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 남부 니스의 풍광을 이야기하던 중이었다. 여행 중 화가 라울 뒤피의 흔적이 나를 황홀하게 했다는 말을 듣던 아들이 뒤피를 몰랐던지 곧바로 핸드폰을 꺼내어 검색을 했다.
“한국에서 전시회가 곧 열리는데요?”
“라울 뒤피를 만나기 위해 지난 주말엔 서울을 다녀왔습니다. 덕수궁엔 아직 꽃도 잎사귀도 피지 않았지만 뒤피의 그림들은 제겐 황홀한 감명을 주었습니다. 이 화가에 대한 나의 동경은 단순하지 않습니다. 음악적인 율동감과 신비스러운 색채가 그를 좋아하게 된 이유 중 하나일 것입니다.
그의 작품 중에서 ‘모차르트를 예찬하며’는 정작 만나지 못했으나 많은 음악 소리를 듣고 왔습니다. ‘드뷔시 예찬’ 그림 앞에 서 있을 때 내 귓가에 ‘목신의 오후 전주곡’이 흘렀습니다. ‘이예르 섬의 공원’ 앞에서는 뜨거운 차 한 잔 마신 시간만큼 서 있었지요. 그의 그림은 보는 것이기도 하지만 듣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 전시장을 저는 두 번 돌았습니다.”
1985년 3월 말, 서울을 다녀온 나는 웬만한 이웃에게 라울 뒤피에 대한 이야기로 편지를 썼다. 벅찬 후유증 때문이었다. 첫 수필집에 실린 제목 ‘라울 뒤피’도 전시회의 감흥을 쓴 것이었다. 프랑스 여행 중에 만난 유명한 미술관 소장 작품들이야 말해 무엇 하랴. 사진으로만 보았던 명작들을 실제 대하는 기분은 차라리 충격(?)에 흔들려 정신이 없었다지만, 니스의 해변에서 바라본 풍광은 거의 뒤피에 관련되어 있었다.
그의 그림에서 얻는 위로는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기쁨을 그리는 작가라는 것에 의미가 있을지 모른다. 내 타고난 우울한 감성을 극복시켜주었던 ‘선율과 기쁨의 작가’ 라울 뒤피. 니스의 지중해의 푸른빛 바다, 음악과 뗄 수 없는 그의 작품들이 내 감성과 일직선 상에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그때 사 가지고 온 포스터 두 장의 작품 제목은 ‘오케스트라’와 ‘니스의 불꽃놀이’였다. 곧바로 만들었던 패널은 이제 없어졌지만 고향을 떠나오기 전까지 옥천동 집 큰방 작은방 벽에 걸려 있었다.
그 뒤피가 다시 온다. 38년 전에 보았던 작품도 몇 나들이 하는 모양이다. 여행 중에 본 작품까지 포함하면 나와 다시 재회(再會)하는 작품은 몇이나 될지 궁금하다. 유월 어느 날로 서울 행 기차표가 예매되었다. 가족 나들이로 뒤피 앞에 설 수 있는 날이 머지않았다. 보는 것이기도 하지만 듣는 기분은 여전할 것이다. 아마 가슴 뭉클하겠지. 이제 마지막이라는 감회가 더 유난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