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떽(3)/ 홍시가 열리면 울엄마가 보고자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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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떽(3)/ 홍시가 열리면 울엄마가 보고자파
  • 황호숙 황홀한농부
  • 승인 2012.10.25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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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떽네 오지게 사는 이야그 ③
“눈이 오면 눈 맞을세라 
비가 오면 비 젖을세라 
험한 세상 넘어질세라
사랑땜에 울먹일세라 
그리워진다 
홍시가 열리면 
울 엄마가 그리워 진다”
 
나훈아의 홍시를 부르며 걷는 논두렁 밭두렁길은 행복, 황홀합니다.
 
삽 하나 걸치거나 호미라도 들고 장단을 맞추며 아무도 찾지 않는 바람 부는 언덕에를 한 곡조 구성지게 뽑다가 ‘사~ 사랑을 할려면 요~ 요렇게 한단다’민요 한 자락 불러 제끼며 풀과 꽃들에게 서울떽 왔다고 큰 소리 치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누군가 내속을 찔벅거리는 날이면 흥얼흥얼하다 눈물나오게 복창 터지면 안 보이는 곳에 가서 펑펑 움시롱 욕이란 욕은 다 쏟아냅니다. 그럴 때마다 토닥토닥 어루만지며 감싸주는 감나무가 있어 25년이란 세월이 참 좋았습니다.
 
예로부터 감나무는 수명이 길며 나뭇잎이 무성해서 좋은 그늘을 만들어 주고 새가 집을 짓지 않으며 벌레가 생기지 않고 단풍이 곱게 들며 열매가 먹음직하고 잎에 글씨를 쓸 수 있으니 칠절이라 하였다지요. 옛 글을 찾아보니 감나무에 대한 칭송이 끝이 없는데 일리가 있어 옮겨봅니다.
 
감나무는 잎이 넓어 글씨 공부를 할 수 있으니 문(文), 목재가 단단해서 화살촉을 깎으니 무(武), 겉과 속이 한결같이 붉으니 충(忠), 치아가 없는 노인도 즐겨 먹을 수 있는 과일이니 효(孝), 서리를 이기고 오래도록 매달려 있는 나무이니 절(節)이라 했다. 또한 고욤나무에 접 붙여야만 감나무가 되기에 자신에게 부족한 것을 배워서 성장하라고 배움의 상징으로 불렸다. 목재가 검고(黑), 잎이 푸르며(靑), 꽃이 노랗고(黃), 열매가 붉으며(紅), 곶감이 희다(白)고 하여 오행, 오색(五行, 五色), 오방, 오덕(五方, 五德)을 두루 갖춘 예절지수(禮絶之樹)로 칭했으며, 수많은 나무 중에서도 감나무를 으뜸으로 삼았다.
-[유양잡조]에서, 단성식
 
아침기운을 북돋아 주던 연둣빛 감나무 잎을 보며 물꼬를 보러 다녔고 모쟁이 하고 모심고 모 때우고 하던 기인 노동의 시간들을 노오랗게 밝혀주던 감 꽃잎들이 저를 들뜨게 했었죠. 처음으로 봉긋해지던 젖꼭지처럼 애기감이 열리다가 세찬 바람에 떨어져 버리면 괜시리 우울해졌었고 땡감들이 떨어져 주홍빛 연시가 되면 찾아다니며 모으는 재미가 솔찬했지요.
 
가장 황홀하게 아름다운 것은 요맘때입니다. 감잎이 떨어져버리고 나무마다 앙증맞은 전등을 달듯이 감만 주렁주렁 달고 있는 시방이 절정입니다.
 
고백하건데 솔찬히 아고똥헌 우리 마을에서 월 2만원짜리 머슴을 살고 혼자 고추농사를 지으며 처녀 농사꾼으로 산다는게 쉽지 않았어요. 물론 저만 힘든게 아니라 함께 있던 주인집 부부도 나로 인해 마음고생 꽤 했었겠구나 짐작하지만 한때는 서울로 도망치고 싶었어요. 한겨울 내내 인생을 걸고 고민에 빠졌을 때 이상하게도 바짓가랑이 물고 늘어지던 것은 야트막한 지붕들 위로 주렁주렁 홍시를 매달고 있던 위풍당당한 감나무가 있는 마을 풍경이었어요. 감나무가 집집 울타리마다 겁나게 많았거든요. 눈을 뗄 수 없는 황홀함 그 자체였죠. 나를 순창으로 끌어 땡기는 힘이었어요.
 
머슴 시절 서울에서 찾아 온 여동생의 손을 잡고 울지도 못하고 웃지도 못한 채 감나무 밑에 하염없이 앉아 있었던 기억들이 떠오르네요. 땡감도 아니고 풋감도 아니고 더더욱 홍시도 아니던 시절, 첫 마음이고 뭐고 팽개치고 나가버려, 아님 비바람 이겨내고 보란 듯이 풍성한 열매를 맺는 감나무처럼 새롭게 농촌생활을 시작 혀서 본때를 보여봐! 윤동주님의 내 인생의 가을이 오면 이란 시처럼 좋은 글, 좋은 생각으로 풍요로운 열매들을 기필코 맺어보자던 결심이 딸 넷 낳고 열린 순창에 서울떽네 오지게 사는 이야그도 연재하게 만들었네요. 쓰잘데기 없는 푸념만 늘어 놓은건 아마도 시제감홍시 아래서 연지곤지 찍고 마당 결혼식 올렸던 날이 코앞이라 싱숭생숭해졌나 봅니다. 푼수 글쟁이 된 김에 다음엔 궁금해 하시는 연애이야그 해버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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