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은 국가유공자의 희생을 기억하고 감사 마음을 전하는 ‘호국보훈의 달’이다. 호국보훈의 달 중 가장 먼저 떠오르는 날이 바로 ‘현충일’이다. 그런데 현충일은 왜 6월 6일일까? 그 이유와 그 속에 담긴 의미, 그리고 순창군 소재 충혼탑에 대해 알아보자.
현충일 유래
매년 6월 6일 현충일은 공휴일로 지정되어 있으며, 국립서울현충원을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현충일 추념식이 거행된다. 호국영령의 명복을 빌고 순국선열과 전몰장병의 숭고한 호국정신과 위훈을 추모하는 행사를 하며 조기 게양을 한다.
모든 국가는 국가를 지키기 위해 치른 전란에서 희생된 자를 추모하는 행사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48년 8월 15일 정부 수립 후 2년도 채 못 되어 6.25전쟁을 맞았다. 전쟁 중 40만 명 이상의 국군이 사망했으며 100만 명에 달하는 일반 시민이 사망하거나 피해를 입었다.
1953년 휴전이 성립된 뒤 3년이 지나 어느 정도 나라가 안정을 찾아가자 정부는 1956년 4월 대통령령 제1145호로 <관공서 공휴일에 관한 건>을 개정하여 매년 6월 6일을 ‘현충기념일’로 지정하여 공휴일로 하고 기념행사를 가지도록 했다. 현충기념일은 통상적으로 현충일로 불리다가 1975년 12월 <관공서 공휴일에 관한 규정>이 개정되어 ‘현충일’로 공식적으로 개칭되었다. 1982년 5월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에 의해 법정기념일이 되었다.
행사는 국가보훈처가 주관이 되어 행한다. 추모 대상 범위는 6.25전쟁에서 전사한 국군만 대상으로 하는 것은 아니고,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모든 선열의 넋을 기리고 있다.
6월 6일로 정한 이유
6월 6일이 현충일로 지정된 것은 망종(亡種)과 관련이 있다. 예로부터 농경사회에서 망종은 벼와 같이 수염이 있는 곡식의 종자를 뿌리기에 적당한 때로 알려져 왔다. 보리를 수확하고 모내기를 시작하는 날이기도 하다. 국가를 지킨 영웅들에 대한 예를 갖추는 일은 예부터 망종에 진행되어왔다. 옛 기록을 보면, 고려 현종 때는 조정에서 장병들의 뼈를 그들 집으로 가져가서 제사 지내도록 했고, 조선시대 때는 6월 6일에 병사들의 유해를 매장했다고 한다.
현충일이 6월인 또 하나의 이유는 6월 25일에 발발한 6·25전쟁에서 가장 많은 장병들이 희생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현충일이 지정되었던 1956년의 ‘망종’이 때마침 6월 6일이기도 했다. 정부에서는 이를 고려해 매년 6월 6일을 현충기념일로 지정하게 되었다.
순창군 충혼탑
군내에는 순창읍 제일고등학교와 복흥면, 쌍치면에 충혼탑이 있으며, 구림면에 6·25 양민 희생자 위령탑이 있다. 매년 수백 명이 참석해 추모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제일고등학교 충혼불멸비는 순창군 출신으로 나라를 위해 헌신한 영령들을 추모하고자 1959년 1월 16일 건립했다. 그런데 이때 건립된 양식이 일본식 탑이라는 사실이 확인되어, 2021년 6월 6일 현충일에 맞추어 우리 고유 전통양식으로 새롭게 재건립했다.
복흥면 충혼탑과 쌍치면 충혼탑은 6·25전쟁 중 전사한 경찰들을 위한 충혼탑이며, 구림면 안정리 회문산 자연휴양림 내에 있는 ‘6·25 양민 희생자 위령탑’은 6·25전쟁 기간에 좌우익 대립에 의해 희생된 민간인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