젖을 먹이러 돌아다닐 때 문전박대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동네 아낙네들은 언제든지 찾아오라고 하지요. 조선시대 최고의 사회보장제도는 바로 마을공동체였습니다. 현대 사회라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심청은 왜 인당수를 선택했나?

자신을 키워준 아버지 심봉사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죽음을 선택하는 심청의 모습은 오늘날에는 쉽게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돈을 구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구하지 않고 굳이 죽음의 길에 나서는 심청을 진정한 효녀라 할 수 있을까요? 오히려 눈먼 아비를 남겨 두고 죽으러 가는 것이 불효아닌가요?

누구는 공양미 삼백석 시주를 권유한 불교의 혹세무민을 비판하기고 하고, 남경상인의 비인간적인 인신매매를 지적하기도 합니다. 혹자는 심청이 자신의 가난하고 비참한 현실을 벗어나고자 그런 선택을 했다고 비난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결국 심청은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며 스스로 인당수행이라는 선택을 합니다. 그 선택을 통해서 심청은 세속적으로 다시 부활하게 되지요.

권정생의 <몽실언니>가 떠오릅니다. <몽실 언니>는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어린 몽실이가 부모를 잃고 동생 난남이를 업어 키우며 겪는 고난과 성장을 그린 작품입니다. 역경의 순간마다 자신의 힘으로 감당하려는 굳은 의지로 선택합니다. 그러나 몽실언니는 심청처럼 세속적인 해피엔딩은 아닙니다. 인생의 끝까지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남습니다.

다시 심청으로 돌아가면, 장애를 가진 아비의 몸으로 어린 딸을 키워 낸 아버지 심봉사의 사랑, 그런 아버지를 위해 제 몸까지 버리려 한 딸의 사랑, 그리고 아버지와 딸이 행복하기를 기원하는 세상 사람들의 희망, 그런 바람들이 모여 심봉사가 눈을 뜨는 기적을 만들어 내었다고 사람들은 말합니다.

그리고 결국 심청의 효심은 심봉사뿐만이 아니라 세상 모든 맹인의 눈을 뜨게 합니다. 심청과 심 봉사가 극적으로 다시 만나 기적처럼 눈을 뜨는 장면은 앞이 안 보이는 맹인처럼 앞날이 어두웠던 조선후기 민중들에게 희망과 해방감을 안겨 주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그 시대 세상이 요구하는 가치였습니다. ‘공양미 삼백석인당수는 그것을 위한 장치였던 것이지요.

 

새로운 인간형, 뺑덕어멈

제가 처음 판소리를 직관한 것이 뺑덕어멈 서울가는 대목이었습니다. 판소리 <심청가>에 나오는 뺑덕어멈은 어떤 사람인가요?

밥 잘 먹고 떡 잘 먹고 고기 잘 먹고 술 잘 먹고/ 양식 주고 술 받아다 저 혼자 실컷 먹고/ 시원한 정자 밑 웃통 벗고 낮잠 자고여자 보면 내외하고 남자 보면 쌩긋 웃고/ 코 큰 총각 유인하야 밤낮 거시기하고.”

절로 웃음이 나오는 대목입니다. 해학적으로 인간의 본능적인 욕망을 보여줍니다. 판소리의 매력을 듬뿍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었습니다.

뺑덕어멈은 심청의 희생으로 얻은 공양미 삼백석으로 호의호식하며 제욕심만 챙기는 인간입니다. 심지어 심봉사와 서울 올라가는 길에 다른 봉사와 눈이 맞아 야반도주하기까지 합니다. 끝까지 자기 자신만을 위하고 약한 사람을 등쳐먹는 이기적이고 비정한 인간입니다.

반면, 심봉사는 뺑덕어멈의 감언이설에 속아 넘어가는 어리숙함과 무능력자로 등장하여 웃음을 줍니다. 만약 뺑덕어멈이 여자가 아니라 남자였다면 우리는 소설과 현실 속에서 수많은 뺑덕어멈을 찾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 번 운영전에서 하인 에 이어서 심청전에서는 뺑덕어멈이 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눈을 떠야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시대의 공양미인당수는 무엇일까요?

 

인당수에 빠질 수는 없습니다.

어머니,

저는 살아서 시를 짓겠습니다.

 

공양미 삼백 석을 구하지 못하고

당신이 평생을 어둡더라도

결코 인당수에 빠지지는 않겠습니다.

어머니,

저는 여기 남아 책을 보겠습니다.

 

나비여,

나비여,

애벌레가 나비로 나르기 위하여

누에고치를 버리는 것이

죄입니까?

하나의 알이 새가 되기 위하여

껍질을 부시는 것이

죄일까요?

 

그 대신 점자책을 사드리겠습니다.

어머니, 점자 읽는 법도 가르쳐 드리지요.

 

우리의 삶은 모두 이와 같습니다.

우리들 각자가 채우지 않으면 안 되는

외국어 같은 것

어디에도 인당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눈을 떠야 합니다.

- 김승희, ‘배꼽을 위한 연가 5’-

 

이 작품은 심청전에 등장하는 전통적인 부녀관계를 모녀 관계로 뒤집었습니다. 인당수 대신 을 선택하겠다고 당차게 말합니다. 심지어 어머니 돌봄을 거부하고, 어머니도 점자를 배우라며 당돌하게 말합니다. 못된 딸입니다. 이기적인 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스스로 눈을 떠야한다고 말합니다.

어버이날, 홀로 계신 친정어머니를 뵈오며 말 그대로 못된 딸, 이기적인 딸인 제 모습을 봅니다. 30년 후 저를 위해 열심히 점자 읽는 법을 배워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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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2023-05-10 19:47:05
그림책 읽기에 이어 고전읽기도 흥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책을 재미있게 소개해 주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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