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재(40) 마음의 평화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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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재(40) 마음의 평화를 위하여
  • 박재근 고문
  • 승인 2012.07.24 20: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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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재에서

불이동이위희노(不以同異爲喜怒) 생각이나 취향이 같다고 기뻐하지 말며 추구하는바가 다르다고 노하지 말고 불이희노위용사(不以喜怒爲用捨) 사람 또는 사람의 말을 기쁘다고 쓰고 화난다고 버려서는 안 된다.[송 명신 부필]

세상에서 몸과 얼굴이 나와 똑 같은 사람이 없듯이 마음과 생각 또한 나와 같은 사람은 없고 나의 생각 또한 도리에 합당한지 여부는 언제나 불확실하다. 지금의 생각이 당장은 옳다고 믿지만 시간이 지나 생각해보면 어리석은 판단이었음을 우리는 늘상 경험하며 후회를 반복한다.

이해득실은 언제나 인간관계에 불협화음을 만드니 득실에 초연하고 잘 나갈 때 겸손하며 공을 세우고도 자랑하지 않는다면 누가 미워하겠는가? 지혜는 언제나 서로 다른 생각들이 화해하면서 발생한다. 다른 견해로서 나의 부족함을 바로잡는 긍정적 생각이야 말로 인생을 지혜롭게 사는 비결이 아니겠는가?

인간의 역사는 지위를 얻기 위한 권력쟁탈과 명리 다툼의 연속이고 성공에는 영광이 따르지만 실패는 곧 패가망신으로 이어진다. 실패한 사람은 대개의 경우 달콤한 말만 즐겨듣고 바른말을 하는 사람을 멀리함으로서 지혜의 결핍으로 재앙을 자초한다. 직장에서 상사에게 바른말을 못하는 직원이라면 좋은 직원은 아니고 부하직원이 바른말을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지 못하는 상사라면 유능하다고 할 수 없다. 예스맨에게 갇혀 있는 한 사리를 바르게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몸에 좋은 약은 입에 쓰고 귀에 거슬리는 말은 마음에 좋은 약이니 감사하는 마음으로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면 자신의 삶이 건강해질 것이다. 

지혜로움이란 다른 사람의 지혜를 활용하는 것임에도 자신의 지혜를 과신하는 자는 자신과 다른 견해를 못 참아하는 어리석음에 빠지고 정의를 구하는 사람은 시세의 물결에 편승해 명리를 구하는 사람을 혐오하여 인심을 잃어 설 자리를 스스로 좁히고 지위와 명리를 구하는 자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이 돕지 않는다며 서운해 하고 훼방을 놓는다고 분노하며 마음을 괴롭힌다. 대개의 경우 불쾌와 분노는 쾌락을 향한 강한 집착과 욕구의 좌절에서 비롯되니 추구하는 마음이 강할수록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마음은 평정심을 잃어 괴로움의 노예가 된다. 그래서 노자는 집착하지 않으면 잃지 않는다 했다.

사람은 누구나 생활 방식과 습관 사고방식에 의해 자신의 품성이 형성되고 그가 처해있는 위치와 상황에 갇혀있어 추구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에 세상을 보는 시각과 가치관이 저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탐욕적인 사람은 탐욕 실현을 위한 조건을 정의로 인식하며 힘이 있는 사람은 힘을 곧 도덕으로 알고 있다. 그들에 의해 만들어진 룰인 지적 소유권 등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로 무장한 탐욕의 자산가 225명의 자산이 세계 가난한 자들의 25억 명의 연간 수익을 웃돌며 세계 15대 부호들의 총자산은 남아프리카를 제외한 사하라 이남의 모든 아프리카 나라들의 국내 총 생산을 넘고 미국의 빌 게이츠의 자산은 가난한 미국인 1억 600만 명의 총자산과 맞먹는다. 그들이 말하는 자유와 정의의 그늘 속에는 8억5000만 명의 굶주림이 가려져 있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신자유주의라는 탐욕의 자유가 절대적 자유인 생존의 자유를 유린하고 있는 것이다. 정의와 도덕이란 논리의 놀이가 아닌 생명에게 활력을 주는 것이며 배고픈 사람에게는 밥이 곧 정의와 도덕의 기준이다.

세계적인 문호ㆍ지주였던 러시아의 톨스토이는 자신의 땅을 소작인들에게 나누어 주고 굶주려 보지 않은 사람은 세상을 말할 자격이 없다고 했다.

생생지위도(生生之爲道) 생명을 살리는 것이 사람의 길 곧 도덕이다. (역경)

지혜로운 자는 다름에 분노하는 대신 상황을 바꾸기 위한 최선의 역할을 찾는다. 우리의 일상이란 다른 사람과 마음과 생각을 교환 하는 것의 연속이고 우리의 마음은 언제나 같기 보다는 다른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때 마다 마음이 불편해 진다면 우리의 인생은 어둠에 의해 지배당할 것이다. 우리의 마음을 평화롭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탐욕과 쾌락의 욕구를 억제해야한다. 불쾌와 분노는 욕구의 좌절과 상실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해서 당대에서는 최선의 삶을 살고 간 성현은 말한다.

무의 무필 무고 무아(毋意 毋必 毋固 毋我) 사적인 뜻을 버리고 반드시를 고집하지 말며 고정관념을 버리고 자기를 버려라.[논어]

처세하는데 있어 사리사욕을 버리면 다른 사람의 지지를 얻으며 반드시를 고집하지 않으면 무리수를 두지 않아 적을 만들지 않게 되고 한 가지 생각으로 굳어 있지 않으면 지혜가 생기고 나를 버림으로서 세상을 품을 수 있다.

글 : 박재근 전북흑염소협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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