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무더위도 답사의 즐거움은 이기지 못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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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무더위도 답사의 즐거움은 이기지 못하더라
  • 서애숙 독자
  • 승인 2010.08.05 14: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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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해남 나주 답사를 다녀와서

 

순창문화원 임시총회를 마치고 떠나는 답사길. 장마철인데도 비는 오지 않고 푹푹 찌는 더위는 버스 안 에어컨 바람도 맥을 못 추게 만들었다. 해마다 여는 답사 프로그램이었지만 이번에는 기필코 동행하고 싶어서 주변 일들은 뒤로 밀쳐두고 떠났다.

 

답사 해설을 맡은 장교철 선생은, 숙소에 도착하기엔 너무 이른 시간이라서 강진 영랑생가를 들른다고 하니 더위마저도 시원하게 느껴졌다. 학창시절 배웠던 영랑시인의 ‘모란이 피기까지는’ 아직도 내 가슴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데 가슴이 설레지 않을 수 없었다. 강진군이 낳은 대표적 시인 김영랑. 일제 강점기 때 친일하지 않고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일깨워 주기 위해 혼신을 다했던 시인 김영랑. 소리와 북에도 일가견이 있었다던 영랑의 민족정신을 잊지 말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강진 사람들은 영랑을 더 사랑하고 있는지 모른다. 영랑생가 주변엔 영랑과 모란 이름을 따서 가게를 건 집들이 눈에 띄었다. 이 고장 출신인 영랑에 대한 존경과 자부가 얼마나 큰지 새삼 부러웠다. 누가 우리 순창사람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을 수 있는 대표 시인이라고 불릴 수 있을까?

땅 끝 마을에 도착했다. 끝에서 다시 시작. 이곳 땅 끝에 와서 푸른 남해바다를 바라보며 거듭나는 삶의 시작을 일궈가라는 푯대 앞에 섰을 때, 여름 산 나뭇잎 속을 뚫고 오르던 이마의 땀방울이 값진 의미를 던져주기도 했다. 보길도 가는 뱃길이 터지면서 다소 도시 냄새가 나는 포구에서 밤바다와 파도와 오랜만에 만난 소중한 사람들과 한 잔씩 하다 보니 저녁은 취해가기 시작했다.

다음날 아침 장맛비가 온다는 일기예보와는 달리 마파람만 요란스럽게 나뭇잎을 뒤흔들었다.

우리는 ‘만세토록 허물어지지 않을, 삼재가 미치지 못할’ 대흥사를 걸었다. 3시간이라는 넉넉한 시간을 우리는 절 입구 임권택 감독의 작품 배경이 된 유선여관부터 표충사까지 구석구석을 살피면서 넉넉한 지식과 지혜를 얻을 수 있었다. 특히 이곳은 순창 구암사 백파 스님과의 선(禪)논쟁으로 조선 불교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초의선사를 생각하며 오늘날 다도(茶道)의 명맥을 생각했다. ‘초의’는 단순히 목탁만 두드리고 염불만을 외던 스님은 아니었다. ‘초의’는 다산을 만나고 추사를 만나면서 자신의 삶의 영역을 더 넓혀갈 수 있었고, 불교의 진리만을 고집하지 않고 여타의 사상까지 섭렵할 수 있었다. 우리는 날마다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하고 또 헤어진다. 그런 시간들을 무의미하고 무심하게 지나친 경우가 많다. 이제부터라도 나와 인연이 있는 사람에게 뭘 배우고 그 인연을 통해서 뭘 깨달을 수 있을까, 고민하게 만든 시간이었다.

지금까지의 무겁고 진중했던 답사코스와는 달리 가벼운 맘으로 집에 가라는 듯 나주 완사천을 둘러봤다. 왕건과 오씨 처녀와의 지혜롭고 포석이 깔린 만남. 우리네 삶의 모습의 한 부분을 시원하게 연출한 두 사람의 만남에서 동질감을 느꼈다.

출발하면서 장 선생님의 ‘아는 것만큼 보인다’는 말이 구구절절 맞구나 라고 생각했다. 말 타고 산 쳐다보듯 살펴본 하루였지만 순간순간 내 삶의 의미를 풍성하게 키워준 시간이었다. 차에서 내린 내 발밑은 후끈 달아올랐지만 맘은 조금도 덥지 않았다. 시원하고 환해지는 시간이었다.

글쓴이 서애숙 씨는 한정식 전문식당 한국관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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