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떽(9)/ 서울떽의 상경기는 지금 생각해도 눈물겹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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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떽(9)/ 서울떽의 상경기는 지금 생각해도 눈물겹지요
  • 황호숙 황홀한농부
  • 승인 2013.01.17 16:2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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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떽네 오지게 사는 이야그

“사람은 말이다.
본시는 너나없이
모두가 한 때는 별이었단다.
저 한량없이 높고 넓은 하늘에서
높고도 귀하게 떠서 반짝이다가,
어느 날 제각기 하나씩 하나씩
땅으로 내려앉아서
사람의 모습을 하고 태어나는 법이란다.”
-임철우의《그 섬에 가고 싶다》중에서-

지난 금요일날엔 서울떽이 아조 오랜만에 친정인 서울 귀경을 갔었거든요.
음력 섣달에 여동상, 남동상, 글구 서울떽과 서울떽네 막둥이 딸까정 네명의 생일이 한꺼번에 들었는디, 친정 엄마가 갑자기 미역국을 한꺼번에 끓이시겠다며 호출 어명을 내리셨거든요. 지가 요럴때만 효녀인지라 낸중에 엄마 말 안 들어줬다고 내 설움에 펑펑 울까봐 이참에 핑계대고 갔다 왔지라 잉.


앗따~ 여고시절엔 그 옛날 대지극장이 있었던 미아리 삼거리가 제 친정집 골목이 될 줄은 몰랐지라, 왜냐면 학교 수업 빼먹고 동시상영을 해주던 기중 괜찮은 극장이 여기뿐이었고 모범생 친구 꼬셔서 공부 못하게 하던 재미진 장소였거든요. 쬐끔만 시내로 가면 미아리 눈물고개가 있고, 그 성신여대 입구에는 멋있는 디제이 오빠들이 틀어주던 팝송과 송골매의 노래들이 흐르던 즉석 떡볶이 집이 있었거든요. 비오는 날  보충수업 땡땡이 치고 20번 버스를 타고 지나가던 혜화동 골목의 나부끼던 연극 포스터들, 종로의 풍경, 서울 역 광장, 그리고 나만의 종착역이던 광화문 교보문고.
돈이 없어 책을 사 볼 수 없던 시절 교보문고 구석진 자리는 제 낙원이었당께요. 워찌나 점원들이 눈치를 주든지 서서 내리 5시간을 버티며 책을 읽기도 했는데 그때 읽은 책이 [갈매기의 꿈]이었고 톨스토이였고 에드거 알랜 포의 애너벨리란 시였지요. 하도 많이 읽어서 구절을 다 외우고 다녔었는데, 흑흑 이젠 어제 한 일도 메모를 안 하면 잊어버리는 사람이 되었네요. 참말로 워쪄야 쓸까라. 이 아줌씨를.


하여튼 온 식구들이 모여 친정식구들과 곱창에 쐬주도 한잔 하고 밀린 수다도 풀고 허느라 행복했지요. ‘내는 겨울 신발이 필요하고 지갑도 6년 썼더니 해졌응게 두가지만 해결해주라!’ 말하곤 지는 지꺼 선물만 챙기고 처제꺼는 형부가 사줘라 라고 말만하고 핑 허니 서울역으로 달아났지요. 중학교 3학년부터 만나는 30년지기 친구들, 그 오지고 이쁘고 옹골지고 이름만 불러도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하는 친구들 만나서 수다 떨고 맛난 것 먹고 얼굴 쳐다보다가 아쉽게 헤어졌지요. 항상 ‘호숙이 서울 가는 중이다’라고 문자 치면 아무리 바빠도 나를 위해 시간 내주고 돈 내주고 미소를 내어주는 친구들이 이삐긴 헌데 썩을 가시내들이 아직도 인생의 쓴맛을 모르나 쐬주를 안 먹어 탈입니다.


근디 날이 가면 갈수록 친정 가기가 하늘의 별따기 보다 어려워징게, 가끔 복창 터질 때도  있어라. 옛날 호랭이 담배 피던 시절, 긍께 신혼시절부터 지는 명절날 한 번도 친정을 못가봤당께요. 7남매 중의 막내며느리라지만 모든 제사와 시부모님을 모시는데다 추석 때는 벌초 및 문중 어르신들, 글구 사둔들까정 대략 80명 올 때도 있었거든요. 설날엔 세배손님까정 하면 겁도 안났제요. 오로지 저 혼자 치러내야 허는 와중에 친정나들이는 애초에 꿈도 못 꾸었지요.
일 년에 딱 한번 애들 겨울방학하면 득달같이 아이들 넷을 데리고 버스타고 지하철 타고 서울 가서 5일 정도씩 묵고 오는 게 제 휴가였어요. 그때 친정집은 신정이 명절이었죠. 시골집에 아버님이 계셔서 올망졸망한 아이들 넷을 데리고 바리바리 옷짐 싸들고 저 혼자 올라갈 때가 많았어도 신났었지요. 아이들은 해리포터 시리즈가 서울 상경할 때마다 상영돼서 문화생활 톡톡히 했구요. 12월 31일날 롯데월드에 가서 밤 9시까정 놀이기구 태워주고 짜장면 먹고 하는 걸 동생이랑 둘이 하면서도 마냥 행복해했지요. 그 다음날은 아이들에게 방송국 귀경시킨다고 혼자 애들 넷과 음악방송 프로그램 참여도 하구요. 돈 안 들이는 왼갖 극성은 서울 기간 중 다 떨어댔으니, 친정식구들이 보기엔 월매나 짠했을까요. 용감무쌍한 서울떽의 상경기는 지금 생각해도 눈물겹지요. 유명했어요, 우리 딸들 먹성은. 저를 아는 많은 이모, 삼춘들이 무조건 처음 먹어보거나 맛난 음식 사준다고 하면 빼지도 않고 겁나게 먹어댔거든요. 아침에 아이들 배탈 안났냐고 걱정스레 전화할 정돈게요.
지금은 아이들이 바빠서 못가고 제가 일정이 잡혀서 못가기는 허지만 항상 편한 일탈을 꿈꿀 땐 가고자파요.
워치코롬 항시 글 쓰다가 샛길로 빠지능가 모르겄네요. 제 딴에는 좀 멋진 이야그로 새해를 열자고 고민은 겁나게 했는디 서울갔다 온 흥이 아적도 안깨졌나봐요. 기냥 일사천리로 서울이야그가 오지랖 넓게 써져부렀네요. 저도 서울떽이라고 자랑치다 봉게 요렇게 됐네요. 머리 나쁜 아짐씨라 생각하고 넘어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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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인환 2013-01-21 17:04:26
서울떡 글 가끔 일어본디 이제 정말 순창분 다되셨네요.
전라도 사투리 기막히게 사용하시고...
서울 나들이 잘 읽고얼굴 가득 웃음 지으며 나가요..
앞으로도 좋은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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