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재(57) 아름다운 것 추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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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재(57) 아름다운 것 추한 것
  • 박재근 고문
  • 승인 2013.01.11 10: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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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과 추함을 규정하는 것은 사람이다. 꽃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은 몸의 눈이 느낌을 마음으로 전달하기 때문이다. 꽃은 식물의 뿌리와 줄기와 잎 등 식물 몸 전체의 보이지 않은 아름다움에 의해 만들어지나 몸의 눈은 겉에 나타난 꽃의 아름다움만 볼뿐이며 꽃을 만드는 근본인 식물의 내적 아름다움은 마음의 눈이 아니면 볼 수가 없다. 때문에 우리는 사물의 본질을 보는 눈이 없어 사악한 포장에 쉽게 속아 넘어가는 육안이 아닌, 정신의 눈으로 하여금 우리의 인생을 안내하게 하여 포장 속에 가려진 내면의 실체를 들여다 보아야한다. 식물은 자신의 자리가 비옥하면 비옥한대로 척박하면 척박한대로 자신을 맞추어 고요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결코 남의 몫과 자리를 침범하지 않는다. 
4서중 덕을 설명하는 책인 대학에 이르되 재지어지선(在止於至善) 욕망을 멈춤으로 지극한 선에 이른다. 지지이후유정(知止而後有定) 욕망을 그칠 줄 안 후에 안정이 있다고 했으며, 많은 현인들은 인간의 선한 성품을 위해 채식을 권한다. 같은 동물이라도 초식동물은 먹이와 자기 종의 유지를 위해 다투며 육식 동물은 약자의 몸을 생존 수단으로 하고, 인간은 먹이가 아닌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동류인 다른 사람의 생존을 살상한다. 욕망의 폐해는 힘을 가질수록 심해 불행한 사람을 더 많이 만들며 가장 강 한자의 탐욕은 전쟁을 만들어 수많은 사람을 살상하고 가족을 불행하게 한다. 일장공성만골고(一將功成萬骨枯) 한사람의 장수가 공을 세우기 위해서는 만 사람의 목숨이 뼈로 남는다.[조송]
천불용위(天不容僞) 하늘은 거짓을 용납하지 않는다. 아름다운 것은 선한 것이며 선한 것은 포장이 아닌 속이 아름답다. 자연은 외모를 꾸미지 않는다. 자연의 아름다움은 화장하지 않는데 있다. 한여름 무더위로 실내에서도 못 견뎌 할 때 땡볕에서 농사지어 사람의 먹이를 생산하는 농민의 겉모습은 태양과 흙을 무서워하는 유한계급의 얼굴만 못하지만 하늘이 인정하는 진정한 아름다움이며 사람을 위해 물건을 만드는 노동자가 할 일없어 몸에만 신경 쓰는 유한계급의 사치한 모습보다 진정 아름다운 것이다. 지극히 아름다운 여성을 경국지색(傾國之色) 즉 나라를 기울어지게 하는 미색이라 한다. 이런 아름다움을 악의 꽃이라 한다. 
무엇이 추한 것인가? 똥이 아니고 걸레도 아니다. 똥은 생명활동에 걸레는 쾌적한 실내 환경에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때 묻은 작업복, 빛바랜 헌옷, 땀내 나는 검게 그을린 주름진 얼굴은 더 더욱이 아니다. 이런 것이 추하다면 신은 자신의 외아들을 똥 냄새나는 외양간의 구시에서 태어나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추한 것은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때가 아니고 마음속에 감추어져 있는 욕심의 때이다. 몸의 때는 씻어낼 수 있고 옷의 때는 빨아서 없앨 수 있지만 욕심의 때는 쉽게 지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눈먼 욕심은 잠시 후 사라질 몸에 갇혀 모든 사람이 사랑하고 존중하는 더 큰 자기를 버리고 질시와 원망의 길을 택하며, 만족을 모르는 욕심은 생전에 쓰지도 못할 만큼 쌓아놓기 위해 약한 사람의 굶주림과 불행을 조장하고 급기야 전쟁을 만들며 욕심은 추악함을 가리기 위해 외면을 포장하기위한 위선을 동원한다. 이 세상에 그 무엇도 욕심에 찌든 더러운 마음보다 추한 것은 없다. 욕심은 양심을 죽이고 팔며 거짓으로 정의를 위장하고 사람들을 불화하게하며 약자들을 재앙으로 몰아넣는다.
아직까지의 역사는 강자에 의한 강자를 위한 역사였고 강자의 문화는 탐욕과 경쟁에서의 승리를 바탕으로 한 지배의 문화, 약육강식의 동물적 문화이다. 강자의 문화는 다툼과 대결 반목과 질시를 원리로 한 폭력의 문화이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희생해 자신의 외면을 치장함으로서 자신의 힘을 과시하는 문화에 강자의 생색내기 적선은 있어도 약자의 인권은 없다. 강한 자의 문화는 나는 너와 같지 않고 특별한 존재라는 차별화를 기초로 하며, 이는 모든 악의 근원이 된다. 우리가 거짓에 미혹되지 않고 부패를 엄격하게 심판 할 수 있다면 선거는 참된 덕의 세상을 만들 수 있는 좋은 도구일 수 있다. 성자천지도야(誠者天之道也) 참됨은 하늘과 땅의 도리이고 성지자인지도야(誠之者人之道也) 참되게 사는 것은 인간의 도리이다.[중용] 덕자상생지리(德者相生之理) 덕은 상생의 진리이다.[역경] 인간의 품격을 높이는 진정한 문화는 강자와 약자가 함께하는 덕이 지배하는 공존의 문화이다. 위선 위장이 없는 참됨을 하늘의 문화, 덕의 문화라 한다.

글 : 박재근 전북흑염소협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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