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떽(2)/ 자식은 평생 주고싶은 도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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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떽(2)/ 자식은 평생 주고싶은 도둑
  • 황호숙 황홀한농부
  • 승인 2012.10.10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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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떽네 오지게 사는 이야그 ②

푸진가리 한 소쿠리만 봐도 기냥 옹굴지고 오구당당해지는 가을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황홀하게 빛난다는 노란색의 나락들을 거둬들이는 콤바인이 바빠지면 농사꾼들 몸이 열 개라도 쉴틈이 없네요.

옴서감서 푸지게 묵으라고 무시랑 배추랑 엄청 심었는데 여영 크지를 않고 제 애가심을 태우네요. 앞산의 알밤은 톡 톡 떨어지고, 홍시는 사알짝 익어 가는디 서울떽의 싱숭생숭한 맴은 누가 안 붙잡아 주나 몰라요.

요럴땐 으름 줄기처럼 감나무라도 타고 올라가 하얀 속살 보일듯 말듯 내보이며 톡 터지게 익어감서 햇살도 유혹하고 지나가는 바람의 노래도 들어감서 어줍잖은 시인 흉내라도 내고 자픈디, “호랭이가 물어갈 소리 하고 자빠졌네, 싸게 싸게 가실일 추릴 궁리나 혀라 잉, 여그져그 헐일이 겁나게 많구만 씨잘데기 없이 워따 써먹는게 시인잉겨”

추석 연휴 끝나자 마자 알밤을 줏으러 산을 타고 다녔어요. 중학교 다니는 막둥이 젖먹이 때부터 우리 집에 하냥 빠지지 않고 일해주러 오시는 어메들은 제 친정 어머니이십니다.우리 집에 일꺼리가 어느 정도인지, 어디 밭에 가면 단호박이 숨어 있고 수수는 어디에서 자라는지 훤히 아시니까 쉬지를 못하세요. 털푸데기, 덜렁이, 푸시기라고 별명을 지어 놓으실 정도로 서울떽의 단점과 장점을 파악 하셨거든요.

친정엄마가 또 고생하러 오셨냐는 말에 “앗따, 지난번 티비를 봉게 90넘은 할매가 딸이 일하러 다닌다구 지청구 항게 한마디로 끓내 불드만.‘난 일안하면 못살아야,’ 울덜도 따악 그짝이여”하시며 웃으시네요.

하루종일 밤나무 산을 오르락 내리락 하며 알밤푸대 갖고 다녔더니 젊은 저도 요렇게 삭신이 아픈디 어메들은 어찌도 그렇게 70평생을 시부모님 시집살이에 남편과 아이들 뒷바라지에 혹독한 세월을 견디며 사셨는지 항상 봐도 존경스러워요. 제 나이 70에 어메들처럼 정정하고 당당하게 일하러 다닐 수 있을까? 고개가 흔들어지거든요. 대단하신 어머님들, 살아오신 이야기들 이야기 책으로 내드리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집니다.

근데 오전 내내 추석 때 어느 자식들이 왔었고 손주가 워떤말로 재롱을 떨며 웃겼는지, 흉내내시며 웃으시다가 갑자기 “워메 어쩐다냐. 알밤 삶아 놓으것 싸줘야 쓴디 깜빡혀부렀네,”하시면 또 한쪽에선“으이구 내정신 좀 봐 김치 싸놓고 큰 놈 둘째 놈 따로 딱 맞춰 줘야 되는디 뒤바뀌면 안되는디 어쩔까, 빨랑 전화해봐야 쓰겄네 잉”하시면 추석때 자식들 싸준 보따리 보따리에 대한 이야기로 와글와글 하십니다.

자식은 평생 주고 싶은 도둑이라 했던가요. 배추만 보더라도 겉잎이 속잎을 감싸지, 속잎이 겉잎을 감싸는 것을 봤느냐며 오로지 품어서 하나로 만드는 그 사랑이 좋데요. “자식들이 내려오면 그 자식이 좋아하는 먹거리 하나라도 더 만들어 주고자 하는 마음땜시 울덜이 일도 다니면서 돈 모으는 거지 우리 입에 얼매나 들어가겄어!” “긍께 그 많은 음식들 중에 어메들 입속에 들어간 게 뭐냐구요.” “큰 소리 치덜 말어! 단비어메는 아마도 더할껴.”

그럴까요, 추석때 아이들이 먹고 싶다는 옻닭과 매운 닭발과 김치와 소쿠리 한가득 우려낸 감들이 증명하나요. 수정과 드시며 바빠도 할건 다했네라며 웃던 손님들처럼요.

살아서 효자는 없어도 죽어 효자는 많답니다. 돌아가시고 나면 한번 안부 전화라도 더할걸! 손 한번 더잡고 귀경도 가고 맛난 것도 사드릴껄! 하는 죽어 효자는 필요 없고요. 무조건 내리사랑만 하시는 부모님께 이쁜 재롱도 떨고 따뜻한 말 한마디가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저도 함께 사는 친정엄마에게 맨날 툴툴거림서 이런 말 할 자격은 없지만요! 그나저나 티비에선 맨날 대선주자들이 나오지만 힘들고 어렵게 살아오신 울 어메들 말처럼 없이 사는 사람덜 아프고 씨린 맘 알아주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으면 하고 보름달아래 빌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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