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땍(1)/ 서울땍? 누가 봐도 순창땍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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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땍(1)/ 서울땍? 누가 봐도 순창땍이여~
  • 황호숙 황홀한농부
  • 승인 2012.09.24 15: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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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떽네 오지게 사는 이야그 ①

저어그 산 좋고 물 좋아 풍수적으로도 인물들이 많이 나온다는 회문산자락 구림면에 사는 서울땍 인사드립니다. 꽃 같은 24살 처녀시절부터 내려와 순진무구한 시골 총각에게 반해서 연지 찍고 곤지 찍고 25년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나막신 신고 거꾸로 벽타고 오르기보다 힘들다는 홀시아버지 모시며 20년을 살았답니다. 귀머거리 삼년, 벙어리 삼년, 장님 삼년 을 살아내다 보니 산전수전 공중전 겪다보니 별로 무서울 게 없는 농사꾼 아지메이기도 하지요. 전라도, 고것도 순창땅으로 내려온 것을 황홀하고도 행복해하는 아줌마입니다.

시골에선 댁호라는 게 있어서 제 주위에서도 엄니들 이름은 몰라도 모정떡, 가남떡 장성떡 옥과떡 하면 얼릉 알아듣지요. 섬진강가 600년 전통을 자랑하는 동계면 구미 마을에 가면 집집마다 택호들이 거북이모양 위에 이쁘게 쓰여 있습니다. 아기자기하게 쓰여진 ~떡!~떡 들이 하냥 정답습니다. 긴~긴 겨울날 회관에서 식사를 해 드시는 마을회관 중앙에 떡 버티고 선 글이 있지요. 이번주는 건지미떡, 과촌떡, 다음주는 오룡떡, 산안떡 하고 순번이 정해져 있지요. 삐뚤삐뚤한 글씨들로 쓰여진 택호들이 어머님들의 평생 걸어오신 날들만큼이나 연륜과 애환이 있어 보여요. 하하하!! 어느 마을에서 시집왔는지로 따지면 저는 서울땍입니다. 근디 아무도 저를 서울땍이라고 안하고 순창 토박이로 압니다. 나름 농촌에서 뿌리 박기로 치면 겁나게 성공했지요. 얼굴은 햇볕에 그을러 시꺼매졌고 딸,딸,딸,딸 넷 낳아 업고 안고 댕기느라 팔뚝도 엄청 굵어졌거든요. 물론 30~40킬로그램(kg)들이 나락마대랑 알밤 마대랑 옮기는 것도 한 몫했지만요. 항상 화장기하나 없는 얼굴에 짧은 머리와 손바닥 굳은살, 거기다가 타고난 미모와 몸매도 따악 순창땍입니다. 집에 오시는 손님들 기냥 못 보내고 밥멕여서 보내야 하고 하다못해 호박잎 하나라도 싸줘서 돌려보내야 직성이 풀리는 오지랖 넓은 것까지도 시골스럽게 변했습니다.

이렇게 변하기까지 처음 순창에 온 몇 해 동안 모판을 떼면서 펑펑 울었던 적이 있어요. 튼실한 벼로 자라기 위해 원래 키워지던 자리에서 뿌리가 댕강 뜯기워지는 모들이 꼭 제모습 같았거든요. 그렇게 뜯기워져 다시 본답으로 옮겨지기 위해 우악스런 모쟁이의 손길을 몇 번 거쳐야 했고 친구들과 각각 찢겨진 채 새로운 땅과 물속에서 혼자 힘으로 버텨내야 한다는 외로움에 펑펑 울었었지요. 농사꾼들은 땅맛을 알기 위해 몸살을 앓는거라고 하시더라구요. 여름 그 모진 비바람과 벌레들을 이겨내고 당당히 머리 꼿꼿이 세울 때는 잠시 황금빛으로 고개 숙여야 하는 인생의 이치도 배우고요.

한평생 농민으로 살겠다고 겁없이 처녀의 몸으로 내려온 저를 미쳤다며 수군대시는 분들도 겁나게 많았거든요. 뒤돌아보면 굽이굽이 힘든 일들이 많았기에 그 상처를 딛고 일어서면서 실수도 많이 했지요. 얼굴 빨개질 만큼 챙피한 일도 많았고 떠올리기 싫을 만큼 어려운 시절도 많았습니다. 아마도 우는 모습, 찌질한 모습, 나약하게 주저앉던 모습으로 저를 기억하시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그 시절 방귀 뀌면 마을 한가운데서 똥 쌌다고 소문내던 어르신들이 무지하게 미워서 농민들에 대한 신뢰조차 버리고 싶던 시절도 있었지요. 하지만 어려울 때 손 내밀어 일으켜주셨던 수많은 친정엄마와 언니들이 있어 지금은 저도 친정언니가 되어주려 합니다.

이젠 저의 고향이자 터전이 된 순창을 무지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지요. 지금부터 쓰는 이야기는 서울땍이 전라도로 시집와서 오지게 좋았던 이야기, 허벌나게 맛나게 먹은 음식들, 항꾼에 살아가면서 울고 웃었던 이야기들을 써 보고자 합니다.

순창땅에서 느티나무처럼 당당한 당산나무가 되기 위해 쉴새없이 잔뿌리를 만들어냈던 기억들을 공유하렵니다. 황홀하게 피어나는 꽃마냥 단풍이 들어 고향 모정 옆에서 당당하게 버티고 서 있는 느티나무가 되고 싶은 꿈 하나 가슴에 있습니다. 지난번 안골에서 고추를 따면서 울 모정땍 엄니가 한마디 하셨지요. “버리데기가 효자된다.” 짜잔하고 못생겨서 버리려고 했던 것들이 비바람 속에 크면서 효자노릇 한다는 말인데 못생긴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는 말과 통하고 있네요. 제가 버리데기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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