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5월 7일(음력 3월 18일) 비가 내리는 오전 11시, 인계 지산마을에 위치한 지산사에서 경주최씨 후손들이 모여 최치원·최익현 선생 시제사를 열었다. 현재 지산마을 한쪽에는 경주최씨 집성촌이 있다.
최치원과 최익현의 위패와 영정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지산사(芝山祠)는 통일신라 때 학자이자 문장가, 관료였던 경주최씨 시조인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857~?) 선생과 대한제국 말 의병장이자 학자인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1833~1906) 선생의 학덕과 충절을 추모하기 위해 순창 유림과 후손들의 성금으로 창건했다.
지산사 1925년 창건, 1981년에 이전돼
지산마을에 거주하는 종손 최영화 씨의 증언에 따르면 지산사는 1925년 7월 27일 건지산(乾芝山) 아래 인계 지산리 응달뜸에 창건했다가, 응달이라 눈이 많아 춥다는 이유로 현재의 터(옛 지산서당 자리)로 이건한 것으로 판단된다. 한편, 순창군에서 대목수로 활동했던 한옥 전문가인 최철원 씨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1981년에 지산사를 이전했다고 한다.
당시 경주최씨 문중 사람들이 동원돼 주춧돌을 포함해 건물 전체를 분해하고 있는 그대로 배치했고, 지산사 안쪽의 목련과 배롱나무, 바깥의 은행나무 한 그루도 함께 옮겼다고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당시에 지산사와 함께 옮겨진 강당과 고직사는 이후에 철폐돼 지산사 주차장으로 변했다.
어진화가 채용신이 그린 최치원·최익현 초상
후손들은 지산사에서 매년 음력 3월 20일을 기준으로 앞선 일요일에 시제사를 지내고 있다. 시제사에는 최치원·최익현 선생의 영정(초상)을 각각 모신다. 현재 지산사는 종손 최영화 씨가 관리하고 있으며, 최치원·최익현 영정은 문중의 최영건 씨가 보관하고 있다.
최영건 씨의 증언에 따르면 두 사람의 초상은 고종황제의 어진을 그린 화가로 널리 알려진 석강 채용신 어진화가가 그렸다. 채용신 화가는 정읍 무성서원에 봉안된 영정을 모본으로 1924년 4월에 최치원 선생 초상을 그린 것으로 추정되고, 최익현 선생 초상은 1924년 5월에 묘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경남 합천 해인사에서 여생을 보내다 900년대 초반에 생을 마감했을 최치원 선생의 후손들은 1100여년이 지난 현재까지 시제사를 올리고, 1905년 을사늑약 이후 74세의 고령으로 의병을 일으켜 순창에서 의병 항쟁을 주도한 최익현 선생이 남긴 충절을 기리고 있다.
군민들 관심 필요한 최치원·최익현 초상
시제사에 참석한 한 군민은 “지산사 관리를 잘 해야겠지만, 최치원·최익현 선생의 영정을 현재 가정집에서 보관하고 있기 때문에 도난 우려가 있는 게 사실”이라며 “순창장류박물관이나 국립전주박물관 등 수장고에 보관하는 것이 시급해 보인다”고 주장했다. 이어 “앞으로 두 분의 영정을 순창군향토문화유산이나 전라북도지정문화재로 등록시키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국립진주박물관에 소장된 최치원 초상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513호에 지정돼 있으며, 국립제주박물관에 소장된 최익현 초상은 보물 제1510호로 지정돼 있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