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조합(4) 사회적기업에 맞는 새 기성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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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4) 사회적기업에 맞는 새 기성복이다
  • 서성원 위원장
  • 승인 2012.09.24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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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원 전주사회경제네트워크 운영위원장
4년 이상 파업을 벌이고 있는 학습지 교사들이 있다. 재능교육의 교사 노동자들은 2012년 5월 10일로 파업 1600일을 맞았다.

사실 학습지 사업은 협동조합으로 운영하기에 아주 적합한 대상이다. 학습지 사업의 핵심 자산은 교사들과 교재개발 역량. 대규모 공장설비가 없으니 투자재원 조달 부담도 적다. 교사들과 일부 직원들의 뜻을 모으기만 하면, 경쟁력 있는 협동조합 기업을 세울 수 있는 셈이다. 아이들의 부모를 조합원으로 동참시키면 다수의 충성 고객 확보도 가능해 보인다. 파업 4년 동안 구축한 사회적 신뢰는 공격적인 마케팅에 활용할 수 있는 훌륭한 자산이다. 학습지 교사들이 ‘참 재능교육’이란 브랜드를 내걸어, 기존의 재능교육을 능가하는 협동조합 기업을 꾸려가는 꿈을 꿔본다.

마찬가지로 택배 기사나 대리운전 기사 같은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은 협동조합 기업을 세우기에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다. 사람들의 ‘협동’을 이뤄내기만 하면, 고율의 수수료를 한두 명의 대주주에게 뺏기지 않아도 된다. 출판인들은 저자들과의 공동출자로 출판협동조합을 세우고, 미술인들은 갤러리 협동조합 설립에 나선다. 볼로냐나 코펜하겐에서는 그런 협동조합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자본이 많이 들어가는 설비투자 중심의 기업이라면 주식회사 방식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 협동조합은 대규모 자본 조달에서 불리하다.

이런 상상도 해본다. 프랜차이즈 대기업에 밀려 몰락의 길을 걷고 있는 동네 빵집들이 지역 또는 전국 단위로 협동조합 기업을 세운다. 은퇴한 자영업자들의 일자리인 커피전문점이나 ‘김밥천국’ 사업도 사실은 협동조합 하기에 좋은 대상이다. 독자적인 협동조합 브랜드를 구축한 뒤 안전한 로컬푸드로 만든 고품질로 승부하는 것이다. 기업형 슈퍼마켓(SSM)에 반대하던 동네슈퍼들도 전국 소상인협동조합을 결성해 ‘엘지(LG)25’와 경쟁하는 독자적인 프랜차이즈 브랜드를 개발한다. 동네 상권을 보호한다고 대형 마트의 휴업일을 강제하고 있지만, 그것만으로 영세 자영업자들의 생존을 보장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이탈리아에서는 동네 상인들이 코나드(CONAD)라는 전국적인 협동조합을 결성했다. 코나드는 이탈리아 소매업계 2위에 올라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이동통신소비자들이 협동조합 결성을 준비하고 있다. 지금은 수천명 정도의 조합원 가입에 머물러 있지만, 100만 명 이상의 통신소비자 결집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동통신요금과 단말기 가격 인하가 종국적인 사업의 목적이다. 이동통신소비자협동조합을 설립해 직접 서비스 사업에 뛰어들고, 100만 소비자의 힘으로 저렴한 단말기 출시를 압박하겠다는 것이다. 이 협동조합이 제대로 가동된다면, 이동통신 요금의 파격적인 인하와 기능이 단순한 20만 원대 단말기의 출현을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유럽과는 비교가 되지 않지만, 우리 협동조합 기업의 뿌리도 자라나고 있다. 소비자협동조합에 해당하는 한살림과 아이쿱 생활협동조합(생협)이 대표적이다. 두 협동조합의 연매출을 합치면 벌써 5천억원을 넘어선다. 강원 원주와 경기 안성에서는 주민들이 세운 의료생협이 활약하고 있다. 과잉진료의 거품을 덜어내고 조합원 환자들을 위한 참의료를 실천한다.

최대 우유업체인 서울우유도 한국을 대표하는 협동조합 기업이다. 서울우유의 조합원(목장주)들은 주식회사인 매일우유, 남양우유와 거래하는 목장주들보다 우유 납품가격을 더 높게 받아 상대적으로 풍족한 생활을 누린다. 서울우유가 협동조합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사실 사업과 가치의 양면에서 건강하다고 내세울 수 있는 협동조합은 소수에 불과하다. 대규모 협동조합으로 농협과 수협 등이 있지만, 정부의 관리를 받는 반관반민의 단체이거나 직원들의 회사라는 비판을 받는다. 노동자협동조합은 우리나라에 전혀 없고, 미국이나 유럽에서 흔한 주택협동조합이나 발전협동조합도 하나 없다. 사회적 기업 또한 협동조합이 아니라 대부분 주식회사 방식으로 운영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협동조합으로 기업을 할 수 있다는 인식 자체가 없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협동조합이란 실체가 가까이에 없으니 어떻게 조합을 설립해 사업을 꾸려나갈지 알 수가 없었다. 학교에서는 자본주의 기업만이 기업이라는 하나의 등식 말고는 가르치지 않았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협동조합에 관한한 총체적인 까막눈이었다.

제도도 미비했다. 그동안은 농협과 수협, 신협, 생협 등 8개 특별법에 정해진 8개 종류 이외의 협동조합은 설립 자체가 불가능했다. 그나마 요건이 까다로웠다. 다행히 협동조합기본법 제정으로 자유로운 설립을 막는 제도적 족쇄는 풀렸다.

<한겨레신문사>는 1987년 직선제 민주화의 소중한 역사적 산물이다. 6만여 주주들이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참언론을 구현하라고, 쌈짓돈과 돌반지 성금을 냈다. 그렇게 모은 자금으로 윤전기를 구입하고, 신문을 발행했다.

<한겨레>가 지금 다시 태어난다면? 아마도, 협동조합 방식의 지배구조를 채택할 것이다. 1987년 설립 당시에는 협동조합으로 신문사를 세울 수도 없었고, 협동조합 방식으로 가자는 내부의 인식 공유도 없었다. <한겨레>를 상법상의 주식회사로 설립한 것은 다른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몸에 맞지 않는 옷을 걸치고 지냈던 셈이다.

<한겨레>의 기업 목적은 일반적인 주식회사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단순한 이익 극대화가 목적이 될 수 없다. 대부분의 주주들은 올곧은 신문 만들자는 뜻을 보탠 것이지, 이익 배당을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겨레>는 주식회사로 운영되기에, 종종 사업과 가치의 충돌로 인한 실존적 고뇌를 겪게 된다. 비정규직 사원을 채용하고, 광고주인 대기업과 타협하고, 관계사들을 압박하는 일이 있었다. 당장 돈 되는 사업으로 달려가려는 유혹에 빠지기도 한다.

<한겨레>가 협동조합으로 바뀐다면 무엇이 달라질까? 모든 사업과 보도 뿐 아니라 내부 인력관리와 자회사 관계에 적용할 수 있는 <한겨레>만의 사회적 책임 가이드라인을 가정 먼저 작성하지 않을까? 정기주주총회가 아닌 조합원총회에서는 1년 동안 우리 사회를 바르게 바꾸는데 <한겨레>가 언론으로서 어떻게 얼마나 기여했는지를 의미있게 보고하는 모습을 보게 되지 않을까?

조합원들의 경영 참여를 뒷받침하는 지배구조의 변화도 예상된다. 민주적 소통이 강화되면서 독자 충성도가 높아질 것이다. 의사결정은 더뎌질 수 있을 것이다.

사회적협동조합이란 법인격은 기존의 사회적기업에 딱 맞는 새로운 기성복이다. 지금까지 우리의 사회적기업들은 다수가 주식회사 법인격이었다. 사업을 하려면 당연히 주식회사여야 하는 줄 알았다. 가치를 추구하는 사회적기업의 몸에 이익 극대화를 요구하는 주식회사라는 옷을 입고 있었던 것이다. 사업과 가치의 혼란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많은 사회적기업들은 주식회사에서 사회적협동조합라는 옷으로 갈아입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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