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여행(5)/ 판소리 대가 김세종 명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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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여행(5)/ 판소리 대가 김세종 명창
  • 양병완 편집위원
  • 승인 2012.06.19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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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병완의 판소리 여행(5)

이름난 명창엔 순창 출신이 많다

아는 이가 몇이나 될지 모르겠지만 동편제 판소리의 대가 ‘김세종’ 명창은 순창출신이다. 그는 동계면 가작리 쑥대미에서 태어났다. 김세종 명창뿐만 아니라 장재백(장자백), 박유전, 장판개 명창등도 순창 출신이다.

군청 문화관광과에 들러 순창관광 안내 지도를 구해보면 그들의 생가 터를 찾아다닐 수 있도록 표시되어있다. 사실 장재백 명창의 생가 터는 이화중선의 유적지라고도 할 수 있다. 판소리의 역사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이들의 이름이 한 동네 지도 안에 나란히 놓여 있다는 사실 자체가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놀랄 일이다. 이 두 사람이야말로 조선시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걸쳐 판소리사의 변화를 주도하며 현재 판소리의 바탕을 마련한 주역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뿐, 가치를 따지기 어려운 역사적 의미를 지닌 그들의 흔적들은 현재 거의 남아있지 않고 관리도 잘 되어있지 않다. 특히 김세종 명창의 생가 터는 이곳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동계면 장터를 지나 신촌교 다리를 건너면 바로 가작 마을이 나오고, 그 동네 입구 산 밑에 명창의 생가를 알리는 안내판이 서 있다. 그뿐이다. 산 밑 길가에는 도저히 집터가 나오지 않을 공간에 생가 터를 알리는 표지판이 있어 약간 황당하기까지 하다. 100여 년 전에는 지금의 길바닥이 집터였을 것이다.

그러나 김세종의 음악사적 위치를 볼 때 그는 이렇게 군색하거나 망각될 명창이 아니다.

김세종은 송우룡, 박만순, 정춘풍 등과 함께 후기 8명창 시대를 수놓은 명창이다. 젊은 시절 김세종이 송흥록에게 소리를 배우러 갔을 때, “너희 집안의 소리가 우리 송씨 문중의 소리보다 못할 것이 없는데 왜 나에게 소리를 배우려고 하느냐?” 하며 그 청을 거절했다고 한다. 그는 빼어난 광대 집안의 소리를 물려받았으며 신재효 문하에서 지침을 받은 뛰어난 소리꾼이었다.

사실적인 소리로 소리판 장악하다

김세종 판소리의 핵심은 이렇다. 판소리는 무엇보다도 문학적 표현과 음악적 표현이 일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춘향이 한양으로 떠나는 몽룡에게 “금강산 상상봉이 평지가 되거든 오실라요?”하고 말할 때를 예로 들면 ‘높은 금강산 상상봉’은 최고 높은 음인 세세상성으로 불러야 하고 ‘평지’ 같은 단어는 최저음인 하탁성으로 불러야 실감이 난다하였고 현재도 춘향가의 이 대목은 모두들 그렇게 부른다.

김세종의 판소리는 신재효의 지침을 받은 만큼 문학적인 표현도 세련되었고 음악적 이론도 매우 잘 갖추어져 있었다. 한마디로 리얼리즘을 추구한 소리였다. 생동감 넘치고 실감나는 판소리, 이것이 바로 청중을 울리고 웃기면서 열광케 했다.

사실 지금은 이러한 사실주의 이론이 자연스럽고 당연시 되어있지만 조선조 사회에서는 음악의 근본 개념을 바꾸어놓은 일이었다. 조선조 음악의 유교적 이념, 굿판의 절차, 집단노동의 굴레를 벗어버리고 명창 개인의 재능과 경험, 수련의 산물로 재탄생함으로써 판소리는 근대음악의 모습을 갖추었다. 아무것도 아닌 실감나는 소리가 바로 우리 음악의 혁명이었던 것이다.

그런 김세종이 순창 출신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지역에 몇이나 될지 의문이다. 그가 남긴 생가 터, 그저 아무것도 아닌 자리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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