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사이의 갈등과 배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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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사이의 갈등과 배반
  • 림양호 편집인
  • 승인 2012.03.01 14:0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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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들은 잘못을 비판하는 데는 익숙하지만 누굴 변호하는 건 몹시 꺼린다. 그 대상이 공직자라면 더욱 그렇고 거의 금기에 가깝지만 용기를 내어 눈총을 받더라도 한번 일탈해 보려고 한다. 우선 최근 군 인사 파문, 이제야 합의를 보았다는 군수 비서실장 인선, 차기 군수선거에 대한 전ㆍ현직 군수와 그 측근들의 간에 오가는 이야기와 상황들이 마치 ‘진실게임’을 보는 듯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또 그 상황들과 관련해 진실을 속 시원하게 파헤쳐 보기 쉽지 않고 개인의 명예와 관련되어 있어 개개인의 주민들이 언급하기 어렵다는 생각 때문이다. 또한 기자들의 보도에도 진위가 들러나지 않고 이를 밝히려고 노력해야 할 조직이 눈치를 보거나 적당히 대들다가 조용히 묵인하는 관행을 되풀이하는 듯 보이고, 더구나 군정이 잘못되면 지역 전체와 군민들이 피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가볍게 지날 칠 수 없기 때문이다.

해서는 안 될 일이 있다. 구직은 인사 관여나 이권 개입, 더구나 차기 선거에 끼어들려고 해서도 아니 된다. 선출직 정치인은 군민들이 뽑아야 할 일이며 요구에 순응한 지 않는다고 엊그제의 지지를 손바닥 뒤집던 거둬들여서도 아니 된다. 되지도 않을 일을 하면 망하게 되어 있다. 친구간의 문제가 아니다. 도움 준 자와 도움 받는 자의 거래가 아니다. 군정이 혼란에 싸이게 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군민들의 몫이 된다. 현직은 재출마나 재선을 의식하지 않을 각오로 그런 국면을 막아야 한다. 몸을 사리거나 과거의 인연에 연연해서는 아니 된다. 전해 오는 한심하다 못해 우려 깊은 말들에 가슴이 답답하다.

지역의 이런 현상을 보며 ‘우리 사회는 배반의 시대를 살고 있다’는 글귀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그 글에서 “배반의 시대의 첫 번째 특징은 서민들에게서 희망을 찾을 수 없다”고 했다. 민주화 이전에는 억압을 이겨내려는 투쟁이 있었고 그 투쟁은 서민 대중의 희망의 근거였으나 물리적인 억압이 사라진 시대에 서민대중이 가질 수 있는 희망은 소멸되었거나 사라져 가고 있다는 것이다.

배반의 시대의 또 하나의 특징은 ‘배반은 능력있는 사람의 특권’으로 규정했다. 배반은 이시대의 능력의 증거가 되었고 이 사회를 영리하게 살 능력이 없는 사람은 애당초 배반의 가능성도 없다고 했다. 왜냐면 권력이나 조직이 없는 서민 대중은 배반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훼절과 변절을 더할 나위 없는 수치로 여기며 사회적 비난이 몰아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요즘 시대는 대의와 명분보다 현실적인 안위와 영달을 찾아 배반을 밥 먹듯 하는 수많은 변절자들을 생산해 내고 있다. 일반 대중들은 그들도 언젠가는 후회할 날이 오리라 믿어 왔으나 배반을 거듭하면서도 승승장구하는 능력있는 사람들이 속출하면서 그 기대와 정의는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그들이 후회하는 날은 끝내 오지 않았고, 올곧은 선비를 흠모하던 사람들은 점차 배반을 통한 출세도 능력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결국 이 시대의 (배반) 능력은 곧 출세가 되고, 출세는 모든 흠결의 면죄부가 되었다. 이제 우리사회에서의 배반에 대한 응징은 영화(가상세계) 속의 우두머리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조폭세계에서나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어찌 보면 수년전 박찬욱 감독의 영화 ‘친구’에서 느낀 감흥은 의리라는 이름으로 배반이 금지된 유일한 조직인 조폭을 보며 시대의 잘못된 변화와 인식을 위로받는 행위인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가상세계이며 우리 지역에서는 ‘조폭’은 없으나 선후배 조직의 의리마저도 작은 이익에 휩쓸려 물 건너 간지 오래다.

이 시대의 배반의 구조는 보기보다 단순하다. 자신의 잘못이나 현행법에 의한 단죄도 스스로 정치행위로 가능한 일로 치부하며 범죄의식이 없다. 현실을 부정하며 당당한 모습을 드러내면서 그것이 ‘자신의 결단에 의한 부정’이라며 훗날 역사가 긍정적으로 평가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그러한 모습을 매일 접해왔고 이를 비판할 힘마저 잃어버렸다. 우리들을 배반한 그들에게 표를 구했던 지난 과거를 기억하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일은 무의미하다. 강한 자는 대부분 자신이 약한 자가 될 처지를 상상하지 않으나 약한 자들은 강한 자가 될 때를 상상하며 그들의 배반에 너그럽다. 지역 주민들이 배제된 이 지루한 싸움판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그 열쇠는 배반을 응징할 줄 아는 늠름한 주민에게 있다. 그들에게 “정치는 기술이나 가식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영혼으로 진심으로 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줘야 한다. 선거 논공행상으로 군정을 어지럽히지 말라. 구직은 현직의 권한에 손대지 말라. 현직은 구직의 간섭을 묵과하지 말라. 모두가 불행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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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뚜기 2012-03-15 10:35:39
전해 오는 한심하다 못해 우려 깊은 말들에 가슴이 답답하다===> 본문중에서

무슨 듯 인지 궁금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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