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계사계] “시제” 문화 그리고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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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계사계] “시제” 문화 그리고 변화
  • 조은영
  • 승인 2023.05.31 07:5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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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영(동계 회룡)

 

해마다 음력 33일 삼짇날에는, 평소에 잊고 살았던 시댁쪽 일가친척들이 모여서 시제를 지냅니다. 예전에는 제비가 돌아와 처마 밑에 집을 짓는 시기라고 하였지요. 하지만 언젠가부터 제비 보는 일도 귀해졌습니다.

결혼하여 새댁 시절부터 바깥제사인 시제에 참석하면서 일가친척 분들을 알 수 있었습니다. 큰집 당숙모님을 비롯하여, 집안 당숙부 당숙모님 그리고 형님들대를 올라가면 모두가 형제인 집안 분들입니다.

처음 그분들을 뵈었을 때는, 어렵고 조심스럽기만 했는데그때의 당숙모님 숙모님 형님들이 지금의 저보다 젊었네요. 가는 세월에 변한 것이 그뿐만이 아닙니다. 시부모님께서 시제를 주관하셨을 때에는 젊은 아들 며느리 손주들까지 참석하여 문중의 행사가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음식도 넉넉히 하여야 했고, 또한 참석하신 많은 분들이 산에서 점심까지 해결해야 해서 제사 음식 외에 식사 준비에도 신경을 써야 했습니다. 집안 여자분들께서 수고가 많으셨지요. 시제 날이 되기 훨씬 전부터 틈틈이 음식을 준비하셨으니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 그 삶이 무척이나 고되었을 겁니다. 시제에는 시제답이 있어 문중에서 비용이 나오기는 하였지만 그리 넉넉하지 않았습니다. 조상님을 모시는 자손의 도리가, 제사를 힘들다 여기지 않고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남편 세대 주관부터 3대조 이상 시제

가랑비에 옷 젖어들 듯 시간은 흘렀습니다. 지금은 돌아가신 그 시절 어르신과 연로하신 분들을 이어서, 오래전부터 남편 세대에서 제사를 주관하게 되었습니다. 코로나를 거치면서 먼 곳에 사시는 일가친척들의 발길이 자연스럽게 끊어지고, 직장 다니는 젊은 자식들도 바쁘다는 이유로 참석을 하지 못합니다. 시대와 문화의 차이가 조상님에 대한 자손의 도리까지 바꾸어 놓았습니다.

시부모님께서 주관하시던 시절에는 5대조부터 시제로 모셨지요. 부모님 세대가 연로하시고 우리 세대로 넘어오면서 3대조 이상을 선산에서 시제로 모시고 있습니다. 10년이 지나고 20년 후에는 어떻게 될까요?. 우리의 생각과 예측을 전혀 반응하지 않은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옛 분들은 조상님 제사를 목숨처럼 생각하셨기에, 대를 이을 아들을 간절히 소원하셨습니다. 그리고 선산을 남기고 전답을 만들어 후손이 제사를 지내는데 보탬이 되기를 바라며 평생을 노력하셨지요.

 

2021년 출생아 87, 사망자 350

2021년 순창군내 출생아 수는 87, 사망자 수는 350명이었다고 합니다. 출생아 수보다 사망자 수자 훨씬 많다 보니 인구자연감소는 매년 증가될 것입니다. 이유를 떠나서 자녀들이 마흔을 넘기도록 결혼을 하지 않은 가정도 많고, 결혼을 하였다 하더라도 한 자녀나 낳지 않는 추세도 증가하고 있으니, 옛 조상님께서 후세에 바라던 기원이 현대를 살아가는 후손들에겐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올봄 시제는 드높은 파란 하늘에 흰 구름 둥실 떠다니는 따뜻한 봄날씨였습니다. 유독 고사리가 많은 비실제 산소에서 고사리를 뜯는 일은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조기에 고사리를 넣어 끓인 조기 매운탕은 입맛 돋우는 일품 요리이지요. 여럿이 손을 움직여서 한집에 몰아주니 고사리가 수북합니다.

드디어 조상님께 제를 올립니다. 남자분들이 음식을 올리고, 절을 합니다. 잠시 후 뒤돌아 앉으며, 올린 음식을 조상님께서 드시도록 기다리고 있습니다. 누군가 음복하세요하며 단에 놓인 밤이며 대추 등을 건넵니다. 참 다정한 말입니다. 조상님이 드신 음식을 자손들이 먹으며 복을 받는 시간이랍니다. 음복의 의미가 마음으로 전달되기까지 강산이 몇 번이나 바뀌었을까요. 사실은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

묘지 아래에는 복숭아 과수원이 있습니다. 연분홍 복숭아꽃(복사꽃)이 살랑살랑 고운 자태를 뽐냅니다. 꽃의 마력은 봄처녀 마음만 사로잡는 게 아닌가 봅니다~. “이집 과수원 복숭아가 맛이 아주 좋아요.” 작은집 동서가 작년에 먹어 보았다며 꼭 먹어 보라고 말합니다. 아직 열매도 열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군침이 도네요.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이 같은 성씨입니다. 몇 년 전부터 외지에서 들어온 귀농귀촌인이 있기는 하지만, 오랜 세월 일가친척들이 모여 살았으니 과수원집 주인장도 일가가 되는 것입니다. 시제를 모셔야 하는 장소가 두 곳이어서, 짐을 챙겨서 자리를 옮깁니다.

두 번째 선산에는 윗대 조상님과 시아버님이 계십니다. 벌초하시는 분들은 명절을 포함하여 일년에 세 번 정도 방문하시겠지만 대부분 자손들은 그마저도 못하니 죄송할 뿐입니다. 아들이 서너 살 무렵이었습니다. 가만히 있어도 견디기 힘든 더운 날, 시아버님께서는 부채를 들고 손주 옆에서 떠나질 않으셨죠. 어린아이가 가는 데로 따라다니며 손부채질을 하셨으니, 당신께서는 얼마나 힘드셨을까요.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는데벌써 30년이 지났습니다. 어린 손주가 자라서 결혼을 하고, 아버지가 되어버린 세월이었습니다.

누구나 언젠가는 이생을 떠나지만, 이별은 슬프고도 아픕니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라고 합니다. 그만큼 삶에 대한 미련과 애착이 크다는 것이겠지요. 어린 시절에 느꼈던 묘지는 도깨비불이 돌아다니는 섬뜩한 다른 세계였습니다. 그러던 것이, 만만치 않았던 어른의 시간 속에서 삶과 죽음이 하나라고 느끼게 되었지요. 피고지는 꽃처럼~.

 

내년 시제, 아들 내외·손주 참석 희망

산소 주변에는 엉겅퀴가 밭을 이룰 만큼 여기저기 나와 있네요. 청정지역에서 자란다는 보라색 엉겅퀴는 간기능, 항산화, 심혈관 등에 효능이 있다고 합니다. 아직은 꽃이 피지 않아서 먹을 수 있을 거 같아 손으로 뜯어 보았는데, 가시가 손끝을 찌르네요. 녹즙으로 마셔야 할 거 같습니다. 예전에는 흔하던 엉겅퀴가 요즘은 환경오염 등으로 보기가 드물어 졌다고 합니다. 다음에 올 때는 나물이나 엉겅퀴를 채취할 수 있는 도구와 장갑을 챙겨야겠습니다. 건강을 지키라고 조상님께서 주신 선물 같습니다.

매년 시제에 참석하지만, 다가오는 마음은 해마다 다릅니다. 내년 시제에는 아들 내외와 손주들까지 참석할 수 있기를 희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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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성 2023-06-08 06:30:19
조상님을 모시는 정성과 농촌 인구감소의 안타까운 현실이 짠한 조화입니다.
인근 부안군은 3개면이 65세 인구가 50%를 넘어섰다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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