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사구팽/ 도와준 사람을 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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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사구팽/ 도와준 사람을 버리다
  • 정문섭 박사
  • 승인 2013.01.11 14: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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兎 토끼 토 死 죽을 사 狗 개 구 烹 삶을 팽
정문섭이 풀어 쓴 중국의 고사성어 49

오래전 모 정치인이 정권을 잡은 후 그를 위해 오랫동안 충성하였던 사람들을 내치는 것을 보고 언론 매체들이 이 성어를 써 비유함으로써 널리 회자되었다. 중국 역대 왕조의 역사를 보면, 초기에 개국공신들의 횡포를 줄이기 위해 여러 가지 수단을 써왔는데 특히 송(宋)나라 태조 조광윤은 신진 사대부들을 등용하기위해 걸림돌이 되는 개국공신들을 회유하여 한직으로 보내거나 체면을 세워주며 고향으로 보냈고 말을 듣지 않으면 내쳤다. 당시로서는 그러한 처사가 매우 몰인정한 것으로 비쳐지긴 했으나 후세사람들은 이를 칭송하였다.
작금의 정치세태를 놓고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그가 실패한 자로 남게 될 이유는 토사구팽을 하지 않고 측근들만 챙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팽을 당한 자로서는 너무 억울할 일이다.  
사마천(司馬遷)의《사기ㆍ월왕구천세가(史記ㆍ越王句踐世家)》에 나온다. 비조진, 양궁장, 교토사, 주구팽(蜚鳥盡, 良弓藏, 狡兔死, 走狗烹): 새 사냥이 끝나면 좋은 활도 감추어지고, 재빠른 토끼를 잡고 나면 사냥개를 삶아 먹는다.
춘추(春秋, BC770-BC476)시대 월(越)나라가 오(吳)나라에게 대패하여 나라가 멸망될 지경이 되었다. 월왕 구천(句踐)이 분노를 억눌러 삼키며 나라를 다시 세워 치욕을 씻기로 마음을 굳게 다지었다.
당시 구천을 보좌한 사람 중 구천을 위해 가장 중요한 역할과 공로를 세운 사람은 문종(文種)과 범려(范蠡)였다. 문종은 정치에 매우 능하여 전심전력을 다해 온갖 정책을 계획하고 시행함으로써 월의 부흥의 기반을 닦아 나갔고, 범려는 군사와 외교에 능하여 구천을 직접 보좌하고 수행하면서 수많은 고초를 같이 했다.
월나라가 와신상담(臥薪嘗膽 거북한 섶에 누워 자고 쓴 쓸개를 맛본다)하며 인내하여 국력을 길렀다. 마침내 오를 물리치고 부흥이 된 후 많은 공신들이 부귀영화를 누리게 되었다. 특히 문종과 범려는 다른 누구보다도 공이 큰 사람들이었으므로 당연히 중용이 되었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구천의 실상을 잘 아는 범려는 사직하여 은거하기로 결심하고 문종에게 편지를 써 보냈다.
“화살로 새를 맞히고 나면 더 좋은 화살도 거둬들이고, 토끼를 모두 잡고 나면 사냥개는 잡아먹히게 된다. 내가 보기에 구천은 환난은 같이 할 수 있을지언정 부귀영화는 같이 할 수 없는 사람이니, 동료로서 그대에게 권하노니 빨리 사직하여 스스로를 보호하기 바라네.”
문종이 범려의 편지를 보고 의아하게 생각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우선 병을 핑계로 조정에 나가지 않고 구천의 반응을 보려고 하였다. 그런데 이때 뜻밖에 한 사람이 왕에게 문종이 모반한다는 모함을 하였다. 그러나 왕은 옳고 그른 것을 따지지도 않고 바로 문종에게 검을 내려 자결하도록 명하였다. 문종이 속으로 범려가 언급한 ‘토사구팽’의 선견지명에 탄복하면서 좀 더 일찍 떠나지 않은 것을 후회하였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이 성어는 훗날 한(漢) 고조 유방(劉邦)을 도운 한신(韓信)이 죽을 때 그가 후회하며 한 말로도 더욱 유명하게 되었다. 유방은 항우(項羽)를 멸하고 소하(蕭何)ㆍ장량(張良)과 더불어 한나라의 창업 삼걸 중 한 사람인 한신을 초왕(楚王)에 책봉했다. 그런데 당초 항우의 맹장이었던 종리매(鍾離昧)가 한신에게 몸을 의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 유방이 한신에게 당장 종리매를 압송하라고 명했으나 종리매와 친구가 된 한신은 고조의 명을 어기고 오히려 그를 숨겨 주었다. 이를 안 유방이 계책을 세우고 한신에게 궁으로 들어와 배알토록 하였다. 종리매가 반기를 들자고 권유했지만 죄가 없으니 별일이 없을 것이라며 듣지 않았다. 종리매는 이에 자결하고 순진한 한신은 종리매의 목을 들고 순순히 들어갔다가 오히려 역적으로 죽임을 당하게 되었다. 죽기에 앞서 그는 분개하며 한탄하여 이렇게 말했다.
“내가 종리매의 말을 듣지 않아 이렇게 되었구나. 교활한 토끼를 사냥하고 나면 좋은 사냥개는 삶아 먹히고 하늘 높이 나는 새를 다 잡으면 좋은 활은 곳간에 처박히며, 적국을 쳐부수고 나면 지혜 있는 신하는 버림을 받는다고 하더니 한나라를 세우기 위해 분골쇄신한 내가 고조의 손에 죽게 되었구나!”
이 성어는 ‘일이 있어 사람을 쓰고 별 볼일이 없으면 죄를 주는 것처럼 사람이 이용가치가 없어지면 내팽개치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즉 일이 성공된 뒤에 그 일을 위해 애쓴 사람을 버리는 경우에 비유하여 썼다.

글 : 정문섭 박사
     적성 고원 출신
     육군사관학교 31기
     중국농업대 박사
     전) 농식품부 고위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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