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속 정정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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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속 정정기사
  • 조남훈 기자
  • 승인 2012.09.05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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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무형이고 글은 유형이다. 말과 글은 소통을 뜻하며 글은 행위가 더해진다. 말은 뒤집을 수 있어도 글은 뒤집을 수 없다. 신문을 두고 보자면 썼던 글도 수십 번 바뀌기 예사인데 지면이 나오는 순간 그걸로 끝이다. 신문에 찍힌 글을 뒤집으려면 다음 호에 써야 한다. 정정기사로 말이다.

기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데드라인(마감기한)도, 데스크의 압박과 취재원의 협박도, 오ㆍ탈자도 아니다. 정정기사다. 사람은 남이 비판하는 것보다 스스로 무너질 때 자존심에 더 큰 상처를 입는다. 신문이 나간 후 기자가 반응에 민감한 것은 이 때문이다. 인터뷰(Inter-view), 증언이든 자료든 들여다보기가 실패했으니 자책하는 것이 당연하다. 여러 번 겪으면 적응할 만하겠지만 아직 현기증이 난다. 아집이 남았나보다.

그런데 최근 ‘틀린’ 기사를 쓰도록 부추기는 사람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발단은 굉장히 사소한 단어였다. ‘잘 좀 써 달라’, ‘좋게 좋게 써 달라’ 인사성 당부임이 분명하지만 취재대상에 따라 달리 해석하면 큰 문제가 될 수 있음을 느낀다.

최근 군 안팎에서 큰 논란이 됐던 순창농협 상임이사 선거 현장에서다. 농협의 고위 간부직원은 취재를 마치고 돌아서는 기자에게 “좋게 써 달라”는 말을 건넸다. “상임이사 후보가 대의원 총회에서 탈락했는데 기사 분위기가 좋을 리 있냐”고 반문하자 한 쪽에서 “나쁜 것도 좋게 써. 좋은 건 더 좋게 쓰고”라는 말이 들려왔다. “기자가 보고 느낀 대로 쓴다”고 답하고 나왔지만 어쩌면 이런 보신적 관점이 조합원의 눈과 귀를 막을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르러서는 앞이 막막해졌다.

돌이켜보건 데 기자는 이런 얘기를 여러 번 들었다. 심지어는 나중에 어떻게 쓰라며 지도까지 하는 경우도 있었다. 주로 비판기사에 심기 불편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주 발언자이다. 사실여부보다 지면에 낸 관점이 틀렸음을 인정해야 할 때 기자들은 주저앉는다. 심정은 이해하나 틀렸다. 날것이 아닌 가공된 정보는 정정기사의 한 원인이 된다.

이와 반대로 선택을 해야 할 경우도 있다. 얼마 전 순창농협의 무인헬기에 대해 취재를 마친 다음날 기자는 그 헬기가 추락해 며칠 동안 운용을 못한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싣지 않았다. 일 년 내내 힘쓰는 일을 하는 경제사업소 직원들의 땀방울을 미리 지면에 옮기지 못했던 미안함 때문이었다. 쓰고 나서 욕먹고 안 쓰고도 미안해야 하는 심정은 필연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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