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나의 5월의 기억
황보성(팔덕초등학교 6년)
5월, 보통 사람들은 5월이 가정의 날 행복 넘치는 5월이라고 하지만 나에겐 그때 5월은 가슴 아파오는 기억이 있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나에게도 좋은 추억이 남아 있을 수 있었다.
그 5월엔 유난히 아빠가 우리에게 잘 해주셨다. 늘 일에 쫓겨 다니시는 아빠가 회사일이 많이 편해진 것 같았다.
아빠가 그렇게 안 사주시던 핸드폰, 닌텐도 위, 먹고 싶었던 피자와 햄버거를 많이 사주셨다.
그때까지만 해도 행복했다.
그리고 그날, 누나가 터미네이터 4를 보고 싶다고 했다. 난 당연히 안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아빠가 “그래, 한번 가볼까?”라는 말씀에 깜짝 놀랐다. 갑자기 잘 해주시는 아빠가 이상했지만 그래도 즐거웠다.
영화를 다보고 아빠와 카페에 들어갔다.
아이스크림 큰 것도 먹고, 아빠와 사진도 찍고 재미있게 놀고 있는데 아빠가 충격적인 이야기를 꺼내셨다.
“보성아, 보영아! 이말 하기 미안한데 아빠가 중국으로 출장가게 되었단다.”
라고 해서 누나는 깜짝 놀랐고 나는 울컥했다. 정들었던 아빠를 떠나보내야 한다니.
“최소 6개월에서 최대 3년까지 걸릴 거야. 아빠도 많은 생각을 했단다. 걱정 말아라. 비자가 나오면 꼭 데리러 올게.”
나는 결국 울음을 참지 못했다. 그 긴 시간을 버티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아빠가 나를 안아주셨다. 누나는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았다. 아빠와 헤어지는 게 상관이 없나보다. 나는 아빠가 꼭 데리러 올 거라는 말을 믿었다. 꼭 오실 거라고…….
누난 갑자기 아빠와 서울랜드를 가고 싶다고 했다. 아빠는 가자고 했다.
다음 날 서울랜드를 가서 재미있지만은 않았다. 아빠와 떨어지고 아빠는 우리를 할머니 댁에 맡긴다고 하셨다.
그럼 친구들과도 헤어질 테지…….
서울랜드를 다녀온 다음날 할머니 댁으로 내려갔다. 그제야 아빠와의 이별을 실감했다.
아빠를 홀로 외국에 남겨 두어야 한다니 가슴이 아팠다.
나는 아빠를 믿는다. 아빠가 외국에서 건강하게 일하시고 언젠가 우리를 데리러 오실 거라는 것을…….
그때는 나에게도 행복한 5월의 추억이 생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