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궁지조/ 활소리만 듣고도 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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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궁지조/ 활소리만 듣고도 놀라
  • 정문섭 박사
  • 승인 2012.03.22 10: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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驚 놀랄 경 弓 之 갈 지 鳥 새 조.
정문섭이 풀어 쓴 중국의 고사성어 29

2000년 5월, 마침내 <한·중마늘무역회담>이 열리면서 치열한 무역전쟁에 들어갔다. 지난 해 11월, 우리나라는 무차별적인 중국산 마늘수출에 대해 긴급수입제한조치로 임시 ‘세이프가드(safeguard)’를 발동하였었다. 그간 우리측 실무자들은 국내 선거가 끝나는 4월이면 자연스레 이 조치가 해제될 것이라고 희망하고 예측하면서 중측을 달래 왔었는데, 뜻밖에도 ‘임시에서 정식’으로 발동하니 중국은 급기야 ‘핸드폰과 폴리에틸렌의 전면수입금지’ 로 대응하였다. 마침내 무역전쟁이 촉발된 것이다.

당초 넉넉잡고 일주일이면 회담을 끝낼 수 있을 것으로 예측하였으나, 양측의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며 장기화되고 있었다. 중측은 특유의 ‘談談打打戰法(담담타타전법 : 상대가 강할 때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자고 화해 제스처를 보이고, 약할 때는 가차 없이 때리고 밟아버리는 전법)을 쓰면서 어젯밤에 합의된 내용이 초안이 작성되기도 전에 파기되기를 여러 번…. 17일째 밤, 마침내 인내심이 다한 우리 측이 짐을 싸며, ‘서울에서 다시 열자’는 최후통첩을 하니, 중측이 결국 새벽 두시에 ‘서명’을 하자고 연락이 왔다.

이후…, 우리 측 무역고위급들은 중국산 농산물 문제만 불거져 나오면 깜짝 놀라거나 보고받기를 기피하며 驚弓之鳥(경궁지조)의 모습을 보일 뿐, 적극적 대응에는 눈만 깜빡거리며 주저하고 있었다. 비록 실무급에선 ‘중국농업바로알기모임’을 시작하였지만 고위급들이 별 관심을 보여주지 않으니 활성화되지 못하였다. 지금도 필자는 직무유기한 그들을 욕하고 있다. 체계적 대응전략은 없고 겨우 ‘검역’ 이라는 전술로나 막고 있기 때문이다.

《戰國策·楚策(전국책·초책)》에 나온다. 화살에 놀란 새라는 의미다.

전국(戰國, BC475-BC221)시대 말, 진(秦)나라는 야심이 커 항상 주변 각국을 쳐 합병을 하는데 골몰하니 다른 나라들의 걱정이 더욱 늘어만 갔다. 마침내 당시 세력이 강한 조(趙)나라 왕이 소진(蘇秦)의 제의를 받아들여 각국들과 연합을 서둘러 진나라에 대항하게 되었다.

그러나 사실상 당시 진나라의 세력이 대단했기 때문에 조왕은 만약 어느 한 나라 사령관의 능력이 부족하면 다른 나라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고 걱정하였다. 그래서 신하 위가(魏加)를 초(楚)나라에 보내 사령관이 누구인지를 알아보게 하였다.

“임무군이 공격과 수비에 있어 일가견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각국이 연합하는 것과 관련하여 적합한 인선은 아니라고 봅니다. 한 예를 들어 저의 견해를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위(魏)나라에 경리(更羸)라는 무장이 있었는데 활을 기막히게 잘 쏘았습니다.

“제가 저 새를 활을 쏘지 않고도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물론 과인이 자네가 활을 잘 쏜다고 들었지만, 언제 그런 지경에까지 이르렀단 말이요?”

“잠깐만 기다리십시오.”

경리가 즉시 활을 들고 공중에 날아가고 있는 기러기를 향해 화살이 없는 채로 활시위를 힘껏 당겼다가 놨습니다. ‘슈웅’ 하는 소리만 들렸는데도 그 기러기가 마치 화살을 맞은 듯 땅으로 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왕이 눈이 휘둥그레져 말했습니다.

“너의 활 쏘는 기술이 정말 입신의 경지에 도달했구나. 과인을 정말 감탄하게 하는구나!”

“폐하, 제 기술이 뛰어나서 그런 게 아닙니다. 기실은 이 기러기 몸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네가 어찌 그것을 아느냐?”

경리가 기러기를 만지며 설명을 하였습니다.

“이 기러기가 공중에서 매우 느리게 날아가고 있었는데 울음소리가 작고 힘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새가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어디선가 다쳐 겨우 날아가고 있는 것으로 판단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이 새가 경황이 없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처지였으므로 활 시위소리만 듣고도 깜짝 놀라 떨어져 버린 것입니다.”

위가가 이야기를 마치고 춘신군에게 다시 말하였다.

“임무군은 이전에 진나라에게 참패하여 포로로 잡혀 있었던 자입니다. 그래서 진나라 얘기만 나오면 겁을 먹고 떱니다. 기러기가 활 소리만 듣고도 떨어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자를 사령관으로 두어 진나라를 막겠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춘신군이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사령관을 교체하도록 왕에게 건의하였다.

이 성어는 훗날 “어떤 위험으로 혼이 나거나 다친 사람은 늘 그것을 마음에 두어 조금만 관련이 있는 일을 보기만 해도 노심초사한다”는 것을 비유하는데 쓰였다.

글 : 정문섭 박사
     적성 고원 출신
     육군사관학교 31기
     중국농업대 박사
     전) 농식품부 고위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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