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락손산/ 떨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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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락손산/ 떨어졌습니다
  • 정문섭 박사
  • 승인 2012.10.31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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名 이름 명 落 떨어질 락 孫 손자 손 山 뫼 산
정문섭이 풀어 쓴 중국의 고사성어 44

중학교 입학합격자 발표장에서 성적순으로 붙어 있는 명단을 보며, 나의 이름이 좀 더 앞쪽에 없는 것에 잠시 실망하고 있던 중, 옆에서 한 아이가 눈물을 짜며 울고, 주위 사람들이 안타까워하는 모습이 보였다. ‘뭐야? 전체 5등으로 합격하였다는데 왜?’

알고 보니 4등까지 3년간 학비를 면제 받게 되어 있었는데 당시 먹고살기에도 바빠 학비를 대지 못하게 된 그의 부모가 장학생이 되지 못하면 중학교에 갈 생각을 말라고 하여 그 애는 오로지 장학생의 꿈을 바라고 도전한 것이었는데 그리 되어 눈물을 보인 것이다.

당시 4등을 하여 학비를 면제받았던 K는 최근 동창회에서 결국 입학하지 못하고 야인이 되어버린 그의 얘기를 하면서 ‘지금까지 그에게 늘 빚진 기분을 갖고 있었다’고 실토하였다. 그러니까 그때 자기가 시험을 좀 잘못 봤으면 그가 4등이 되어 장학생으로 입학이 되었을 것이고, 오늘 이런 자리에도 같이 앉아 있었지 않았겠냐며 탄식한 것이다.

옛날로 거슬러 올라 가보면 부귀영화와 가문의 영광을 위해 과거에 목숨을 걸다시피 공부하였던 옛적 사람들, 족보에 이름과 관직을 올리고 묘지의 비석에 관을 씌우는 것을 소중히 여여 자기가 못하면 자식, 아니면 손자라도 급제하기를 학수고대하였었다. 옛 중국 선비 손산(孫山)가 지어 낸 이 성어 명락손산(名落孫山)은 절박한 심정을 가진 부모에게 ‘당신의 자식이 시험에 떨어졌다’ 는 것을 에둘러 말해주는 재치가 담겨있다.

《過庭錄(과정록)》에 나온다.

향인기자득실, 산왈, 해명진처시손산, 현랑경재손산외(鄕人其子得失, 山曰, 解名盡處是孫山, 賢郞更在孫山外). 고향사람이 아들의 합격을 물으니 손산이 대답하기를 “명단 마지막에 손산이 쓰여 있고 아드님은 그 뒤에 있었습니다.”

송(宋, 960-1279)나라 때 강소(江蘇)지방에 재사(才士)로 유명한 손산(孫山)이라는 선비가 있었다. 평소에 그와 시회(詩會)를 즐겼던 사람들은 그의 뛰어난 재주를 인정하여 골계재자(滑稽才子,익살꾼)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어느 해, 손산이 젊은 시절 과거를 보러 가게 되었는데 같은 동네사람이 자기 아들도 데려가 시험을 보게 해달라는 부탁을 받아 같이 가게 되었다. 시험이 끝나고 마침내 급제자 명단이 붙여졌는데, 그의 이름은 붙어있었으나 같이 간 동네아들의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모두들 짐을 꾸려 고향으로 돌아가는데 손산이 휘파람을 불며 가벼운 마음으로 오다 보니 다른 사람들보다 좀 일찍 오게 되었다.

그 동네사람이 동구 밖에서 손산이 먼저 오는 것을 보고 마음이 조급하여 자기의 아들도 합격하였느냐고 물었다. 손산은 그 사람이 반갑게 맞으면서 정다운 표정으로 묻고 있는데, 있는 그대로를 직접적으로 말하기가 미안하였다. 할 수 없이 입에 닿는 대로 두 구절의 시를 읊어 에둘러 대답하였다. “급제 명단의 맨 밑에 손산이 있으나 현랑(賢郞, : 남의 집 아들의 존칭)은 손산 밖에 있더이다.”

즉, ‘손산은 합격자 중 맨 마지막인데 어르신네 아들은 손산의 뒤에 있었다’는 뜻으로 합격하지 못한 것을 미루어 짐작하게 한 것이다. 손산 자신은 간신히 합격했을 따름이고 귀하의 자제분은 과거 시험에 떨어졌다는 해학이다. 참으로 익살스런 답변이다.

후세 사람들은 이 고사를 인용하여 입학시험이나 다른 시험을 봤으나 떨어진 것을 묘사할 때 우스개로 또는 부담을 주지 않는 말로 이 성어를 사용하여 썼다. ‘올해는 명락손산했지만 내년에 한 번 더 도전해 보게’라고 위로하고 격려하는 말로 쓰이게 된 것이다.

글 : 정문섭 박사
     적성 고원 출신
     육군사관학교 31기
     중국농업대 박사
     전) 농식품부 고위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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